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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Oct 25. 2020

젊은 사람들끼리만 다니는 거 보기 안 좋아 2.

대화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하는 정도까지는 맞춰드리죠

 '젊은 사람들끼리만 다니는 거 보기 안 좋다.'라니. 그날 아침의 대화 이후 나는 이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선배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업무시간에 젊은 사람들만 끼리끼리 놀러 다닌다는 식의 말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선배들이 하지 않으려는 일을 같이 힘을 모아서 처리했고, 그러느라 자리를 오가며 좋은 얼굴로 서로를 대했을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남는 시간에 같이 차 한잔 마시며 대화를 하고 웃음소리를 냈던 것이 그렇게 안될 일이었던가. 샘이 날 정도로 좋아 보였으면 대화에 끼든가. 본인들 또래 남직원들끼리 담배 피우러 가는 건 괜찮고 젊은 직원들끼리 대화하는 건 안되고? 나는 후배들에게는 이 일을 끝까지 모르게 하리라고 다짐했다. 그들이 알면 얼마나 이 조직이 쪼잔해 보일까 싶었다. 내가 다시 불려 가는 한이 있더라도 나만 한 소리 더 듣고 말면 그들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정말 황당한 소식을 들었다. 그 계의 회식에 우리 계 신입들이 불려 가서 윗사람들의 점심을 잘 챙기지 않는다는 것과 그들끼리만 너무 잘 지낸다는 것으로 핀잔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신입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는 그 계의 또 다른 선배 한 명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그렇게 다른 계에서까지 불러서 뭐라 할 일이에요? 저한테 이야기하셨으면 그냥 제 선에서 알아서 하게 두시지 왜 애들을 그 밤에까지 불러다가 그래요. 그리고 계장님 점심 솔직히 저만 계속 챙겨 왔는데 말을 해도 제가 하는 거지 선배님들이 그럴 자격은 없죠."

 "아냐. 우리 분위기 좋았어. 걔네도 같이 하하호호하면서 잘 얘기했어. 너가 생각하는 그런 무거운 분위기 아니었어. 난 너가 이렇게 과민반응하는 게 어이가 없다."

 "선배님들은 제가 그동안 40대 사람들 속에서 혼자 힘들어했던 건 안쓰럽지 않으셨나 봐요. 또래들 들어와서 자기들끼리 힘 합쳐서 잘 지내면 보기 좋은 거지 대체 뭐가 문제예요? 저도 저들 덕에 잘 지내면 다행이다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다행이지. 다행인데, 아무튼 막 혼내고 그런 거 아니었어. 그냥 신입들 밥 한번 못 사준 거 같아서 회식하는 데 생각나서 근처 사니까 와서 먹으라고 부른 거야. 같이 계장 욕 하고 그랬어. 분위기 좋았다니까."

 "아무튼, 전 좀 실망이에요."

 "너가 이런 얘기를 듣는다는 건, 너도 짬이 좀 찼다는 얘기야."

 "이거 하난 알아주세요. 우리 계, 사람도 없고, 일은 많고, 그 끼리끼리 안 다니면 못 견뎌요. 신입들 없으면 저 이 업무량에 이 분위기에 진짜 미쳐버릴지도 몰라요."

 "그래. 그건 알지."


 결국 결론은 없는 대화였다. 서로 생각하는 것이 너무 달랐다. 대체 저들은 젊은 사람들끼리 잘 지내는 게 뭐 그리 질투가 나서 그러는 걸까. 잘 지내서 일을 더 잘하면 했지 업무시간을 까먹는 것도 아니었는데.

 신입들은 나에게 그날 회식자리에서의 고충을 이야기했고 '선배님이 우리 대신 다 참아주고 막아주고 계셨다면서요.' 하면서 미안해했다. 그리고 그 계에서는 분위기가 좋았다고 생각한다는 말에

 그럼 그 선배들 다 있는 자리에서 웃으면서 대답하고 넘기지 얼굴 찌푸리고 싸울까요. 들어온 지 겨우 1달 지났는데.

 라며 씁쓸하게 대답했다.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그 친구의 대답은 명료했다. "눈 앞에 보여서 그래. 그래서 괜히 샘내는 거야. 차라리 나가서 얘기해. 남자들 담배 피우러 나가듯이 너네도 나가." 그 후 우리는 친구의 말처럼 눈에 띄지 않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1시까지 산책을 하거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앉아서 대화를 나눴고, 사무실에서는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생기면 시간차를 두고 따로 나가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시간차를 두고 따로 들어왔다. 그래도 일부러 사무적으로 대하는 연기는 하지 않았으므로 사무실 내에서 업무 대화만 나눠도 사이가 좋은 것은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눈 앞에 보이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보란 듯이 즐거운 톤으로 일을 해서 포기를 한 것인지 그 뒤로는 아직 별다른 잔소리는 듣지 못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내가 신입들 관리를 제대로 하기는커녕 오히려 같이 뭉쳐서 다닌다며 좋지 않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잘못이 아님에도 이 정도 눈치를 봐줬으면 할 도리는 다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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