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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책장 Jan 08. 2024

아버지의 산같은 삶을 애도하는 굳건한 연서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2년에 많이 사랑받은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출판 마케터 전 문재인 대통령의 추천과 유시민 작가의 추천을 힘입고 이 책이 엄청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읽어보면 알게 된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소설이라는 걸.

이야기의 구성, 인물의 캐릭터, 그리고 책이 가지는 메시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적절하게 잘 구성되어 있는 완성도 높은 소설이다.


정지아 작가의 자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서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3일간의 장례식장에 여러 사람이 조문을 오면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아버지의 삶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로 인해 가족들은 너무나 진통하며 고생 속에 살았기에 화자의 시선에선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별로 느낄 수가 없다. 아버지의 행동이나 따뜻한 면모들도 비웃듯이 이야기하며 우스꽝스럽게 풀어간다. 이 과정이 글맛이 있어서 되게 코믹하고 재치있게 그려진다. 그러나, 소설을 읽을수록 마음에 먹먹하게 울음이 차오르고 많은 질문과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의 에피소드 중 박 선생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박 선생의 형은 아버지의 빨치산 동료로 지리산에서 죽고 누나들도 지리산에서 죽어 시신조차 찾지 못한다. 박 선생은 서울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 학도병으로 끌려가 지리산에 파견된다.

겨우내 치열한 대공세에서 아버지는 살아남게 되는데 아버지 부대원 중 하나가 전투식량 박스 하나를 발견해서 가져온다. 그 속에 박 선생의 편지가 있다.


"신우형, 복례누이, 상욱아. 총을 쏠 때마다 손이 떨려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네. 

총구를 하늘로 겨눠도 재수 없으면 떨어지는 내 총알에 누군가 죽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 누구도 내 총에 죽는 일만 없기를 날마다 기도한다네. 

부디 살아서 돌아오시게. 살아서, 꼭 살아서, 다시 만나세." p.48


불행하게도 아버지만 살아남아서 박 선생을 만나게 되고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한다. 자신의 총알이 형과 누이와 친구들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을 안고 군에 말뚝을 박게 되고 예편한 뒤에는 군사독재 정권 밑에서 교련 선생이 된다.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보.  군사독재 정권 밑에서 교련 선생이 뭐냐, 죽은 너의 형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겠다고 화를 내는 아버지 상욱에게 그가 느닷없이 눈물을 쏟으며 했던 말에 나는 마음이 무너졌다.


"상욱아, 너 하염없다는 말이 먼 말인 중 아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하염없이 눈물만 나오는 사람의 속은 어떻게 되어 있겠는가. 그 삶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다.  

처음에 화자는 아버지에 대해 우스꽝스럽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본인이 이상이라고 믿는 신념이 얼마나 이 세상에서 허무한 결론이 되었는지, 그리고 인생을 걸고 한 투쟁의 결과가 도대체 무엇인지, 사람만 좋아서 계속 이용당하면서도 "오죽하면 그러겠냐"라는 말을 하며 호구가 되는 걸 자처하는 어리석음이 얼마나 답답한지 이런 부분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독자는 읽을 수록 알게 된다. 아버지는 결코 우스운 사람도 아니고 하찮은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아버지가 얼마나 산 같은 사람이고, 그 삶의 증거로 장례식장에 오는 조문객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이 지점이 이 책의 놀라운 부분이다.

연민이나 구구절절한 추앙 없이 온전히 독자에게 우리 현대사의 한 부분을, 그리고 그 시절을 힘겹게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을,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으로 들어갔을 때의 애도를 완성해 낸다.

읽을수록 이 책이 정말 잘 써진 책이고, 또 허구가 아닌 이야기들일 거라는 게 되레 안타깝고 답답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은 작가 자신에게도 애증의 아버지를 마음으로 떠나보내는 연서였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래도 뭐,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딸을 대장부의 몸으로 낳아주신 것도, 하의 상의 인물로 낳아주신 것도 다 이해할 터이니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감사합니다.

아버지. 애기도 하는 이 쉬운 말을 환갑 목전에 두고 아버지 가고 난 이제야 합니다. 어쩌겠어요? 그게 아버지 딸인걸. 이 못난 딸이 이 책을 아버지께 바칩니다.

_정지아'



장례를 치른다는 건 3일의 여정이 아닐 거다. 나는 반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했던 존재를 여전히 떠나보내는 중이다.  최근에도 장례가 있었다. 내 삶과 꿈에 있어 너무 큰 영향을 미친 서경식 선생님이 영면에 드셨다. 선생님의 저서를 읽으며 '문학과 예술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질문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던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선생님의 삶을 생각한다.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매일 당신의 글을 읽으며 내 나름으로 고인을 향한 49재를 지내고 있다. 


희망가의 노랫말을 아버지 상욱을 위해 불러드리고 싶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의 산 같은 삶을 애도하는 빨치산 딸의 굳건한 연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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