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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 May 15. 2020

돈 없는 사립학교가 나쁜 이유

사립학교 정교사로 살아남기 3

사건이 발생한 후 여러 기관에서 컨설팅을 빙자한 지도감독이 내려왔다.


교육청은 물론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등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시키지 않은 것부터 잘못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재까지 가해자를 직위해제시키지 않는 학교법인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물론 이런 지적 조차 이사장의 귀에 직접 들어간 것은 아니다. 학교장의 입을 통해서라도 이런 사실을 전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법인은 계속 미적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법인은 가해자 측을 두려워하고 있는 눈치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립학교에서 최고위직은 이사장이다. 그런데 이사장이 가해자를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성희롱 사안 처리 매뉴얼과 각종 기관의 지도감독관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이사장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가해자를 직위 해제시키는 것만 수개월이 소요됐고 그 와중에도 가해자는 법인 쪽에 계속 협박을 하는 눈치였다.





나는 이곳이 사립학교라는 사실을 이때만큼 명확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가해자의 주 업무가 돈을 주무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뭔가 구린 구석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칼을 휘두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그동안 가해자가 법인에게 해준 '무언가'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가해자는 혼자 죽을 수 없다고 길길이 날뛰는 모양이었다.




사립학교 교사를 폄하하는
세간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했던
내 젊음이 원망스러워졌다.



사립학교라고 고용이 불안한 것도 아니고 수 억씩 발전기금을 내고 들어가는 내로라하는 학교도 아니었다. 내세울 것 없는 시골의 작은 학교였지만 나는 다시 1년을 공부해 임용고시를 치르고 싶지 않았다. 내 욕심을 조금만 줄이면 소박하게 행복한 교사로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내세울 것 없는 사립학교는 내로라하는 학교보다 더 위험했다.


백 프로 나랏돈으로 운영해야만 하는 가난한 학교의 주인들은 돈 벌 궁리에 몰두했다. 교사를 채용하고 공사계약을 하고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면서 돈이 개입되지 않은 적이 없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의 개입이다.


관련해서 학교는 늘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았고 그 와중에도 실세를 찾아 잽싸게 몸을 움직이는 무리들이 있었다.


나는 공립학교 교사보다 돈 많은 사립학교 교사가 부러웠다. 사립학교의 특성상 어디나 줄타기는 있겠지만 최소한 돈 문제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학교의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동료 교사들은 나를 자괴감에 빠지게 했다. 설령 대가를 치르고 교사가 되었다고 해도 채용된 후에는 그러지 않아도 될 텐데 더욱더 움츠러드는 그들이 미웠다. 


멀쩡한 교사가 그만 두면 새로 충원되는 교사는 이런 사람들이었으므로 학교는 급속하게 변해갔다. 아무도 부당함을 이야기하지 않고 불만도 없었다. 서로를 조심했으며 말을 아꼈다.


검증된 곳에서, 검증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고 새로 들어오는 신임교사에게는 가능한 말을 걸지 않았다. 내 이야기가 학교의 주인에게 어떻게 흘러들어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도 모르게 큰 사건에 휘말렸다.


어쩔 수 없이 피해자가 생겼으니 관리자에게 몇 마디 의견을 밝힌 것으로 나는 체제에 반항하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어차피 이런 취급을 받을 거였다면 좀 더 강하게 말할걸 하는 후회가 될 정도로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학교의 관리자들은 나를 껄끄러워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동료 교사들의 태도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쓰렸다.


그들은 침묵했다.



관리자들이 잘 써먹던 '중립'을 핑계로 그들 또한 입을 다물었고, 심지어 본인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로 개인주의를 자처했다. 학교의 주인들이 곳곳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힘들어서 어쩌냐며 나를 위로해도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는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은 나와 피해자를 못 본 척 지나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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