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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책장 Mar 09. 2024

그리움의 영토에서

강릉에서


내 마음에는 세 개의 무덤이 있다.

하나는 테오의 무덤, 하나는 서경식 선생님의 무덤, 마지막 하나는 지난주에 소천하신 외할머니의 무덤이다.

여러 달 동안 나는 의아했다. 테오의 죽음이 계속 내 삶에 영향을 마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울감은 아니었고, 그리움이 제법 짙었다.

아무리 사랑했던 반려 고양이여도 친 남매를 잃은 것처럼 상실감이 길고 깊었다.

테오가 많이 그리웠다. 그 감정이 의아했던 걸 보면 사람의 죽음만큼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슬픔의 무게감을 같은 비중으로 두는 게 아니라는 편견이 내게도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테오를 향한 그리움을 동반한 채 자주 떠난 테오에게 말을 걸며 살았다. 그렇게 테오는 나의 그리움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어젯밤, 강릉 숙소에서 <로기완을 만났다>를 봤다.

로기완의 이야기는 기완이 어머니의 사고 자리의 피를 지우며 시작된다. 어머니의 시체를 병원에 판 목숨 값을 가슴에 품고 로기완은 국경을 넘는다. 긴 망명의 여정이 시작된다.

<로기완을 만났다>는 로기완이 자신의 영토를 찾아가는 생존의 여정이다. 고국으로 가기 위해 체류하게 된 베를린에서 그는 사랑하는 연인 마리를 얻게 되고, 그의 영토는 고국에서 사랑하는 여인으로 경계가 확장된다.

나는 그게 우리 삶의 전부 같았다. 살며 사랑하며 뿌리를 내리는 것. 살아가는 것은 투쟁하고, 견디고, 사랑하고, 나아가는 거니까.


이사를 고려하고 있다. 2년 동안 머물렀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일상을 꾸려가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사는 곳에서 나는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테오를 떠나보냈다. 테오는 별이 되었고, 그의 유골은 동네 호수에 뿌렸다. 산책을 갈 때마다 테오에게 인사했다. 나에겐 그 호수가 테오의 무덤이었다.

로기완을 보며 삶의 영토가 사랑의 영토로 확장되는 건 삶의 물리적 장소보다 마음의 장소가 굳건해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게 위안이 되었다.

물리적 소멸이 영혼의 소멸이 될 수 없다는 진실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들이 나와 함께 일상을 걸어가고 있는 거니까.

내 마음에 품은 매장지에 테오와 서경식 선생님이, 그리고 외할머니가 있다. 기억함으로써 그들을 소멸시키지 않는다. 그리움은 순도 높고 힘이 세다. 그것이 나의 힘, 나의 위안이다.


크리스티앙 보뱅은 <그리움의 정원에서>에서 '진정한 거처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p.86 말했다.

나는 이 말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의 우리가 머물 진정한 거처에 대한 단 하나의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천인 나는 우리의 죽음 이후에 머물 영원한 거처, 하늘나라에서의 삶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 세상을 지나가는 동안 마음의 영토를 가꾸며 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할 때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과 죽음 이후의 긴 그리움도 두려움과 슬픔만은 아니다.


둘째 날 강릉 경포 해변 근처 마을을 걸으며 내내 한동근의 <그대라는 사치>를 들었다. 로기완과 테오와 서경식 선생님과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들었다. 그들의 안식과 평화가 나의 마음속에서 그들의 영면 속에 건너가기를.

(로기완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실제의 삶 속에서 망명의 시간이 길어 긴 고독과 불안을 견뎌내고 있을 이들에게 물리적인 영토가 허락되기를, 그들의 삶이 위로받기를.)

나의 그리움이 그들의 안식을 덮는 이불이 되기를.

매일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그리워할 터이니.


@ 추신: '마음의 무덤'은 《슬픔의 방문》 속 장일호 작가님의 표현을 인용했다.


<참고>

영화 <로기완을 만났다>, 넷플릭스(원작: 조해진)

노래 <그대라는 사치>,한동근

서적 <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보뱅, 1984books,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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