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 반 산트 <굿 윌 헌팅>
챗GPT가 세상에 나온 뒤로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더 이상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경제, 철학, 역사, 문학 등의 것들 중 어떤 분야의 것을 물어봐도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는 모습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지다. 인간이 적어 넣은 답들을 카드처럼 꺼내 보여주는 기존의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그것(유례가 없다는 것은 곧 그를 표현할 언어가 부족하다는 말일 수도 있겠다)은 아직 완성형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달아놓으면서도 질문자가 원하는 답을 내어주는 유연함을 갖추고 있었고 몇 번의 채팅으로도 질문자의 성향에 맞추어가는 학습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챗GPT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입꼬리들에 위기감이 슬며시 걸려있는 듯한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런 위기감을 가진 인물의 표정을 본 기억이 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는 과거의 친구로부터 부탁을 받고 윌 헌팅(맷 데이먼)의 상담을 하게 된다. 그는 뛰어난 수학적 사고력과 기억력을 지녔음에도 남다른 싸가지를 보유하여 상담을 맡는 이들을 번번이 포기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청년이었다. 숀과 윌은 첫 상담부터 충돌하는데 윌은 숀의 그림을 보고 “완전히 쓰레기다(This is a real piece of shit)”라고 말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는 숀에게 윌은 그의 위태로운 감정이 투영된 그림이라고 평하며 그의 아내를 모욕하기에 이른다. 한 차례의 충돌이 있고 윌이 상담실을 나간 뒤, 홀로 남은 숀이 허공을 응시하는 눈빛에는 자신의 내면이 어린 청년에 의해 들여다보였다는 당혹감이 비춰 보인다.
그는 다음 상담에서 윌을 공원에 데리고 나간 뒤에 두 번째 상담을 진행한다. 그곳에서 그는 첫 상담을 한 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하며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오른 뒤에야 곧바로 잠에 들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 그 생각은 바로 윌이 어린아이일 뿐(You're just a kid)이라는 것이다.
숀은 윌이 어린아이인 이유에 대해서 ‘너가 스스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숀은 윌이 미켈란젤로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의 걸작품, 정치적 야심, 교황과의 관계, 성적 지향성까지 댈 수 있겠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냄새는 알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지식이나 기억력이 뛰어난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가치에 대해 말하던 그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정한 상실감이 무엇인지 너는 몰라. 타인을 너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You don't know about real loss, cause that only occurs when you love something mor than you love yourself.)”라는 대사는 지식과 사고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며 ‘인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은 인공지능만큼의 연산력과 정보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인공지능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 다른 이를 자신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해버리는 미련함은 인공지능이 결코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다.
영화 <굿 윌 헌팅>은 불량한 천재 소년이 마음을 여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낸 영화로 유명하지만, 이 영화에서 성장하는 것은 윌만이 아니다. 숀은 윌과의 마지막 상담에서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말하며 “세상이 또 나에게 어떤 것을 줄지 알아볼 생각이다(I figured I'm just gonna put my money back on the table and see what kind of cards I get.)”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천재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앞에서 스스로를 지켜냈고, 그 어린아이는 가질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찾아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또 다른 가치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그의 결심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은 인간을 위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인간만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인간을 더 성장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가진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앞서 이야기했던 인간의 미련함이 그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도로 상황과 최적의 경로를 계산하는 AI내비게이션은 도로에 쏟아진 적재물들을 함께 주워 담아주는 일을 제안하지는 못할 것이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신호등이 꺼진 뒤에 횡단보도에 남겨진 노인에게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눈빛을 보내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은 어리석기 때문에 인간답고, 우매하기 때문에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