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별 놈이 다 있지만, 괜찮은 놈도 있다?
"언니, 여기서는 무조건 데이팅 앱이야. 안 그러면 사람 만날 길이 없어"
영국에서 함께하고 있는 북클럽에서 나온 이 대화는, 결국 나에게 다음 모임까지 사람 한 번 만나고 오기 미션으로 이어졌다.
은행, 국제기구 등 영국에서 번듯하게 자리 잡은 이 친구들은 한 명은 이미 결혼을 했고, 한 명은 한국에서 결혼한 상태로 왔고, 나머지 둘은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한 표본이라 보이는 이들이 나에게 데이팅 앱을 추천하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한국에서 나에겐 데이팅 앱이란, 이 또한 시대를 벗어난 늙은이의 감성일 수 있지만, 그저 원나잇을 목표로 하는 가벼운 만남들을 위한 도구로만 느껴졌고, 주선자가 없으니 눈치 볼 필요도 없다는 개념 하에 어쩌면 나의 안전이 위협받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장르였다.
하지만 이곳의 상황은 달랐다. 사람들이 꽤나 진지했고, 당연한 만남의 수단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이 모두 잠든 시간, 영국의 오후는 시작되고, 한국에 있을 때와는 달리, 나의 매일을 공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찾아오는 허전함과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고, 분명 과제다 논문이다 할 것은 많은데도 그 밀려오는 감정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 감정에 불을 지핀 것은 내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더 이상 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사건이었고, 한국에서의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그들에게 나의 어려움은 그저 '복에 겨워하는 소리'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하루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2026년 1월 1일 이후 단 하루도 비가 오지 않은 날이 없다(2.13. 기준)는 이 영국의 날씨 때문일까, 비타민 D를 최근에 챙겨 먹지 않은 탓일까, 이 우울감은 극에 달했고, 난 정말 어쩔 줄을 몰랐다.
"언니, 진짜 그냥 편하게 생각해. 런던에서, 다양한 사람이 있는 이곳에서, 방에만 처박혀 있지 말고, 이 사람 저 사람 다양한 인종, 국적 만나서 대화도 해보고, 얘넨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구나 도 느끼고, 외식도 좀 하고, 그런 기회는 스스로 찾는 거지. 굳이 뭐 남자친구를 사귀지 않더라도, 그러다 괜찮은 사람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좋고."
"그래 뭐 못해도 영어는 늘겠지. 방에 있음 맨날 드라마나 틀어놓고 점점 말을 잃어가는 느낌인데"
"그리고 그거 가입하려면 입력해야 할 정보도 질문도 많고 해서 엄한 놈들은 안 들어오기도 해. 근데 진짜 제대로 된 사람, 잘 맞는 사람 찾으려면 진짜 하루에 1-2시간은 해야 해.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남자들 다 쉴 때 그거 하고 있더라."
그렇게 나는 Hinge에 가입하게 되고, 생각보다 많은 필수질문에 머리 아파하며 데이팅앱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내가 진지하게 답을 단 만큼, 나도 진지하게 답을 단 사람들을 찾게 되고, 그들의 직업, 학교 등을 보며 이 사람 저 사람 찔러보기도 하고 찔림을 당하기도 하고, 이상한 놈도 보고, GPT와 함께 영국 직업구조를 탐색하며 느낀 것은, 생각보다 '깔끔'하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소개팅에서 거절도 예의 있게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이들의 깔끔한 마무리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주선자가 있어도 잠수 타고, 보자마자 자기 얼굴이 맘에 들어서 사진도 안 보고 소개팅 수락했냐는 말이나 지껄이거나, 나이 30 넘어서 엄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왔다는 발언에 화남 포인트가 한두 개가 아니었던 것을 생각하면, 주선자가 없다는 이 상황에서도 이들의 매너는 적당했다.
문자를 나누다가 '음, 나는 이런 대화가 좀 별로다. 이런 게 좀 안 맞는 거 같다.'라고 이야기하면 깔끔하게 unmatch를 선택하고 사라져 주는 이 남자들의 절제력. 한국 데이팅 어플에서 '만나자마자 스킨십해도 돼요?'라는 질문에 '아 저는 그런 사람 아닌데요'라고 했다가 'xx, 못생긴 x이'라는 쌍욕을 듣고 바로 어플을 탈퇴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오, 걱정한 만큼 저질들은 없는데? 해볼 만 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그리고 이제 사실 문자만 나눠봐도, 이상한 놈인지는 대충 알자나?"
그래 사실 나에겐 그동안 쌓인 미친놈 데이터가 있었기에 더 해볼 만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대화로 걸러졌던 사람들은 또 나름 상상초월의 발언을 해서 걸러진 것이지만... 이 또한 모아서 소재거리로 삼기 재밌겠다 싶은 에피소드들이 쌓인다는 점에서는 나름 또 재밌는 경험이었다.
데이터를 좀 더 모아서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