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축구와 아이스하키가 북미에서만 인기있는 이유
어디선가 한국인은 미국인과 사고방식이 꽤나 유사하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다. 그럼에도 여러 매체를 통해 미국 문화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꽤나 있다. 그중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바로 '마초에 대한 숭상'이다. 물론 어깨 떡 벌어진 남자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지만(사실 남자들이 더 좋아함) 그들의 취향에서 어딘지 모를 지독함이 느껴진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단연 미식축구이다. 구기종목들이 보통 상대방의 골대에 골을 넣거나 어느 구역에 공을 맞추는 룰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미식축구의 독특한 점은 공격팀이 수비팀을 뚫어내고 수비팀이 지키는 엔드존에 도달할수록 더 높은 득점을 하는 룰을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류 최강의 피지컬들이 문자 그대로 격돌하는 미식축구는 '몸으로 하는 진격의 공성전'이다.
또 아이스하키가 있다. 아이스하키는 사실 패싸움이 메인 콘텐츠인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패싸움이 잦다. 더 놀라운 점은 패싸움을 용인하는 게 공식적인 규칙이라는 점이다. 상대 팀의 더티플레이에 열이 받는 등의 상황에서 장비를 바닥에 내팽개지는게 신호로서, 양 팀이 격돌한다. 나름의 이유는 있다. 전신에 스케이트 날, 스틱, 헬멧, 패드, 퍽 등 온갖 흉기를 가진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아무 제약 없이 격돌하는 건 막아야 했다. 반면에 아이스하키는 온갖 보호구를 착용하기 때문에 맨주먹으로 싸우는 건 선수들끼리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히지 못한다. 맨주먹싸움만 허용하는 건 일종의 안전밸브로서 작동한다. 더 큰 폭발을 막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내가 구기종목에 취향이 없기도 하지만 풋볼이나 아이스하키만의 독특함을 공유하는 스포츠를 알지 못한다. 심지어 그런 독특한 특성이 북미지역 한정으로만 압도적 인기를 누린다는 사실은 '마초에 대한 숭상'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한 단서가 되어준다. 수비를 뚫고 진격하는 미식축구의 룰과 더 큰 폭력을 작은 폭력을 통해 배출하는 아이스하키의 룰, 이 두 가지는 미국의 독특한 역사와 정신과 맞닿아 있다.
미국의 역사를 상징하는 단어는 '팽창'이다. 영국의 식민지가 지구 최강의 패권국가로 성장하기까지의 여정은 팽창의 반복이었다. 서부로, 서부로, 중앙아메리카를 넘어 세계 대전을 넘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팽창의 전제는 약탈이었다.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 멕시코인을 탄압하고 착취했다. 오직 백인만을 위한 유토피아를 위해서 말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유색인종들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이를 꺾기 위해 제도는 이들을 혐오하고 싸워 이길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지원했다. 유색인종을 사냥하는 등의 군 경력은 신분 상승의 주요 길목이었다. 당신들의 헌신으로 얻은 국가적 부를 개인에 나누겠다는 약속도 했다.
미국인들에게 국경이란 '파도의 가장자리'였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에 가장자리라 부를 부분은 모호하다. 그러나 이 역설이 팽창의 상징이다. 미국은 차츰차츰 그들의 국경을 그들의 욕망만큼만 끝없이 밀어냈다. 수비를 뚫어내고 적의 땅에 도달해 터치다운을 얻어내는 미식축구는 팽창의 역사에 대한 메타포이며 미국 그 자체이다.
야구는 미국이 선망하는 것이고, 미식축구는 이 나라 그 자체이다. Baseball is what America aspires to be, football is what this country is. -제이미 윌리엄스-
한편 역사적으로 급성장한 부국은 내부의 이권다툼으로 반짝 멸망하곤 한다. 미국이 이를 회피한 방법은 또 다른 팽창의 반복이었다. 내부의 가스가 가득 차는 상태에서 압력 폭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안전밸브를 통해 가스를 방출하는 것이다. 미국의 상황 또한 같았다. 폭발 직전의 상태, 모두가 ‘안전밸브’를 소원하며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답을 회피했다.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약탈의 대상을 가리키며 그것을 재분배하겠다는 약속뿐이었다. 그렇게 폭력과 정복이 정당화되며 안전밸브가 열리고 갈등은 파도의 가장자리를 따라 해소되는 듯 보였다. 물론 한 번의 팽창이 마무리되면 또다시 이런 현상이 반복되었다.
용기에 대한 많은 정의가 있지만 나는 '아무리 힘든 경험에 처해서도 이 상황이 달라지기를 바라지 않고 현재의 순간에 머물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정의를 좋아한다. 반면에 안전밸브가 상징하는 미국의 선택들은 딴청의 연속이었다. 문제 상황을 회피하기 급급해 착취에 기반한 팽창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했다. 문제를 바로 보지 않고 얼렁뚱땅 딴청을 피우며 아슬아슬하게 다음으로 넘어갔다. 압력 폭발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전쟁과 혐오라는 안전밸브를 이용해온 미국의 선택은 하키체와 스케이트 날로 싸우지 않기 위해 주먹으로 싸우는 아이스하키의 룰에 그대로 묻어난다. 폭력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게 진짜 문제 해결일까?
팽창과 딴청을 반복하는 방법으로 패권국가가 되었지만 지구 영토에는 한계가 있다. 팽창이 무한할 수는 없었고 트럼프의 장벽이라는 상징을 통해 팽창이라는 신화는 막을 내렸다. 장벽은 파도를 막아섰다. 그러나 팽창의 역사는 버블경제 이전의 일본보다 진하게 미국인들의 향수로 남아있다. 여전히 만연한 인종갈등과 자국민 우선주의 등이 이를 반증한다. 팽창의 신화에 의해 견인된 미국이 신화의 종말을 맞이한 미래는 어떻게 될까.
참고: 나무위키 - 아이스하키, 미식축구
inspired by <신화의 종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