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과실을 수확하는 해
또 한 해가 갔다. 방황하다가 고쳐 살기로 마음먹고 실천으로 옮기기 시작한 지 만 4년이 지나간다. 생각해보면 4년은 학사를 받을만한 시간이다. 돌이켜보면 삶에서 참 많은 것을 고쳤고 거듭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 4년에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없다. 거시적으로도 많은 일이 있었다. 위드 코로나, 우-러전쟁과 경기침체 등.
정치에 과몰입하던 주변인에게 항상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윤석열도 이재명도 우리 개개인을 지옥에 끌고 갈 수 없고, 천국으로 인도할 수 없다. 거시적 변화에 의한 압력보다는 개인의 노력이 자신의 행복에는 훨씬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이다. 말 한마디에 목이 달아나는 왕정시대도 아닌 현재의 대한민국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2022년은 이런 믿음을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게 된 한 해였다.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인생트랙으로 옮겨 흐름을 유지하니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연봉도 많이 올렸고 좋은 주변 사람도 많이 생겼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점은 보상이 쏟아지는 게 이제 시작인 것 같다는 점이다. 성장은 계단형이라는 말이 있다. 노력을 해도 별 변화가 없는 횡보구간에서 갑자기 보상이 쏟아지는 수직상승 구간이 있는데, 상승이 시작된 것 같다. 뭐랄까… 논리적으로 납득시킬 자신은 없는데, 밝은 미래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신탁의 기사가 된듯하달까.
이 회고문을 쓰기 위해 한 해를 돌아보는 매트릭스 정리표를 디자인하고 우리 독서모임 <로운>과 작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의 정리표가 궁금하고 해보고 싶은 분은 이전 글인 ‘새해엔 사이좋게 둘러앉아 계획을 세워봅시다’에서 사용법을 확인하고 양식을 받아가시길 바란다.
무엇보다 2022년은 무려 세 개의 회사에 몸담은 해였다. 이걸 기념비적이라고 해야 하나 했다. 어쨌거나 밑바닥에서 만루홈런 치는 인생을 꿈꾸며 스타트업에 취업했고 그 현실적 한계를 많이 깨달았다.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최소한 동료들과 서로의 무능함을 수용하고, 자신의 무능함은 초연히 개선하는 유사 수도승 집단이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 집단은 단지 머리 빠진 나르시시스트 피터팬과 함께 불타는 네버랜드에 뛰어드는 불나방들에 불과하다.
스타트업은 단순히 ‘신생기업’이 아니라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선점하는 비즈니스를 뜻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낭만적이고 굉장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지만, 콜럼버스와 달리 물고기 밥이 된 선원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보자. 심지어 고생 끝에 개척한 블루오션에서 나오는 자원이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LG전자는 무려 2001년에 타블릿 PC을 개발해 상용화까지 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물론 오해는 말았으면 한다. 비관적인 게 아니라 담담히 현실을 그려보는 거니까. 결국 레드오션에서 살아남을 줄 아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붕어빵은 추울 때 좋은 길목에서 냄새만 피우면 장사가 된다. 볼품은 안 나더라도. 레드오션에서 살아남고 생긴 잉여력으로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게 안티프레질한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2사 분기엔 머리 빠진 피터팬을 떠나 퇴사를 하고 연봉을 꽤 올려 다른 스타트업으로 이직에 성공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투자금이 끊겨 깜짝 해고를 당했다. 하지만 또다시 3주 만에 연봉도 소량 높여 현재의 회사에 입사했다. 첫 구직 때는 거절당하는 게 나 자체를 거절하는 것 같아 두려운 감이 있었지만, 두 번째 세 번째에는 자신감이 꽤 있었다. 내가 채용되지 않은 경우들도 대게 내 연봉을 맞춰주지 못하는 회사들이었다.
다사다난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게 좋아졌다. 현재의 회사는 오랜 업력의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인데, 레드오션에서 오랜 기간 생존해서 확실히 안정감이 느껴진다. 업무 결과가 내 포트폴오에도 긍정적인 결과물을 안겨줄 것이라는 기대도 된다. 정신없이 피봇이니 뭐니 갈아엎기 바쁜 스타트업과 달리 요구되는 시각화 작업물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다사다난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내 생존력 자체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위의 내용과 대비되게도 어도비 XD에서 피그마로 완벽히 넘어온 것을 제외하면 디자인 능력은 사실 그렇게 성장하지 못한 느낌이다. 커리어 방향성에 대한 가늠도 어느 정도 되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겠고 시도도 해봤는데 별로 이어가고 싶지가 않다. 결론적으로 진로와 내 궁합의 문제이다. 이쁜 그림만 그리는 게 싫다고 3D 모델링에서 UX 디자인으로 넘어온 건데 붕뜬것 같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혼란스럽지는 않다. 디자이너로서의 삶이 여기까지 일수도 있다. 하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아님 말고.’ 발등에 불 떨어지면 훌륭하지는 않아도 어떻게든 해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냥 하는 것과 훌륭하게 해내는 것의 차이는 매일 정진하는 자세와 실천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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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으로 2023년엔 디자이너로서 거듭나는데 큰 힘을 쓰지 않을 예정이다. 대표님이 이 글을 보신다면 뒷목을 잡을 노릇이겠지만, 남의 사업보다는 내 삶이 당연히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 약간의 배덕감과 디자이너로서 잘되는 노력을 안 한 데에 대한 약간의 불안감을 연료 삼아 정해진 업무시간에는 정말 최선을 다해 일을 할 생각이다. 아마 회사에서 아티클을 보거나 CSS/Html 공부를 하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퍼스널 브랜딩에 대해서는 항상 고민하고 시도를 해보지만 아직 꾸준히 뭔가를 지속한 적은 없다. 브런치도 거의 달에 글 한 개 꼴로 발행하고 있다. 3분기에는 직장인 퍼스널 브랜딩 강의를 들었다. 그에 대한 결과를 내기 위해 콘텐츠를 몇 가지 준비하다 결국 준비만 했다. 4분기에는 파이널컷 강의를 들었다. 역시나 준비만 했다. 2023년에는 이 지식들을 활용해서 정말로 콘텐츠를 만들고 업로드를 하고 퍼스널 브랜딩을 할 것이다.
브런치는 디자인 지식을 공유하며 디자이너로서 브랜딩을 하려고 했으나 위의 이유로 중지했다. 이제 브런치에서는 다섯 문단 이하의 자기 계발 에세이를 연재할 예정이다. 누굴 가르치려 들거나 내 지식을 자랑하는 목적이 아닌 내가 앞으로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정리하고 검증받는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현재 머릿속에 생각들이 많이 엉켜있는데, 일주일에 최소 하나씩 발행하며 해소할 계획이다.
유튜브는 디자인 베이스의 테크 유튜브를 이중획회이. <생산성에 미친 디자이너의 키보드 추천> 이런 식의 제목으로 내가 디자인하며 겪은 손목 통증등의 부상이나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한 하드웨어 지식을 체계적으로 공유할 예정이다. 이 또한 핵심 아이디어들은 90% 이상 머릿속에 있는데, 이를 언어화하는데 수고가 많이 들것 같다. 파이널컷에 정착하는 것도 순탄치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영상은 원래 잘 만들었으니 곧 잘하지 않을까 싶다. 영상은 달에 하나씩 업로드하는 게 목표다.
한 해 동안 여러 클럽 활동을 했다. 운동하는 친구들은 여전히 연락도 하고 잘 지내지만 다들 운태기가 와서 상반기에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래도 뭐 한 번은 보겠지 싶다. 다음으로 그림모임을 다녔다. 즐겁게 잘 참여했지만 아무래도 소모성 모임이다 보니 좋은 친구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림실력도 딱히 늘지는 않았다. 녹슬지 않게 관리했다는 점에서는 나름 선방인가?
그러다 10월쯤에 좋은 친구들과 셋이서 독서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다들 퍼스널 브랜딩에 관심이 있어 퍼스널 브랜딩을 위한 독서모임으로 정체성을 형성하고 주 1회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생각보다 인원이 빨리 늘어나고 있고 좋은 멤버들도 많이 합류하고 있다. 더 다양한 분들을 다양한 채널에서 모시고 다른 활동들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독서모임 운영을 위해 다른 모임도 다니며 벤치마킹을 하려고 한다.
2021년 연말에 급발진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그 이전 몇 년간 해야 한다는 압박은 있었다. 영어독립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오픈 며칠 전에 한번 방문했더니 구매가 가능해서 그 길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기초적인 영어 공부를 해서 괜히 창피하게 느꼈는데 그 구간을 벗어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반년정도 공부하니 기존의 공부방법이 어느새 내게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하루에 30개를 시험 보고 틀린 것들을 계속 모아서 공부했는데,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니 초반에 한두 개 틀릴 때와 나중에 15개 20개씩 틀릴 때는 난이도가 완전히 다른 공부였다.
운동으로 비유하자면 하루 10개씩 하는 동작을 매주 0.5kg씩 증량을 하는 훈련 방법이었는데, 처음엔 쉽고 근육도 빨리 붙었지만 어느새 지쳐버리고 근육 자체에 쌓인 피로감도 상당했던 것이다. 그렇게 심리적 피로감에 두 달 정도는 아예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두려움이 진정되고 다시 조금씩 시작했지만 이전처럼 성실히 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좀 더 공격적으로 공부를 해보자고 디자인 아티클을 무작정 번역해서 올리기 시작했다. 정제된 문장들이 아니고 의지할 데가 구글번역기밖에 없어 힘들었지만, 오히려 그 고단함과 개척감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디자인 자체에 흥미가 떨어지며 접었다.
원래 독서를 출퇴근시간 전철에서 많이 했는데, 올해는 독서가 아닌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하며 자연스레 독서량이 줄었다. 올해는 총 11권을 책을 읽었다.
이제 명색이 독서모임 모임장인데 당연히 책은 열심히 읽어야 한다. 얼마 전 본 영상에서 말하길, 한국에서 영어 능력은 부의 대물림 수단이라고 한다. 영어 공부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영어는 비중이 높지는 않아서 독서 50분에 영어 10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기계체조 계열의 운동을 두 가지 했다. 기계체조의 철봉과 평행봉 종목을 주로 닮은 스트릿 워크아웃(이하 스웍)과 마루 종목과 무술을 교차한 트릭킹이다. 2022년 상반기에는 스웍을 열심히 훈련한 덕분에 피지컬이 정점을 찍었었다. 상체 운동을 열심히 한 적이 없어서 보통 몸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는데 그걸 처음으로 달성했다. 그러나 고중량 저 반복에 가까운 운동들을 하다 보니 관절에 점점 부하가 생겨서 피치 못하게 운동을 쉬어야 했다.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을 때 동네 복싱장에 등록했다. 관절에 부담도 없고 그간 못 챙기던 신체의 약한 부분을 채워갈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트릭킹을 하러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미련이 안 떨쳐질 정도로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미련을 떨치기 위해 되돌아간다는 게 후회에 발목 잡힌 후퇴인지,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전진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쨌거나 2023년엔 좀 더 체계적으로 트릭킹 훈련을 하고 싶다. 트릭킹 자체만이 아니라 전후로 다양한 훈련을 통해 대회에 한번 나가보고 싶다.
너무 길고 장황하고 토픽도 여러 가지라 끝까지 읽어주셨을까 모르겠다. 목표의 궁극적인 형태는 언제나 후회 없는 삶이다. 단기적으로는 후회 없는 순간들이고 그것들이 모여 후회 없는 삶을 만든다. 1월 1일부터 코로나에 걸렸지만 이 또한 좋은 징조라고 생각하며 넘기기로 했다. 후회 없을 2023을 위해 서로의 건투를 빌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