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농담 54. 이반 크람스코이 <인어 또는 익사한 소녀>
잠이 든 동안 밤이 깨어납니다. 밤은 졸고 있는 마을을 지나 바람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고 댐과 다리를 건너 쓰러진 나무줄기나 달빛이 머문 관목 잎사귀를 쓰다듬으며 숲으로 들어갑니다. 밤이 찾아온 숲은 은밀하고 평화롭고 매혹적이지요. 이끼에 숨어 있던 버섯도 고개를 들고 제 몸을 드러냅니다. 밤이 갖고 있는 모든 색들도 제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숲은 늘 축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제 노랫소리와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거예요. 숲에 사는 정령들이 본 것은 저 바다 밑, 저 산봉우리 위, 저 들판 너머,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의 신비로움이니까요.
이반 니콜라예비치 크람스코이(Ivan Nikolaevich Kramskoy, 1837~1887)는 흥겨웠던 축제가 열리는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숲이 아침까지 남겨 두고 간 부스러기들을 모아 형(形)과 색(色)으로 엮었습니다.
그를 숲으로 이끈 건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 <5월의 밤, 1831>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골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던 고향의 설화, 우크라이나의 슬프고도 고독한 전설들을 문학으로 전했습니다. 웃음도 있었지만 끔찍한 공포와 엄숙한 어두움도 있었지요. 특히 "매 순간 우리 눈앞에 현존하지만 무심한 시선으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어두운 힘"에 대해 고독하고 나직하게 말했습니다. 그의 문학을 사랑했던 크람스코이는 귀 기울였습니다.
크람스코이는 고골의 문장들을 표현할 자기만의 방법을 찾고 고민했습니다. 그는 소설 속 레프의 꿈에 나타난 구체적인 사항보다 '달빛'이 드러내는 매력에 이끌렸습니다. 위대한 화가였던 그는 고골의 이야기를 재현하지 않았고 매혹적인 달빛의 이미지를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달빛이 비추는 신화적인 존재와 미묘하고 고귀한 어둠을 그렸습니다.
이제 크람스코이의 안내에 따라 숲으로 들어갑시다. 전등이 없다고 무서워 마세요. 우리를 이끄는 가녀린 노랫소리가 들리잖아요.
유리창 위에 빗물이 떨어지듯 화면 위는 안개처럼 슬픔이 스며 있습니다. 손을 갖다 대면 툭 눈물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은빛 띠를 두른 듯 달은 보이지 않고 은은한 달빛만이 언덕 위의 낡은 집과 흰 옷을 입은 여인들과 호수를 비추고 있네요. 제 모습을 감춘 달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서늘한 공기, 잔잔하고 달콤한 꽃향기, 호수 위에 뜬 수련의 빛을 뒤섞어 몽환적인 세상을 보여줍니다.
크람스코이는 '달을 잡으려'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이 작품이 트레차코프 미술관에 전시된 상태에서도 달을 잡으려 붓을 댔다고 하지요. 아마도 그는 누구에게나 보이지만 알 수 없고, 전달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달은 누구에게나 보이지만 달이 만든 세상을 보는 이는 따로 있으니까요. 그건 전달되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이 구축한 다른 우주입니다. 이 작품 속 슬프고 아름다운 소녀들이 감춘 어둠을 보는 이도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열아홉 명의 소녀들은 그리움에 절망한 익사자들입니다. 깊은 호수 기슭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서로의 비밀을 나누고, 친밀한 몸짓으로 위로하지만 소녀들은 이 세상에서 비극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전부를 건 사랑은 잔인했고 가망 없었으며 그녀들을 아주 외롭게 했습니다. 그래서 잠들 수 없었지요. 그렇게 어둔 물속에 가라앉은 소녀들을 갈대숲으로 밀어 올리고 통나무에 앉혀 노래를 부르게 한 건 달빛입니다. 달빛은 부드러운 입자로 소녀들의 머리카락을 적십니다. 머리카락이 마르면 슬라브 전설 속의 그녀들인 '루살키'는 살지 못합니다. 원망과 복수도 뚫을 수 없는 단단하고 울창한 숲에 스스로를 가두고, 그저 잡을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할 뿐입니다.
우리가 때로 잠들지 못하는 건 무의식에 가두어 두었던 비밀을 마법의 달빛이 깨우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밤엔 달빛의 호위를 받으며 그녀들 곁에 다가가 깊은 이야기를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크람스코이는 러시아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1863년 14인의 반란으로 유명한 이동파의 리더로 일리야 레핀, 바실리 수리코프, 니콜라이 게 등 러시아를 상징하고 19세기를 풍미한 화가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실력이 뛰어난 화가였을 뿐 아니라, 52년에 걸쳐 민중에게 예술을 전달한 조직의 리더이자, 예술가의 시대적 책무를 생각했던 행동하는 예술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술이 특정한 계층이나 부유한 몇몇의 허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진실을 보여주어야 하고, 미술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모든 이가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방법을 찾는 이였지요.
그런 그가 이리 환상적인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 호수에 발을 담그고 싶은 그림이지요. 저 농가에 들어가 사모바르에 펄펄 끓인 차 한 잔을 들고 여름밤, 소녀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은 그림이지요. 크람스코이가 달을 잡아 호수에 담그자 마법이 일어난 걸까요?
이 작품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은 이동파의 첫 전시회에서 풍경화가로 유명한 알렉세이 사브라소프의 <갈가마귀가 도착했다, 1871> 옆에 전시되었습니다. 다음 날 사브라소프의 작품이 이유 없이 벽에서 떨어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지요. 사람들은 혹시 이 소녀들이 까마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또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전시된 후로는 작품이 있는 전시관에서 밤에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서늘한 냉기가 돌며,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던 여인이 강으로 투신했다는 흉흉한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미술관의 주인인 트레티야코프도 그림 옆에 서면 극심한 피로를 느꼈습니다. 그는 삶의 경험을 통해 지혜로워진 노파의 조언을 따랐습니다. 이 소녀들에게 다시 달빛을 선물하는 것이었지요. 그는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그림을 어둡고 조용한 구석으로 옮겼습니다. 소녀들은 고통과 방황이 멈추었는지 다시금 미술관 그늘진 모퉁이에서 한가로이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들고 밤이 깨어나면...
긴 머리를 빗고 어둠의 물결을 따라 어부들의 그물을 흔들고, 여행자들을 유혹해 물속 다락방으로 끌고 갈지도 모릅니다. 소녀들은 누군가를 찾고 있거든요.
PS : 전 이 그림이 볼 때마다 그리 슬펐어요. 여름밤과 아주 잘 어울리고요. 하나 더, 인어공주가 생각나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마지막에 공기의 정령이 되잖아요. 공기의 정령이 되자 처음으로 사람처럼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 느끼지요. 그녀가 울면서 사랑의 고통을 씻어낼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제게 보답받지 못한 사랑의 잔인함을 보여주었어요. 슬픔을 잔잔히 가라앉히며 제가 좋아하는 남성 아카펠라 Home Free의 'Auld Lang Syne, 석별> 가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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