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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vhon Feb 14. 2023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은 꼭, 말만큼 쉬운 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말이야 쉽지’, ‘말은 쉬워도’. 이런 말들을 생각해봐도 말은 쉬워 보인다. 점심 시간의 카페에 들어가거나 명동의 길거리를 걸으면서 허공을 부유하는 수많은 말들과 단어들 속을 헤쳐 나아가다 보면 이 세상이 정말 말에서 말로 끝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쉬운 말들이 있다. 구글 검색창에 들어가 ‘실언’을 검색한 뒤 뉴스 카테고리로 들어가면 오늘도 참 많은 사람들이 말 같지 않은 말들을 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굳이 확인해보지는 않는 걸 추천한다). 그 말들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무지를 가리기 위해 허겁지겁 덧대어지는 말들이기에 그 민낯은 금방 들통이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때로는, 충분한 숙고 없이 급하게 선택한 그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2012년, 올림픽은 런던이 아닌 파리에서 개최될 수도 있었다. 런던과 파리가 올림픽 개최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이어가던 때의 일이다.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영국을 깎아내리고 프랑스의 올림픽 개최 가능성을 높이고 싶었다. 그는 영국을 공격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심하던 중 영국의 악명 높은 음식에 대해 생각했고, 이런 말을 뱉었다.


 “영국 음식이 핀란드 다음으로 별로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자존심에 생채기를 입은 것은 영국인들이 아닌 핀란드인들이었다. ‘핀란드 다음으로’라는 표현이 핀란드 국민들의 ‘맛부심’을 건드린 것이다. 투표 결과가 비밀에 부쳐지기 때문에 핀란드 위원 두 명의 투표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는 단 4표 차이로 올림픽 개최권을 영국에게 넘겨주었다. 이처럼, 쉽게 뱉은 말은 때로 쉽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어려운 말들도 있다. 자신의 지난 과오를 드러내거나,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는 말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 말들은 새살을 돋게 하기 위해 자신의 살갗을 도려내는 것과 같아서 고통을 견뎌낼 용기와 변태(變態)의 의지가 필요하다. 의지가 없다면 용기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용기가 없다면 의지는 현실로 나아가지 못한다. 용기와 의지를 두 바퀴 삼아서 나아가는 말은 결국 스스로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어두운 현실에서 시가 쉽게 쓰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던 시인의 정신은 지금껏 내가 언어를, 그리고 말을 어떤 식으로 다뤄왔는지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한 줄의 시를 적는 것과 한 문장의 말을 뱉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어려울 필요가 있는 일이다. 단어와 문장, 말과 글, 시와 노래들은 쉽게 뱉어지지 않을 때 비로소 아름답다.


 말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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