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womanB Oct 03. 2020

제발 모르지 좀 마. 헤어지려고 작정한 거 아니면.

모르는 걸까, 알지만 모르고 싶은 걸까.

 '멜로가 체질'을 3번째 보고 있다.


 4화에서 극 중 천우희(진주)는 동생(지영) 커플을 앞에 두고 동생의 남자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너무 논리적이지 마. 니가 했던 지난 실수 끄집어내며 자기 잘못 감추려고 해도 이해해 줘. 논리로 이기고 지고, 사랑하는 사이가 어떻게 그래? 누가 그거 몰라? 말이 안 되는 거 같으면 좀 어때. 꼭 이겨 먹어야 돼? 그냥 용서해 달라는 말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돼. 안아주면 돼. 사랑한다며? 화가 나도, 당장 미워도,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아도. 그 말 들어야 속이 시원해지면 그거 사랑하는 거 아니야.

 예뻐 보이고 싶어, 여자는. '미안해, 용서해 줘, 다신 안 그럴게.' 이런 말 하고 있으면 예뻐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네 눈엔 그것도 예쁘다고 말하지 마. 그 말이 사실이 아닐 것 같아서 무서워한다고. 뭐 하러 좋아하는 사람 무섭게 만들어? 그런 거야, 그런 거라고!

 제발 모르지 좀 마, 헤어질 거 아니면. 헤어질 거 아니면, 정말 헤어지려고 작정한 거 아니면, 좀... 좀 모르지 좀 마."


 1번째와 2번째 때는 별생각 없이 넘겼던 대사가 마음에 콕 박혀버렸다. 아마 헤어지려고 작정하고 모른 척을 하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직후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몰랐다. 아니 알았지만 자신이 더 소중했던 것 같다.


 세상의 중심은 나야. 다른 사람 눈치보기 싫어. 그래서 카톡 프사도 내 얼굴만 하고 내 맘대로 하고 싶어.


 이 말에 이 사람을 계속 만나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뒷부분이 아니라 앞부분 때문이었다. 그래 세상의 중심은 너인데, 그 중심인 너가 사랑한다고 하는 나는, 나는 너의 중심 안에 없는 거니. 그럼 나는 뭐지. 그냥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치는 행인 정도인가.


 30대의 남자가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고, 자신이 가꿔놓은 삶이 소중한 것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삶은 조금 변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나는 그랬으니까. 누군가와의 약속을 3주 뒤에나 잡을 수 있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남자친구와의 약속은 당장 내일이라도 내 일정을 빼고 달려갈 수 있는 게 나였다. '너도 나에게 그렇게 해야 해.' 라고 강요할 수 없음은 알기에 그저 '바빠서 일정을 내지 못하지만 보고 싶다.'라는 말만 해줬어도 충분했다. 그러나 그 작은 충분함조차 나는 받지 못했다.


 200일을 만나면서 그는 나에게 카톡으로라도 '보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한 적이 없고, 얼굴을 대면한 채 '사랑해'라는 말을 먼저 꺼낸 적이 없었다. 전화를 많이 해줬으면 싶은 마음에는 '난 전화는 업무 하는 거 같아서 싫어. 너가 하고 싶으면 너가 해.'라는 차가운 반응이었다. 쌓이고 쌓인 사소한 서운함들이 기싸움으로 번졌다.


 '나는 사랑받고 싶어. 나를 위해서 기꺼이 자존심을 굽혀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나도 그 사람을 위해 그렇게 해주고 싶어. 그래서 먼저 사과하고 싶지 않아. 계속 이런 식이면 앞으로도 같은 주제로 싸우게 될 텐데 그럼 지금 헤어지는 게 맞을까 싶다가도 모르겠어.'


 이 말은 그냥 이쯤에서 너가 잡아달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난 굽힐 만큼 굽힌 것 같아. 헤어지는 게 맞는 것 같다.'였다. 너의 자존심이 상대방의 예민함에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더라도 '뭐 그 정도로 헤어지는 거까지 가. 잘 지내보면 되지.'라고 말해 줄 수는 없었을까.

 전화도, 애정표현도, 스킨십도 내가 먼저 하면 받아주는 것이 너의 사랑의 최선이었고, 그게 자존심을 굽힌 것이었다면 난 너에게 지나가는 행인보다 못한 그냥 반응을 구걸하는 거지 정도였구나.

 이 정도 사소한 기싸움에도 잡지 않고 놓아버릴 사람의 마음을 두고 주변의 '걔가 널 좋아하면 그럴 수 없어'라는 말들에 '아니야. 너네가 몰라서 그래. 그래도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해.'라고 변호하고 있었다는 것이 허무했다. 그 마음의 크기가 이렇게나 작았는데 그 마음을 돋보기로 보면서 '성향 차이야. 봐봐 돋보기로 보니 이렇게나 마음이 크게 보이잖아.'라고 자신을 위로하고 있던 내가 한심했다.


 30살 넘게 살면서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알려줘도 모르고 싶은 거다. 그만큼 사랑하지 않으니까. 언젠가 그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도 알게 되겠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아니. 이미 알고 있을지도.



극 중 대사 전문


진주 : 너 지금 주머니에 얼마 있어?

지영 남친 : 3천 원

진주 : 그거 다 지영이 줄 수 있어?

지영 남친 : 그럼요

진주 : 3억이면?

지영 남친 : (살짝 머뭇거리다가) 그것도 줄 수 있습니다.

진주 : 그거 다 달라고 하지도 않아. 그냥 그런 마음만 있으면 돼. 상대가 그 마음 몰라주는 거 같으면 알아줄 때까지 표현해.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왜 이렇게 몰라주지?' 답답해하지 말고 초조해하지 마. 어디 안도망가. 네 마음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경우가 더 많을 거야.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을 거야. 이해하려고 하지 마. 네가 감히 이해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야, 여자는. 묵묵히 네가 해야 할 것을 해. 최선을 다해.

 돈 없는 거 쪽팔리다고 들키지 않으려고 하지 마. 남자로서의 자존심? 어차피 다 알고 있어. 감추려고 애쓰면 그 알량한 자존심이 지켜진다니? 천 원짜리 하드 하나밖에 못 사 주는 거 미안해하지 마. 천 원짜리 하드 하나로 어떻게 재밌게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훨씬 이득이야. 실패하면 그런대로 귀엽고 성공하면 겁나 멋있고, 그래.

 너무 논리적이지 마. 니가 했던 지난 실수 끄집어내며 자기 잘못 감추려고 해도 이해해 줘. 논리로 이기고 지고, 사랑하는 사이가 어떻게 그래? 누가 그거 몰라? 말이 안 되는 거 같으면 좀 어때. 꼭 이겨 먹어야 돼? 그냥 용서해 달라는 말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돼. 안아주면 돼. 사랑한다며? 화가 나도, 당장 미워도,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아도. 그 말 들어야 속이 시원해지면 그거 사랑하는 거 아니야.

 예뻐 보이고 싶어, 여자는. '미안해, 용서해 줘, 다신 안 그럴게.' 이런 말 하고 있으면 예뻐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네 눈엔 그것도 예쁘다고 말하지 마. 그 말이 사실이 아닐 것 같아서 무서워한다고. 뭐 하러 좋아하는 사람 무섭게 만들어? 그런 거야, 그런 거라고!

 제발 모르지 좀 마, 헤어질 거 아니면. 헤어질 거 아니면, 정말 헤어지려고 작정한 거 아니면, 좀... 좀 모르지 좀 마.

작가의 이전글 모르는 사람과 결혼을 생각할 만큼 내 삶이 싫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