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부터 ㅎ까지, A부터 Z까지
예전에 가지고 있던 (사실 지금까지도 완벽하게 고치지 못한) 나쁜 습관 중 하나가 스트레스성 폭식이다. 남들은 참 다양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던데, 어디서 노는 것도 접하지 못했던 나는 오로지 먹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도가 생각나지 않더라. 혼자서 요리를 해 먹고, 스트레스 핑계를 대며 진한 소주 대신 가벼운 맥주 한 잔을 반주로 걸치면서 오롯한 그 순간의 먹는 행복을 즐기곤 했다. 물론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단 금전적인 한계도 있었고, 육체만큼 정직한 것이 또 없는 탓인지 불어나는 몸무게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고 토하는 행위를 반복하게 되었고, 돌이킬 수 없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먹고 토하는 과정은 꽤 신비롭다. 자연의 흐름을 역행하는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든달까. ㄱ에서 ㅎ까지, A에서 Z까지,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지층 같은 것들을 한 번에 무너뜨리는 것 같다. 참 쓸모없이 먹고 토하는 데 내공이 쌓여 최대한 역겹지 않고 편하게 토하는 방식을 터득했다. 음식을 다 먹은 지 20분 이내, 그러니까 음식물이 그대로의 형태를 지니고 있을 때 화장실로 향한다. 그 와중에 위생은 철저히 여겨 손은 깨끗하게 닦는다. 손가락은 딱 하나, 오른손 검지를 사용한다. 식도와 목젖 사이의 그 언저리를 부드러우면서도 거칠게 유혹하면 어느새 먹었던 것들이 중력을 무시하고 다시 위에서 위로 올라온다.
하얀 변기 바닥 위에 음식들이 먹은 순서대로가 아닌, 먹기를 끝낸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인다. 최대 30분 이내로 토하면 위에서 나오는 그 신맛이 아닌, 음식 고유의 맛이 다시 느껴진다. 꽤 역겹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소가 네 번이나 되새김질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일까 싶을 정도로 희한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역행하는 음식물들을 바라보면 때로는 헛웃음이 나오고 때로는 눈물 몇 방울이 흐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싶어 한심하다가도 ‘그래도 다 토해냈으니 살은 안 찌겠네’하는 안도감을 느낀다. 혐오스럽기 짝이 없다.
이 습관은 약을 먹으면서 고쳤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 약이 체내에 언제 흡수되는지 알 도리가 없으니 토를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약까지 토해버리면 일단 역겨우리만큼 맛이 없으면서도, 약을 다시 먹어야 할지 말지도 고민되고, 약까지 토해내는 내가 너무나도 어이없어서 토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의도적으로 밥 먹기 전에 약을 먹었고, 약이 흡수되기 전에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니 토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폭식과 먹고 토하는 증상은 고칠 수 있었다. 아니, 고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최근 스트레스를 꽤 많이 받았다. 드디어 종강하긴 했다만, 왜인지 할 일이 더 많아져 버렸고 번아웃 증상까지 몰려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분명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한 줄 알았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기도 하더라. 그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감정에 호소하고, 때로는 나를 탓하고, 때로는 자신을 탓했다. 전화를 차단하면 카톡이 오고, 카톡을 차단하면 디엠이 오고, 디엠을 차단하면 새로운 계정으로 찾아왔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가 싫어서라기보다는 다 끝난 줄 알았던 얘기들을 반복하고 화내고 달래다가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싫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썩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라 내심 걱정도 되고, 더 이상 감정적인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둔 연애인데 오히려 감정 소모가 늘어버렸다. 일하던 중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연락은 달갑지 않았다. 예의상이라도 잘 지냈으면 하는데 오히려 더 못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나를 어디까지 힘들게 만들고 싶은 걸까 싶어서 속상하다가도 다 끝난 인연 하나 단호하게 쳐내지도 못하는 내가 너무나도 한심했다. 건강상 약을 끊기 위해 성분을 줄여서 약 효과도 떨어졌는데. 폭식증은 다시 나를 찾아올 준비를 하고 있던 모양이다.
정말 피곤하고 힘들어서 요리도 잘 해 먹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대충이라도 무언가를 먹고 자연스럽게 술을 그리워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행히 오랜 기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아서 맥주 한두 잔에 가볍게 나가떨어지긴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이전으로 돌아갈 것만 같은 두려움이 커졌다. 오늘 저녁에도 누적된 스트레스를 탓하며 볶음면을 해 먹고, 바로 토하고, 속을 달래기 위해 따스한 차를 마셨다. 이 얼마나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인가. 재료는 재료대로 버리고, 몸은 몸대로 버렸다. 이럴 때면 차라리 감정 없는 기계나 로봇 따위로 남아있고 싶다. 이런 순간들을 겪어내야 하는 인간인 게 혐오스러울 정도로 싫다.
새로운 사람들이 자신이 진정한 인연이라며 찾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사랑은 사랑으로 치유하는 것이라며, 본인은 더 잘해줄 자신이 있다며, 나의 모든 것들을 이해해줄 수 있다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동안, 어쩌면 긴 시간 동안 이런 경험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아서 그런지 기분은 좋더라. 그런데 정말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감정’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까.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사람도 분명 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 정말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내 삶이야 말아먹어도 내 잘못, 잘 되면 좋은 것이지만 부족한 내가 타인까지 진정으로 케어할 수 있을까. 만약 새로운 타인을 만나더라도, 내가 스스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랑을 끝냄으로 내가 존립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수렁에 빠져드는 것 같다. 지나간 사람은 나를 옥죄어오고, 새로운 사람은 나를 꾀어내려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사랑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이것들은 토해내면 어떤 형상을 취하고 있을까. 요즘은 내 모든 것을 토하고만 싶다. 일이든, 사람이든, 감정이든 그 어떤 것이든 말이다.
* 본 글은 <다붓한 공간>에서 진행했던 7월 연재 원고 중 한 편을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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