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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Jan 02. 2021

완벽한 언니의 그림자

부모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감정의 그늘

 언니는 누가 봐도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부족한 동생이었다. 같은 부모 아래서 나고 자랐다고 해서 같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어른들은 그걸 당연히 알면서도 무슨 못된 심보인지 우리를 늘 비교 선상에 놓고 나에게 더 분발할 것을 요구했다.


 언니는 잘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었다. 타인을 향해 진심으로 울어줄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 온기를 친동생인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받은 것 같았다. 나에게 먼저 따뜻한 사람이었다면, 나에게 먼저 베푸는 사람이었다면 그녀의 빛을 나는 진심으로 응원했을지도 모르겠다. 칭찬과 선망의 햇빛을 받으며 자란 사람은 그늘이 없다. 그 햇빛을 받는 사람을 따라가는 사람에겐 늘 앞선 사람이 만드는 그늘이 드리운다. 이렇게 나는 자격지심 덩어리로 어둡고 꼬인 어른이 되었다.


  언니가 결혼을 할 때, 나는 150만원의 월급 중 80만원을 들여 무선청소기를 사줬었다. 내가 아파트를 구하고 집들이 선물로 17만원 상당의 샤오미 공기청정기를 이야기하자 언니는 비싸다며 주저했고 결국 언니가 아닌 친구들이 공기청정기를 사주었다.

 그 뒤 내 생일, 그 전년도에는 서로 20만원 정도의 현금을 주고받았기에 나는 10만원 상당의 선물을 이야기했었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 서로 생일 챙기지 말고 그냥 안 하는 거로 퉁치자."였다. 황당했다. 그냥 아는 동생도 아니고 친동생에게 할 소리인가 싶었다. 겉으론 쿨하게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내 속마음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 앞으로 그냥 다 퉁 치자. 서로 아무것도 바라지도, 해주지도 않는 남처럼 살자.'


 내 주변의 가족들은 이렇지 않았다. 월급이 나와 비슷했던 내 친구는 동생이 샤오미 공기청정기를 이야기하면 그런 허접한 걸 왜 쓰냐며 더 비싸고 좋은 공기청정기를 사줄 거라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친언니에게 때때로 용돈을 받았으며, '퉁 치자' 사건에 대해 내 주변은 이해를 못하는 사람과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 동생이 받고 싶다고 한 선물은 먼저 주고 자신의 생일에 선물 안 받겠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꺼냈을 거라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그게 형제고 자매였다.


 아빠는 나에게 언니는 그런 관념이 없으니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내가 그냥 퍼주라고 했다. 그러다 보면 언니도 가족 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며. 그런 아빠에게 나는 참 몹쓸 대답을 했었다.

"엄마 아빠가 언니한테 동생에 대한 사랑을 잘못 가르친 걸 왜 내가 감당해야 해? 싫어."



 엄마와 나의 싸움은 내가 친한 친구의 조카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친구의 조카가 태어나고 친구는 온 가족이 미쳤다며 카시트는 이모가 사주는 거라기에 본인도 100만원이 넘는 카시트를 사주었다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그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다고 웃어넘겼다. 나는 이 일을 엄마에게 별생각 없이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별생각이 없을 수 없었다. 언니에 대한 나의 일반적이지 않은 감정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엄마에겐 골치 아픈 숙제였으니까.


 엄마는 조카에게 그 정도 못해줄 건 뭐냐고. 가만 보면 참 베풀 줄 모른다고. 혼잣말처럼 이야기했다.

 "아니, 내가 그만한 돈이 어딨다고 그걸 해줘. 그리고 먼저 퉁치자고 한 건 언니야. 난 그날 이후로 조카고 뭐고 다 없는 거로 퉁치기로 했어."

 "그래 니 맘대로 해. 엄마도 너한테 언니한테 뭐 해주라고 강요 안 해. 그리고 니 언니도 그거 바라지도 않아. 그냥 안 해주면 되지 엄마 속상하게 굳이 그 얘길 꺼내야 해?"

 "나보고 어쩌라고.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 얘기잖아. 그렇게까지 나한테 뭐라 할 건 없잖아."

 "대체 왜 그래. 조카 태어나면 예쁘다고 간이고 쓸개고 다 알아서 퍼다 줄 애가 왜 그렇게 맘에도 없는 말을 밉게 해. 엄마가 너를 몰라?"

  가장 답답한 순간은 나도 내가 어디부터 어떻게 왜 꼬였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답 없이 꼬여있음을 나 스스로도 알 때다. 그날은 그냥 그런 날이었다. 그 와중에 또 서러워서 눈물은 눈치 없이 흘러내렸고 엄마는 말을 이어갔다.


 "언니가 잘못한 거 맞아. 엄마도 그 퉁치자는 얘기 들었을 때 화가 나서 한 대 때려주고 싶었어. 동생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혼내주고 싶었어. 그거 때문에 너가 큰 상처를 입은 거 엄마도 알아. 엄마도 속상해. 그런데 어떡해. 엄마가 잘못 가르친 걸. 언니가 어릴 때는 우리 집이 어려워서, 아끼는 것만 가르치고 남 주는 걸 못 가르친 걸 어떡해. 이제 와서 고쳐보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걸 어떡해. 그래도 걔는 씀씀이는 짜도 너 끔찍이 챙겨. 집에 올 때마다 너 잘 지내냐고 물어본다고."

 엄마를 속상하게 한 건 미안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언니에 대한 내 생각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걸 직접 물어야 진짜 관심이지 왜 엄마한테 물어. 무슨 엄마 앞에서만 좋은 언니 코스프레 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결론 없는 대화가 끝났다. 아무렇지 않은 듯 각자 할 일을 했지만 엄마는 내가 아빠에게 습관적으로 "그러지 뭐."라고 대답하는 것에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나는 예정보다 빨리 부모님 집에서 나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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