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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Oct 11. 2023

몸에서 정신을 꺼내다

상상농담 28. 토마스 에이킨스 <경례>

  "근래 유행하는 많은 미술 작품은 눈만 조금 귀찮게 하고 두뇌도 잠시만 번거롭게 할 뿐, 정신과 가슴을 끌어들이지는 못한다. 케케묵은 이분법을 써서 말하자면 아름다울지언정 어떤 깊이 있는 의미를 지닌 경우는 드물다. 예술이 주는 지속적인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의외의 각도에서 접근하여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힘이다."  -줄리언 반스-


  적어도 지난 한 주 -전쟁, 기아, 기후위기, 정치, 지진 등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 쏟아져 나온-, 유일하게 감탄을 자아내는 일은 그림에 있지 않고 운동경기에 있었습니다. 설사 한 겹 피부밑에 앞으로 처지고 시들고 주름질 시간을 담고 있다고 해도 코트 안, 그 치열하고 처절한 움직임 속에 '몸'만이 아닌 '정신'이 보였습니다. 그 정신은 '고귀'했고 '위대'했으며 '개성'이 넘쳤고 '솔직'했습니다. 그들의 진한 땀에서 추출한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사전에만 있던 품격 있는 단어들을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게 했습니다. '감동'했습니다. 

  

 

 토마스 에이킨스 <인사 또는 경례, 1898>


  오늘은 제가 날이 갈수록 정신보단 몸을 더 많이 대접하고 있는 근거 또는 이유, 아님 변명으로 토마스 에이킨스(Thomas Eakins, 1844~1916)의 작품 <인사 또는 경례, 1898>를 소개합니다. 


  화면 중앙에 손을 높이 든 남자가 있습니다. 권투선수입니다. 권투 경기가 끝난 모양인지 복서는 관중석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습니다. 등 근육이 계단식 밭고랑을 연상시킵니다. 층층이 쌓인 밭고랑이 인간의 절절한 생존투쟁을 담고 있듯 저 움푹 팬 근육의 고랑마다 한 양동이의 땀과 눈물이 담겨 있겠지요. 게다가 한 사람인가 싶게 검은 목과 흰 어깨의 차이도 선명합니다. 매일 운동장을 뛰었을 그는 힘센 햇빛에서 자신의 표정이 드러나는 얼굴을 보호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냉정하고 거친 승부의 세계에서 여리고 보드라운 것은 깊이 감출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화해할 수 없는 양쪽의 세상이 한 몸에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몸의 언어는 정직하고 또한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는 웃고 있지 않네요. 각진 얼굴에 웃음기가 없습니다. 뒤따르는 스태프들도 고개를 약간 숙였습니다. 침통한 모습입니다. 복서는 패자였던 걸까요? 그럼 저 관중석의 환호는 무엇이지요? 우린 복서가 어떤 경기를 펼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관중들의 모습을 보세요. 그들은 모자를 들어 올리거나 손바닥을 크게 벌려 손뼉을 치거나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응원하고 격려하는 모습입니다. 승자가 아닌 패자를, 왜요?


  적어도 그가 결과 이상의 무엇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눈만 조금 귀찮게 하고 두뇌를 잠시 번거롭게만 한 것이 아닌 삶에 있어서 '의외의 각도'를 선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뼈와 근육, 관절에 관심이 많았던 에이킨스는 매끄럽고 유창하진 않지만 더 깊고 단순한 몸의 언어로 '인간'에 대해 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혹 몸에서 '불굴의 정신'을 꺼낸 건 아닐까요?



PS : 타인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깊어집니다. 전쟁은 무섭고 지진은 두렵고 정치는 역겹습니다. 이 영상을 다운로드하며 제가 먼저 위로 받았습니다. 손바닥 얼얼하게 응원 보냅니다. 안세영선수의 손을 빌어 밴친님들께 보닙니다. 각박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저의 조그만 토닥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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