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별 놈 편
처음 나의 선택은 말 그대로 '섹시'한 외형의 남자였다. 데이팅앱의 생태계란 역시 외형을 먼저 보고 시작되기 마련이니. 자꾸만 자신이 첼시에 사는 것을 강조하던 그는 아무래도 자신이 이 정도의 재력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뭐 나야 좋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대화가 흘러갔고, 그러다 갑자기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 있잖아, 나는 International 커플들이 좀 보기 좋다고 생각해. 내 말 뭔 말인지 알지?"
나는 그저 곧이곧대로 알아들었고
"응. 뭐 그럴 수 있지. 근데 나는 Nationality를 보고 누군가를 고르진 않았어. 하지만 사람에 따라 선호하는 외형이 있다는 건 인정해. 그게 가끔 인종과 연관되기도 하고."
하지만 그는 계속 그 말을 물고 늘어졌다.
"아니, 내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고. 기분상하게 할까 봐 돌려 말하고 있는 건데 있잖아 '미학적'으로 말이야."
대체 뭐 어쩌라는 거야. 미학적 뭐. 남자들은 이게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이해하려나. 혹시나 내가 어떤 Redflag를 알아채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일까 싶어 ChatGPT에게 물어봐도 내가 이해한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고, 그냥 나는 저렇게 계속 '미학' 운운하며 물고 늘어지는 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저기, 계속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나는 좀 불편해. 네가 계속 International이 어떻고 Nationality가 어떻고 Race가 어떻고 어딘가로 몰아가는 게 나는 좀 별로 편하지가 않네. 그냥 다른 좋은 사람 만나. 안녕"
그러자 그는 바로 꼬리를 내리며
"아니야. 불편하게 했다면 미안해. 다른 이야기 하자. 나에게 기회를 한 번만 더 줘"
라고 말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그는 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근데, 그래도 짚고는 넘어가야 할 것 같아. 네가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가 않아."
정말 짜증이 난 나는
"그냥 돌리지 말고 말해. 대체 뭔 말이하고 싶은 건데?"
라고 하자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난 포르노를 이야기하는 거야. 인종이 섞여서 하는 게 더 좋아 보인다고. 그리고 특히나 대단하게 묘사되는 인종이 있잖아? 네가 기분이 나쁘진 않길 바라"
대체 이 새키는 왜 이 얘길 꺼내는 걸까. 굳이.
"그래서 특히나 대단하게 묘사되는 인종이 뭔데?"
"흑인들"
나의 의문은 아직도, 이 남자의 의도가 대체 뭐였을까에 있다. 그는 흑인이 아니었기에 이 대화는 그의 섹스어필 측면에서도 전혀 도움이 안 됐고, 그래서 내는 흑인의 위대함을 알면서도 흑인이 아닌 본인을 골랐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난 그런 쪽으론 생각 안 해봐서 모르겠네"
그렇게 결국 자기의 19금 의도를 정확히 전달한 후에야 그 대화가 끝이 났고 그는 계속 "괜찮지? 우린 성인이고, 이런 대화할 수 있는 거잖아." 라며 본인이 Respectful 하며 Transparency 한 사람임을 강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이 별로였다. 19금도 19금이지만 더 기분이 별로였던 것은 내가 분명 '이 대화가 불편하다. 다른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라고 했음에도 기어이 돌고 돌아 계속 그 얘기를 끝까지 이어갔다는 점이었다.
결국 나는 아무래도 나는 불편하다. 그만하는 게 좋을 거 같다.라고 했고
그는 아무 대답 없이 사라졌다.
또다시 나는 다른 사람과 매칭이 되었고. '나는 사진보다 3배는 더 귀여워. 적어도 우리 엄마는 그렇게 말했어'라는 그의 메시지가 꽤나 귀여웠다. 그는 바로 데이트 약속을 잡자고 했고 나는 너무 빠르지 않냐고 물었지만 자기는 Nice guy라며 네가 Nice girl인지를 볼 것이라고 했다.
무슨 내가 평가를 받는 건가 싶기도 하고 자기소개에 Loyal에 대해 강조했던 부분과 겹쳐지며 살짝 Redflag가 떴다. 하지만 확인을 위해 물어봤다.
"네가 생각하는 Loyal이 어떤 건데?"라고 묻자
"선을 지키는 거지. 남자친구가 있으면 다른 사람과는 선을 지켜야지"
조금 애매했다. 어느 정도의 선인지 다시 물었다.
"정확히 어떤? 나는 남자인 직장 동료들도 있고, 친구들도 있어. 그들과 친하게 지내는 거도 너는 싫은 거야?"
"아니 선을 지키라는 거야. 나도 여자인 친구들이 있지만, 전 여자친구가 있을 때 그들과 거리를 지켰어. 매일 문자를 주고받는다던지, 여자친구보다 더 자주 만난다던지 하는 그런 것들은 선을 넘는 거지"
뭐 그 정도면 적당한 loyal이다 싶었다. Redflag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그가 나에게 왜 자기를 선택했는지 물었고 나는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는 크리스천이고, 그래서 같은 크리스천이면서 키가 크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을 찾았고 그 안에 네가 있었다고.
그리고 똑같이 그에게 물었더니 그는 좀 매우 이상한 답변을 했다.
"네가 아시안이라서"
이게 바로 그 Yellow Fever라는 건가. 뭐 외형적인 부분에서 아시안을 좋아하는 거라면, 백인남자 찾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다시 확인이 필요했다.
"아시안이라서? 왜? 어떤 부분에서 아시안인 게 좋은 거야?"
그러나 그는 외형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시안 여자들이 순종적이고, 여성스럽고, 남자 말 잘 듣고 그렇잖아."
이건 정말 명백히 피해야 하는 Yellow Fever였다.
그게 왜 나쁜 거야?라는 분들께 조금 더 설명을 드리자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취향이 있고, 여성스럽다거나 섬세하다거나 좀 더 순하다거나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람을 만나보고 겪어보고 지내보면서 알게 되는 그 사람의 성격이지 '아시안'이라는 그룹을 특정 잡아 '더 순종적이기 때문에'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위험합니다. "너는 아시안인데 왜 내 말을 안 들어?"라는 말을 듣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속으로 스스로는 기대할 수 있다. 우리도 뭐 유럽남자들이 이렇다더라, 한국남자들보다 더 다정하다더라, 더 사랑꾼이라더라 하는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대놓고 네가 아시안이니까 말 잘 들을 거 같아서라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음, 나는 그렇게 프레임이 씌워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
라고 나는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그가 만약 '아 미안해.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그렇게 범주화하지 않을게.'라고 했다면 좀 더 두고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이건 칭찬이야. 이게 무슨 문제야?"였고 그는 그렇게 또 사라졌다.
그 후 매칭된 다른 헝가리 남자에게 이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더니 그는 매우 놀라며 다시 물었다.
"뭐? 뭐라고 했다고?"
"내가 아시안이라서 나를 찍었대"
"어? 그건 그건 진짜 아니다"
"뭐 사실 그게 외형적인 거였다면 이해할 수 있었는데, 더 loyal 하고 docile 하고 feminine 할 거여서 그랬대"
"아니야, '네가 아시안이라서'라고 하는 거 자체가 잘못된 거야"
그렇다. Yellow Fever는, 아프리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헝가리 남자에게 들은 그의 에피소드는, 정말 한국여자들 그러지 맙시다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되어 돌아오는데...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