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닥친 현실이 너무 힘들고, 주변 사람들의 무심함이 나를 너무 외롭게 할 때가 있다. 거의 대부분의 날이 그렇고 요즘의 나는 더더욱 그랬다. 과를 옮기고 기술직들이 아닌 행정직들과 일하면서, 함께 일했던 기술직들은 업무적인 충돌로 어딘가 사이가 어색해지고, 자기들끼리 문화가 심한 행정직들과는 가까워지기 힘들었다. 그사이에 여러 일들을 겪으며 나는 더 예민해졌고, 피해의식은 더 커져갔다. 누굴 만나도 나의 불평을 늘어놓기에 바쁘고, 이전 과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은 그런 나를 조금씩 멀리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또 상처를 받았다. 그래도 쌓아온 세월이 있고, 내가 너네를 위해 해준 게 얼만데 그렇게 멀어질 수 있을까 하는 원망이 사람들을 향한 미움으로 변해갔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방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한줄기 햇살처럼 비치는 작은 순간들을 갑자기 마주하고, 그동안 스쳐간 순간들을 떠올렸다.
무뚝뚝하고 깐깐한 이미지의 옆 사무실 계장의 남몰래 호기심 가득 반짝이던 눈, 평소에 말도 잘 안 하고 대답도 거칠게만 하던 사람이 베리맛 젤리를 찾으려 젤리통을 뒤지고 있은 모습, 차갑게만 봤던 사람의 물결(~)을 붙인 답장, 일을 시키고 닦달할 줄만 안다고 생각했던 상사의 '네가 고생한 거 나는 기억할게'라는 격려의 말...
이 작은 찰나의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화났던 어제를 잊게 하고, 눈앞이 깜깜한 현실에 아주 잠깐 따스한 빛을 비춘다. 잠깐의 빛으로 또 다음의 한주를 살아가게 한다. 그런 순간들을 선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좋아진 사람들이 주는 상처를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을까. 설렜다면 서운할 수 있고, 행복했다면 아플 수 있는 것, 백 번의 눈물이 백 번의 웃음 때문이라면 그렇게 손해 본 건 아닐지도.
어느덧 8년 차, 깨달은 한 가지는 사람에게는 다양한 면이 공존해서, 한없이 미워할 수도, 한없이 좋아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인간관계에선 영 꽝이라, 좋아지면 마구 다가가 의지하다가, 이전과 달라진 그들의 미세한 태도에도 상처받아버린다. 백인백색을 넘어 일인백색일 수도 있음을 깨달았을 때, 처음엔 좋은 마음도, 싫은 마음도 갖지 않는 중립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거리를 두고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연습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도무지 거리 두기가 가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중립을 유지하려 하면 스스로가 너무 삭막하게 느껴지고 그렇게 퍽퍽해진 마음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졌다. 그래 차라리 그냥 백번 좋아하고 백번 싫어하자. 그러다 마주하는 따스한 순간들을 기억하자.
사람이 서로 얽히고 뒹굴거리며 사는 세상에서, 마음의 롤러코스터가 없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다만 나의 롤러코스터를 남이 함께 타줄 의무는 없다. 그 의무는 온전히 내가 지고, 남에겐 그들이 나에게 주었던 따스한 순간들만을 투영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삭막한 중에 희미한 햇살로 다가오는 어떠한 순간들이 쌓여 내 마음이 강한 빛으로 채워질 그 어떠한 날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