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엄마가 되었다
정말 나도 내가 어이가 없다. 언니에 대한 응어리니 뭐니 자존감이니 뭐니 작은 아이 한 명이 다 종결시켜버렸다.
조카를 가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언니는 조금 감성적으로 변했다. 뱃속의 아이가 뛰노는 초음파를 보며 "우리 00도 애기 때 저렇게 엄마 뱃속에서 놀고 있었겠지?"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에 놀라고 나의 아기 시절에 본인도 꼬맹이었을 텐데 저렇게 벌써 엄마 발언을 한다는 것에 조금 어색했다. 뜬금없이 연락해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내며 고맙다고 하고, 갑자기 밥을 사주고, 나의 선택들을 응원하며 내 편이라 말해주는 모습에 언니에 대해 나쁜 감정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것이 미안해졌다.
사실 생각해보면 정말 내가 무너져 내렸던 순간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가장 먼저 불렀던 것은 언니였고, 언니는 그 밤에 달려와 나를 안아주며 괜찮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무조건 나를 이해해주려 했고 부모님까지 설득했다. 언니가 있어 다행이라고 느꼈던 순간이었고 그 뒤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밤을 생각하면서 견딜 수 있었다. 엄마가 아플 때에도 언니는 역시 언니였고, 그런 언니의 존재가 너무나 크고 든든했었다. 언니는 정말 필요한 순간, 정말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 왔고 나는 그런 것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언니가 작은 것을 챙기지 않는다며 불평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언니가 이런 내 어린 마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평은 불평대로 다시 채워주려 노력하기 시작하자 나는 스스로가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돼서 그런 걸까.
조카가 태어나고 언니가 엄마에게 "00도 저런 사랑스러운 아기였을텐데, 내가 질투심에 너무 괴롭힌 것 같아 미안하네."라고 말했다는 것을 듣고 이제는 정말 내가 스스로 언니에 대한 기억들을 내려놓고 새롭게 관계를 시작할 때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조카를 돌보는 언니의 편안하고 따뜻한 표정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언니는 이미 오래 전부터 변해있었다. 원래부터 그런 언니였는지도 모른다. 나 혼자 사춘기 시절의 기억들에 사로잡혀 그 진심을 보지 못하고 오해를 쌓아가고 있었던 것 뿐이었을지도.
그리고 이 작은 아이는 정말 사람의 혼을 쏙 빼놓았다. 그냥 누워만 있어도 예쁘고 잠을 자도 예쁘고 울어도 예쁘고 뭘 해도 예뻤다. 작은 것 하나를 해내도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그 사랑스러움에 취해 있다 보니 나의 자존감도 저절로 올라갔다. '나도 저렇게 조건 없이 사랑받았던 시기가 있었겠지. 나는 기억을 못 하는 시기여도 분명 저렇게 사랑을 받고 컸는데 왜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스스로 어두워지고만 있었을까.' 하는 깨달음이 부모님을 향했던 원망도, 언니를 향했던 미움도, 스스로를 향했던 자괴감도 모두 사라지게 만들었다.
조금씩 커가며 '이모'라는 단어를 알아듣고 발음하기 시작한 후로는 내 마음엔 정말 사랑뿐이다. 조카를 직접 만나고 난 후에는 일주일 동안 그 사진을 보며 실물을 영접한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어쩌다 영상통화라도 하면 '안녕~'을 말하며 절대 끊지 못하는 것이 나다.
사실 처음 50cm도 안 되는 그 작은 아이의 배에 내 손을 얹었던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은 이미 그 아이의 것이었고, 낯을 가려 나를 째려보고 조금이라도 다가가면 울던 시기에도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니까 다 괜찮았다. 이렇게 예쁠 거면서, 나는 왜 그렇게 조카 태어나도 아무것도 없다는 둥, 이제 다 안 해주는 걸로 퉁지는 거라는 둥 1분도 못 갈 센 척을 했을까.
엄마 말 하나도 틀린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
"조카 태어나면 예쁘다고 간이고 쓸개고 다 알아서 퍼다 줄 애가"
그렇게 언니는 엄마가 되었고, 나는 이모가 되었고, 우리는 자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