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 시간에 즈음하여 비가 내렸다. 다행히 비는 거세지 않았고 잦아들었으며 아이를 찾고 나올 때는 그쳤다. 가끔 나무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이 떨어지는 정도?
딸아이는 하원하면 반드시 다이소에 들른다. 몇 달 전에는 약국을 매일 드나들었는데 더 이상 약국에서 살게 없자 바로 옆 동네슈퍼에 들렀다. 슈퍼에서는 주로 과자, 젤리를 사고, 가끔 껌, 아이스크림을 샀다. 이렇게 매일 새로운 제품을 사던 아이는 어느 날부터 슈퍼를 가지 않았다. 아이가 다음으로 가게 된 곳은 다이소. 언젠가 다이소도 안 가는 날이 오겠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릴 듯하다.
그렇게 어린이집 하원 후 아이와 손을 잡고 다이소로 향하는 길, 비가 와서 바닥은 젖어 있었고 아이는 도로가에 심어져 있는 키 작은 나무들의 이파리를 만지면서 걸었다. 그러던 중 나무 근처 바닥에 작고 귀여운 달팽이가 눈에 띄었다.
"달팽이다." 내가 말했다.
"어디?"
아이는 열심히 바닥을 살피더니 달팽이를 발견했다.
"와 달팽이다."
아이는 쪼그리고 앉아 달팽이를 잡았다. 그리고 나에게 들어 올리며 보여줬다. 기분이 좋은지 씩 웃으면서.
"이제 다이소 가야지. 달팽이는 다시 놔주자."
"싫어. 나 달팽이 데리고 갈래."
사실 몇 달 전 부추단에 달려온 달팽이가 있어서 며칠 키웠었는데 2주 정도 살다 죽은 일이 있었다. 그때가 생각나서
"또 달팽이 키우다 죽으면 어떻게 해? 불쌍하잖아. 여기 두고 가야 잘 살지. 놔주자."
아이는 고민하는 듯했지만
"나 키우고 싶단 말이야."라고 말하며 달팽이를 어린이집 가방에 들어 있던 종이 위에 올려놓았다.
결국 달팽이를 두고 가지 못하고 다이소에서 달팽이 집을 샀다. 달팽이 집이라 말하지만 곤충 채집통이다.
나는 좁은 집에 살지만 달팽이만은 넓은 집에 살라고 3000원짜리 평 수 넓고 손잡이도 있는 통을 선택했다.
채집통에 달팽이를 넣고 인근 공원에서 나뭇이파리를 몇 개 뜯어 넣어줬다. 집에 와서 달팽이 밥으로 애호박을 썰어 넣어줬다. 얼마 전 집안 화분에서 허브를 키우기 위해 샀던 분무기로 물도 뿌려줬다. 달팽이는 햇빛을 싫어하고 비를 좋아한다. 달팽이는 더듬이를 늘였다 줄였다 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가끔 그 작은 입으로 애호박을 맛있게 먹었다. 뿌려준 물이 좋은지 물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했다.
아이는 달팽이한테 밥도 주고 물도 뿌려주면서 신나서 달팽이를 쳐다봤다. 채집통도 꾸민다며 하츄핑 스티커를 여기저기 붙였다.
"엄마. 나 달팽이 연구할 거야."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연구한다는 말을 하면서 열심히 달팽이를 관찰했다.
다음날 아침 등원을 하는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달팽이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싶어."
아이는 채집통을 들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채집통을 보더니
"이게 뭐야?" 그러신다.
"하은이가 친구들 보여주고 싶다고 가지고 왔어요."라고 내가 말하자 아이는 씩 웃었다.
하원 시간이 되어 어린이집에 가니 연장반 선생님이 달팽이 통을 들고 나오셨다.
"오늘 친구들이 달팽이를 보고 너무 좋아했어요. 어린이집에 엄청 큰 달팽이가 있는데 얘는 작아서 너무 귀여워요. 그리고 미미반에서 달팽이 빌려달라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선생님은 즐거운 듯 웃으시며 말했다.
"네. 그럼요. 그럼 오늘 두고 갈게요."
선생님은 하은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은아. 오늘 이거 어린이집에 두고 가고 내일 집에 갖고 가자."
하지만 하은이의 표정은 난감해 보였다.
"하은아. 달팽이 오늘 데리고 가면 내일 또 갖고 와야 하니 오늘은 두고 가자. 달팽이 왔다 갔다 하면 멀미 나고 힘들어."내가 말했다.
아이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아이 손을 잡았다.
"하은이 선생님한테 인사드리고. 집에 가자."
그러자 아이는 선생님에게 달려가 달팽이 채집통을 잡아당겼다.
엄마와 선생님이 달팽이 두고 가라니 억지로 긍정의 대답을 했나 보다. 나와 선생님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하은이 달팽이 집에 데려가고 싶어?"
"응"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럼 내일 다시 데리고 오자."
선생님은 못내 아쉬운지 이렇게 말했다.
"하은아. 혹시 달팽이 두고 가고 싶음 다시 연락 줘. 선생님 기다리고 있을게"
우리는 그렇게 어린이집 현관에서 헤어졌지만 다시 선생님께 연락하지 않을 거라는 건 나나 선생님 모두 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하은이는 달팽이 똥을 치워준다며 휴지로 채집통 내부에 있는 달팽이 똥을 열심히 닦았다.
그리고 밥도 넣어주고 물도 뿌려 주었다.
달팽이가 건강히 잘 살기를 바라며, 흙도 넣어주고 달팽이밥도 구입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