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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Oct 26. 2022

꽃다발을 던지는 남자

12월 첫째 주 - 뱅크시 <꽃다발을 던지는 남자>

  이번 주는 그림을 설명하는 저의 말보다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말을 먼저 들려 드리겠습니다.


   “그래피티(거리 낙서)가 불법이 아니어서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곳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세상의 모든 도로들이 수백만 개의 각기 다른 색들과 다른 문구로 도배될 것이다. 버스 정거장에서 기다리는 것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과 큰 사업을 하는 귀족들만이 초대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초청된 파티가 열리는 그런 도시가 되지 않을까. 그런 도시를 상상해 보자. 하지만 벽에 기대는 것은 삼가라? -아직 마르지 않았으니까.”   


  동화책 속의 세상처럼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 온 도시의 벽과 바닥에 각기 다른 세상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면 어떨까요? 인어와 켄타우로스가 춤추고, 공룡과 로봇이 함께 뜀뛰고, 하늘에 해와 달이 동시에 있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요? 말하는 아기의 입에서 꽃송이가 튀어나오고 자동차가 아닌 풍선을 타고 먼 길을 갈 수 있다면, 창문을 열면 유유히 고래가 헤엄쳐 다닌다면, 우리의 삶은 그 상상만큼 풍요로워지겠죠.   

  

   그래피티를 통해 때로는 신랄한 사회풍자와 비판을, 때로는 희망과 축원을 담는 얼굴 없는 거리의 화가 뱅크시(Banksy, 1974~ )를 소개합니다. 그는 영국 브리스톨 출신이라는 것 밖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화가이자 그래피티 테러리스트입니다.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의 익명성이 작품의 생명력을 유지시키고 있지요. 왜냐하면 낙서화 Graffiti는 불법이거든요. 그가 공적인 존재가 되면 그의 그래피티는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뱅크시 <꽃다발을 던지는 남자, 2003>



  그에게 도시를 지탱하고 있는 벽은 캔버스고, 색색의 스프레이는 붓입니다. 그는 모두가 잠든 밤, 도시의 건물이나 벽에 그림을 그립니다. 그의 재빠른 솜씨는 부지런한 천사도 미처 눈치 채지 못할 거예요. 이윽고 사람들이 출근하는 아침, 난데없이 건조한 시멘트 벽에 일상을 전복시키고 낡은 권위를 비틀며, 정치적 판단에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일명 '뼈 때리는' 뱅크시의 그림이 나타났겠지요? 시민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했습니다.     


  이 그림을 보세요. 뱅크시는 이 세계의 짧지만 무거운 질문들을 꽃다발로 엮었습니다. 그리고 거칠고 자유로운 청년에게 맡겼네요. 저 꽃다발은 청년의 어깨로부터 힘이 파괴한 정의와 부도덕한 권위, 폭력을 향해 날아갈 것입니다. 날아간 그의 작품은 물수제비를 뜨듯 가볍고 날카롭게 문제의 표면을 스칩니다만 때로 물결을 세게 흔들어 제 눈에 슬픔이 차 오르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마지막 나무가 잘려 나가고 마지막 남은 강물마저도 말라 졸졸 흐르게 되어서야 사람들은 겨우 돈은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우리를 얼간이 취급하게 만들었던 충고를 새겨들을 것인가...”


  "더 이상의 영웅이 필요 없다. 우리는 다만 소비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는 쉬지 않고 21세기를 근면히 관찰했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심장을 향해 그의 스프레이를 조준했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체인 편의점, 파운드 랜드 스토어가 입주해 있는 건물 담벼락에 <노예 노동, 2012>이라는 그래피티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파운드 랜드는 7세의 어린 인도 아이들을 고용해 만든 물품을 팔았지요.   


  어쩌면 그가 갖고 있는 무기(벽과 스프레이)로는 값싼 농담이나 일삼으며 자본을 방탄 삼아 숲과 생명의 존엄을 파괴하는 이들을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동안 그의 작품은 교양 있는 문화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지기 일쑤였으니까요. 아니 그새 바뀌었네요. 그의 유명세로 그림 값이 뛰자 이제는 그려진 벽을 통째로 잘라다 팔기도 한다니 지우지는 않는군요. 그의 외침이 경매장에 갇힌 걸까요?


  위로가 될는지 모르지만...

  어린아이의 손에서 재봉틀을 빼앗고 대신 빵을 쥐어 주려는 많은 사람들이 경직된 규율과 불공정한 세상을 향해 꽃다발을 던지기 시작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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