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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빠 순희(2)

by 하정

조별 과제 공지가 떴다. 4인 1조, 자유롭게 조 구성.
순희는 늘 그렇듯 친한 친구들과 조를 짜려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는 수업에 결석한 친구였다.
결국 교수님이 임의로 짜준 조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엔 그 복학생 선배도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과제 조를 확인하고 찾아온 순희가 조심스레 인사하자, 복학생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 네. 우리 같은 조 됐네요."

처음으로 마주 앉은 테이블, 카페의 조용한 구석.
선배는 의외로 꼼꼼했다. 발표 자료를 정리해 놓은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며 조리 있게 설명했다.

“이 파트는 제가 맡을게요. 순희 씨는 발표 쪽이 어때요? 발표 톤이 되게 안정적이던데.”

순희는 놀랐다.
그가 내 발표를 기억하고 있었나?
그 순간, 마음이 살짝 요동쳤다.

“아… 네. 할게요. 잘해볼게요.”

선배는 미소를 지었다. 밝고 따뜻한, 이전엔 잘 보지 못했던 표정.
순희는 괜히 눈을 피했다.

며칠 후, 또 수업이 있는 날. 순희는 일부러 선배 쪽 자리를 보지 않으려 했지만,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향했다.
그는 오늘도 일찍 와 있었다.
노트북을 켜고 자료를 정리하던 그는, 순희를 보자 고개를 들고 조용히 웃었다.

“왔네요.”

그냥 인사 한마디였지만, 순희의 마음은 또 쿵 하고 울렸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의 눈빛이 따뜻하다고 느껴졌다. 예전엔 느껴본 적 없는 부드러움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선배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자료 정리 조금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시간 괜찮아요?"

“아… 네. 뭐, 집에 가도 딱히 할 건 없어서요.”

그날 저녁, 도서관의 조용한 열람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펴고 발표 내용을 정리했다.
말수가 적은 선배는 가끔 고개를 돌려 순희의 화면을 확인했고, 그때마다 순희는 괜히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선배가 말했다.

“요즘, 피곤하죠?”
“네?”
“얼굴이 좀 지쳐 보여서요. 혹시 부담스러우면 말해주세요. 발표 준비 제가 더 할게요.”

그 말에, 순희는 잠시 멍해졌다.
누군가가 내 얼굴을 그렇게 세심하게 본 게, 얼마만이었을까.
남자친구도, 요즘엔 바빠서 그런 말 잘 안 해주는데…

‘괜히 따뜻하다. 이런 거, 발표 준비 자기가 더 한다고?

왜 그런 말을 하는거야. 너무 설레잖아. 설레면 안 되는데…’

순희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괜히 더 천천히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선배와의 대화 장면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설레는 건 죄가 아닐 텐데.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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