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농담 57. 낙파 이경윤 <월하탄금도>
소리가 없습니다. 텅 비었습니다.
분명... 거문고를 타고 있는데 소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무량(無量)한 천지에 달빛과 침묵뿐입니다.
늙은 선비의 머리는 풀 같기도, 몸통은 나무 같기도, 앉음새는 바위 같기도 합니다. 있지만 있지 않고, 같지만 같지 않습니다. 들리지 않는 거문고 소리는 공기에, 바람에, 동자(童子)가 끓이는 차에 스며 곧장 오장육부를 파고듭니다. 나도 모르게 그림 속으로 쑤욱 들어갑니다. 감히 선비님 곁에 나란히 앉아 어수선한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불청객이지만 미모가 출중한(^^) 저에게 차 한 잔을 아낄 동자는 아니겠지요?ㅎㅎ 차를 마시며 달을 봅니다.
아랍의 달에는 낙타가 살고, 중국의 달에는 두꺼비가 살며, 유럽의 달에는 미인이 산다지요. 토끼가 사는 우리네 달은 한가위를 앞두고 방아 찧기가 한창입니다.
옛 시인 도연명은 달빛 은은한 길을 가다 버려진 거문고를 발견합니다. 줄 없이 낡고 허술한 몸통이 안쓰러운 건 범인(凡人)의 좁은 안목입니다. 아마도 그는 헐한 겉모습이 담고 있는 소리의 알맹이를 보았나 봅니다. 궁극적인 건 형체를 갖지 않으니까요. 집으로 가져와 '형체는 없으되 이미 완성된 소리'의 표상인 거문고를 안아보고 쓸어보며 기꺼워합니다. 벗과 더불어 술 한 잔을 나눌 때도 혼자 미소 짓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벗들이 의아해했겠지요. 시인은 시인의 말을 합니다.
"이 기막힌 소리가 자네들에겐 들리지 않는가?"
거문고는 수행의 악기입니다. 거문고의 연주법을 배우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닦음이라 여겼습니다. 선비들은 거문고를 타며 선(禪)에 이르고자 했습니다. 거문고를 뜻하는 금(琴)은 스스로를 삼가고 바른 것을 지킨다는 금(禁)에서 나왔다고 전합니다. 마음이 복닦이는 명절 앞둔 저녁, 얕은 성정(性情)을 가진 제게 깊은 거문고 소리가 들릴 리 없고, 그저 찻물만이 뚜껑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습니다.
내일, 한가위에는 이지러짐 없이 둥근달을 보며 도연명의 거문고 소리를 엿듣고 싶습니다. 도연명에게만 들렸다는 거문고 소리는 속되게 계산 빠른 제 뒤통수를 치며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산다는 건? 언제나 Yes"
PS : 밴친님들~ 크게 웃고, 수다 떨고, 맛난 거 먹는 추석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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