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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첫눈, 첫 눈사람

by 하정

2025년 첫눈이 왔다. 아이 친구집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5세 딸아이는 눈을 보자마자

"엄마 눈이 왔어요. 우리 눈사람 만들어요." 그런다.

이미 저녁 9시가 다 된 시간이라 꽤 어두웠다. 물론 인근에 가로등이 있었지만.

"너무 늦어서 빨리 집에 가야 돼. 집 근처 가서 만들자."

"지금 만들고 싶어요."

아이가 고집이 센 편이라 급한 마음에 밥그릇 크기로 작은 눈사람을 대충 만들었다. 아이는 눈사람을 보더니 그것을 집어 들었다.

"나 이거 집에 갖고 갈래."

"집에 갖고 간다고?" 난 난감해졌다.

"응"

"그런데 집에 들어가면 녹을 텐데."

"냉장고에 두면 되잖아."

"아. 그럼 괜찮겠다."


아이는 신나서 작은 눈사람을 양손으로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퇴근 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문을 열자마자

"아빠. 눈사람 데리고 왔어요."라며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눈사람을 보더니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하은아. 이거 집 밖에 두자. 여기 두면 녹아서 없어져."

그러자 아이는

"냉장고에 넣을 거예요. 그러면 안 녹아요." 그런다.

남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냉장고에 넣으면 괜찮을 거야."

그랬더니 남편이 급하게 눈사람을 받칠 네모난 반찬 그릇을 찾았다. 남편은 그릇을 아이에게 주며

"하은아. 여기에 넣어서 냉장고에 두자." 그런다.

아이는 데려온 눈사람을 네모난 그릇에 집어넣었다. 눈사람이 그릇에 꽉 찼다. 남편과 아이는 같이 냉장고로 가서 아이 키높이에 맞는 냉장실에 눈사람을 집어넣었다.


다음날 어린이집이 끝나고 아이와 집으로 향하면서

"집에 눈사람 잘 있는지 빨리 가보자." 그러니깐 아이도 궁금한지 그러자고 한다.

집에 가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눈사람이 형태를 유지한 채 잘 있었다.

"눈사람 잘 있네."

아이도 보면서 좋은지 씩 웃는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아침에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눈사람은 거의 없어지고 물과 먼지와 낙엽 조금 남아 있다. 아이에게 그릇을 보여주며

"눈사람이 녹아 버렸네."라고 말하니 아이는 우는 소리를 내며

"어떻게 해. 눈사람이 없어졌잖아." 그런다.

다행히 가끔 읽는 동화책 중에 봄이 되면서 눈사람이 사라지는 내용이 있어서 그런지 아이는 눈사람의 실종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눈사람이 없어져서 속상해" 아이가 말했다.

"그럼 이따가 눈사람 또 만들어서 데려올까?"

"이제 눈이 없잖아. 다 녹아서."

"아니야. 길에 있는 눈은 다 녹았는데 공원 이런데 가면 아직 남아 있는 눈이 있을 거야. 이따 나가서 찾아보자"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이번에는 냉장고 위에 넣어요." 그런다.

'냉장고 위? 냉동실을 말하는 건가?'

"냉동실에 넣자는 거지?"

"응"

아무래도 냉장실에 넣어서 눈사람이 녹아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눈사람을 다시 찾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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