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이중섭
느루의 높고 통통거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단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나선 하늘에 달걀노른자처럼 노랗고 둥실한 달님이 '짜잔'하고 나타나 너무나 아름답다고 했지. 전화 끊고 엄마도 하늘을 바라보았어. 정말 둥실 달님이 떠 있더라. 달님이 만보기를 단 운동화를 신고 만 이천보쯤을 쉬지 않고 걸어 느루에게 왔나 보다. 아르바이트에 지친 느루를 밝고 환한 웃음으로 위로하려고 말이야. 느루야, 하루 종일 복사하랴, 서류 옮기랴 고단하지? 여느 학생들처럼 방학 때 배낭여행도 가지 못하고, 학기 중에 읽고 싶었던 책이나, 보고 싶었던 공연도 미루고, 아니 그보다 조금도 쉬지 못하고, 다음 학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니 답답한 현실에 짜증 나지? 노동이 신성하다고 배웠지만 요즘의 노동은 최저임금만큼이나 헐하게 대접받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하구나.
엄마는 요 며칠 마음 수선스러웠어. 얼마 전 한숨지으며 쏟아낸 느루의 하소연이 귓가에 맴돌았거든.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힘들다는 대기업도 사촌 오빠 척척 들어가는 것 보면 바늘구멍이 아니라 낙타의 문제였나 싶고, 수업은 늘 땡땡이치고 연애만 하더니 부잣집 오빠랑 결혼해 유럽으로 나가는 동아리 선배를 보면 '밤새워 공부하는 것보다 돈 많고 얼굴이 예뻐야 하는구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게다가 머리카락 잃은 삼손처럼 매사에 의지박약인데,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지. "앞으론 뭐 할 거니?", "너 취직 준비는 하고 있니?", "그렇게 살찌면 연애 못한다." 등등 안 그래도 지치는데 기운 빠지는 말만 하는 친척들 얼굴 마주할 명절이 두렵다고 말이야.
며칠 있으면 설인데 혼자 조용히 쉬고 싶다는 말에 가슴이 아팠구나. 공연히 부담을 지우는 게 명절이 아닌데 어쩌자고 이리 불편해졌을까. 그러고 보니 떠 오르는 그림이 있네. 이 그림 보며 엄마 말 들어볼래?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깔깔거리는 소리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하지? 아이들이 무지 행복해 보이는걸. 춤추는 엉덩이와 다리에는 세상의 난폭함을 훌쩍 뛰어넘는 '발랄'과 '명랑'이 묻어 나오지. 들짐승과 날짐승처럼 뛰어노는 아이들의 머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한껏 젖혀져 있어. 아이들의 발바닥은 구름을 딛고 있는 듯 너나들이 경계가 없어 보이네. 엄마와 아빠와 아이들이 맞잡은 둥근 원은 전쟁으로 오염된 세상에 대한 백신일 테지. 풍향과 풍속에 흔들리는 말을 버리고 행복한 웃음소리만 남겨 놓은 이 그림은 이중섭의 <가족>이란다.
이중섭은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몇 해 뒤,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났어. 친가, 외가 모두 부유했단다. 유복했던 어린 시절과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청년기까지 물질적으로 여유로웠지만 일제의 식민지가 된 조선의 아들로서 서글픔과 분노를 갖고 있었어. 사과를 먹기 전에 그리기부터 했다는 그는 화풍이 자유로운 일본 도쿄 문화학원(분카 가쿠엔)을 졸업하고 1943년 귀국했어. 하지만 일본에 심장 반쪽이 남아 있었지. 그는 '야마모토 마사코'라는 여인을 사랑했거든. 유행가는 틀리지 않아서 사랑은 현해탄을 넘었고 식민종주국의 딸과 식민지의 아들은 1945년 원산 광석동 너른 마당에서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썼구나. 그녀는 '야마모토 마사코'에서 남쪽에서 온 덕스러운 여인이라는 뜻의 '이남덕'이 되었고 '발가락 군'이라는 애칭으로 불렸어.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지. 친가, 외가 모두 지주였고 아내는 일본인이었으니 해방과 동란을 겪으며 그의 삶은 끝없이 쫓겼단다. 전세(戰勢)는 갈수록 악화되어 반도 끝자락 제주도로 이주하게 되었어. 제주도 서귀포에 1.4평짜리 방을 얻었지. 그곳은 아, 그곳은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어. 바다와 잇닿은 하늘은 상처에 바르는 아까징끼처럼 붉은색이었다가 게들이 숨구멍을 내놓고 눈치 보는 갯벌처럼 검푸른 색이 엎치락뒤치락했어. 이중섭은 배고프고 눈 맑은 두 아이 태현, 태성이와 게를 잡았지. 그리고 잡아먹은 게에게 미안해 게 그림을 그렸어.
게와 아이들은 자연 안에서 평화로웠고 그때가 이중섭에게는 가장 행복하던 때였던 것 같아. 이중섭에게 있어 '가족'은 'ㄱㅏㅈ ㅗㄱ'이거나 '가', '족'으로 분절할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였나 봐. 조각조각이 모여 전체를 이룬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복사한 일부가 조각이 되었다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가족과 분리된 자신은 존재할 수 없었지. 아내와 두 아들을 자신처럼, 아니 자신 이상으로 사랑했단다. 그는 소박하다 못해 너무나 평범한 꿈, 가족과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나누길 소망했지. 하지만 1952년 지독한 가난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야 했어. 안타깝게도 잠시의 헤어짐은 영원한 이별이 되었어. 그는 가족을 만나기 위한 무리한 작업, 극심한 영양실조, 전시회 실패로 인한 절망으로 몸과 마음이 부서졌어. 고칠 수 없게 망가졌지. 그는 적십자 병원에 행려병자가 되어 간암으로 사망했단다. 그의 나이 고작 마흔이었어. 누구나 누리는 그 단순한 행복이 그에겐 평생의 꿈이었고 보다 빨리 죽음에 이르게 한 이유이기도 했어.
불구의 시대에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예술혼을 불태운 그는 마지막 낭만가객(浪漫歌客)이 아니었을까? 모진 굶주림 속에서도 그늘진 현실을 양지바른 쪽에 내어 말렸고 어두운 현재를 기록하면서도 가능한 밝은 색을 골랐지. 그의 그림은 희망으로 따사롭고, 따스한 그 온도는 아직도 응달에 있는 우리의 얼굴을 감싸주는 것 같아.
느루야, 마지막으로 그의 작품 <길 떠나는 가족>을 보겠니? 화면 어디에도 슬픔이 보이지 않는구나. 그는 소가 끄는 저 마차를 타고 벌거벗은 그의 아이들과 도탑게 사랑했던 아내와 함께 전쟁과 굶주림과 가난도 없는 행복의 나라로 가고 있어. 손을 높이 올려 행복을 노래하고 있는 그를 봐.
느루야, 네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알지? '한꺼번에 몰아치지 않고 오래도록' 이란 뜻이지. 사람은 한 번에 한 걸음씩만 갈 수 있단다. 방향을 정했다면 꾸준히, 오래도록 걸으면 돼. 대기업에 취직한 사촌오빠를 부러워말고, 유럽으로 떠난 선배로 인해 무력감에 빠지지 말고 그저 꾸준히 자신의 일을 하면 돼. 인간이 사자나 표범이나 늑대를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끈기 있게 걷고 뛸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어. 먹잇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목표를 뒤쫓았지. 섣불리 화살을 쏘거나 창을 던지지 않고 그저 걷고 뛰었던 거야. 전속력 질주는 100m에서나 가능하지. 인생을 뛸 때는 자신을 믿고 서두르지 않아야 해. 지금 앞섰다고 해서 결승선에 먼저 도착하는 건 아니야. 미래는 아무도 모르지. 공은 둥그니 차 봐야 아는 것처럼 인생은 마지막까지 살아봐야 아는 거야.
느루야, 명절날 친척들의 난처한 질문이 싫지. 그래, 공부도 취직도 연애도 뭣 하나 확실하지 않은 지금이 얼마나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있는지 알아. 이해해. 엄마도 불안한 젊은 날이 있었고 가끔은 가족을 떠나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었단다. 하지만 세 밤이 지나 설이 되면, 이중섭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가족들과 맛난 떡국 먹고 사촌들과 윷놀이하지 않을래?
가족이란 사진을 찍는데 '김~치'하고 웃고 있는 네 뒤, 배경과 같은 거야. 빛이 네게 주목하면 조금씩 물러나 널 돋보여 주다가, 빛이 사그라들면 배경 속 의자처럼 지친 널 앉게 하지. 쉬어가라고, 서두를 필요 없다고, 너는 소중하고 빛이 나는 아름다운 아이라고. 네가 울고 싶을 때, 이곳으로 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