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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Oct 11. 2023

화가 나면 때려도 된다고?

가정폭력 인정하기②

"3류 영화에서 깡패가 술집여자한테 화를 내도 그렇게는 안 하겠다."

따로산 지 3년 만에 집에 와서 나와 남동생이 싸우는 걸 보고 남동생에게 실제로 아빠가 한 말이다.

하지만 저 명문장 끝에 아빠가 한 말은 나더러 사과를 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그 애를 화나게 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나의 가족들은 내게 폭력을 휘두른 뒤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늘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나를 화가 나게 했기 때문에 그런 거야. 네가 잘못하지 않았으면 나도 그렇게 화를 낼 이유가 없잖아.

나는 내가 아주 못되고 다른 이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오래도록 생각했다.



15~16년쯤, 페미니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거친 언어로 페미니즘을 드러내는 이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배경을 설명할 때마다 남자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화를 냈다. "너 지금 폭력을 정당화하는 거야?"

나는 폭력은 절대적으로 나쁘다는 전제를 깐 상태에서, 그럼에도 발생하고 있는 폭력의 기원을 찾고 그 원인을 제거하여 폭력도 제거하자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때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몇 년 뒤 가정폭력과 체벌에 대해 생각해 보며 실마리를 얻었다.

가정폭력과 체벌에서 속에서 자라나며 "너무 화가 나면 폭력을 쓰는 것도 어쩔 수 없다. = 화가 나게 한 쪽이 잘못이다."라는 명제가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보다 더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점이었다.

하다못해 나 조차도 오래도록 내가 노출된 폭력들을 스스로 정당화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폭력의 정당화라는 특징은

특히 체벌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관계 간의 폭력이나,

더 이상 체벌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성인이 된 이후에 벌어진 폭력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였다.


#1.

수능이 끝난 겨울, 과외가 끝나고 녹초가 되어 귀가한 누나.

고3인 남동생은 컴퓨터를 하고 있다가, 누나가 집에 들어오니 밥을 차리라고 한다.

이를 거절한 누나가 거실 소파에서 TV를 보기 시작하자 동생은 컴퓨터의 볼륨을 높인다.

볼륨으로 서로 경쟁을 하다가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난 두 사람은 엄마 앞에서 몸싸움을 벌인다.

남동생은 누나의 목을 조르기 시작하고, 누나는 그 팔을 깊게 할퀸다.

엄마는 놀라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고, 누나는 빈틈이 생겼을 때 맨발로 외투도 없이 집을 나선다.

친구에게 외투와 신발을 빌리고, 찢어진 귀를 치료한 누나는 학교 도서관으로 향한다.

다음날 조별과제가 있기 때문으로, 다음날 할 일을 마치고 나서 저녁이 되어서야 귀가한다.

엄마는 누나가 집에 들어오자 화를 낸다. "너는 엄마 걱정은 안 되니? 집을 그렇게 나가면 어떡하니? 집이 뭐 너 편할 때 오는데야? 그럴 거면 네 맘대로 (나가서) 살아."


#2.

술을 먹고 취해서 들어온 딸.

엄마는 화가 나서 이 시간에 들어오면 어떡하냐고 화를 낸다.

딸은 피곤하기 때문에 자고 내일 이야기하자고 반복해서 말한다.

이때 역시 잠을 못 자서 예민해진 상태의 아빠가 이 모습을 보고 화가 난다.

아빠는 딸을 냅다 밀치고 넘어진 딸을 걷어찬다.

넘어진 딸은 한겨울에 집을 나가 공원에서 밤을 새우다가 노숙자에게 쫓긴다.

동이 틀 때 돌아온 딸에게 부모는 다시 화를 내기 시작한다.


#3.

새벽 2시, 서로 누가 화장실에서 먼저 씻을 건지로 다투다가 언성이 높아진 남매.

화가 난 동생이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고 가자 누나가 화를 낸다.

다시 돌아온 동생은 커다란 체격을 이용해 누나에게 바짝 붙어 서서 위협과 폭언을 하기 시작한다.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보고 있고, 아빠는 잠에서 깨어 소리를 지르며 가족을 소집한다.

"3류 영화에서 깡패가 술집여자한테 화를 내도 그렇게는 안 하겠다."

동생의 행동에 대해 간단히 논평한 아빠는 누나에게 말한다.

"네가 먼저 사과해. 네가 시작한 거잖아. 화나게 만들었으니까."


세 경우 다 공통점이 있다.

1. 자기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이 주지 않는 것을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여긴다.

2. 상대(약자)의 분노 표현 자체를 잘못된 행동이라고 판단한다.

3. 그러한 상대의 잘못 때문에 자신이 폭력을 써도 괜찮다고 정당화를 한다.

4. 제삼자의 입장에서 문제상황을 보더라도 위의 이유 때문에 폭력도 정당하다고 여겨 개입을 하지 않는다.

5. 신체적 차이나 위계 등으로 발생하는 불평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를 이용한다.

6. 자신의 감정이 우선이어서 사랑하는(혹은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상대의 안전과 감정을 신경 쓰지 않는다.


훌륭한 폭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내게 잘못이 있다고 주장한다. 네가 화나게 했잖아.

그럼 내가 화가 난 것은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왔나?




#3. 이 가장 마지막의 사건이다.

나는 이때 벌어진 동생의 위협과 언어폭력, 아빠가 소리를 지르고, 대화를 거부하는 나를 앉히고 사과를 강요한 것, 엄마가 이 모든 것을 방관한 것에 대해 울면서 항의했다.

아빠는 자기야말로 억울하다는 듯이 행동을 지적했다.

"너는 지금 꼭 가정폭력 피해자처럼 행동하고 있어."

자기가 소리를 지른 것도, 동생이 위협을 한 것도 실제로 때린 것도 아닌데 과잉 반응으로 무서워한다는 투였다.


나는 처음으로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무섭다고. 나는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맞다고. 나는 실제로 동생에게도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많이 맞았고, 상관없는 남자가 소리만 질러도 심장이 떨리게 되었다고. 무서워도 무섭다고 표현도 못하는 사람으로 자랐다고.

아빠는 상처받은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널 위해서 한 걸 가정폭력이라고 그렇게 딱 잘라 이야기할 수가 있니? 그리고 너도 소리 지르고 같이 싸웠잖아. 나는 네가 무서워하고 있는지 몰랐지."


어떻게 자기 몸집의 절반도 안 되는 계집애를 때리고 걷어차면서

무서워할 거라는 상상을 안 해봤을까?

누나가 부모에게 맞는 걸 보며 자란 아이가 커서 누나를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를 수가 있을까?

명백하게 물리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대거리를 왜 "싸운다"라고 생각했을까?


당시의 나는 아빠의 말들에 화가 나서 잠도 잘 수 없었다.

가족 모두에게서 사과를 받지 않으면 말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끝까지 갈등과 폭력을 구분 못하는 가족들이 모두 표면적으로나마 사과를 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화제가 나오면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일방의 잘못으로든, 쌍방의 의견차 때문이든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고 갈등을 빚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위계에 따라 일방의 표현이 제한되어서는 안되고, 또 상대가 무엇을 했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어느 시점이든 정당화가 되는 순간 폭력의 대물림은 끊기 어렵게 될 것이다.


나는 아직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

그러니 어른들은 아이를 키운다면 체벌을 쓰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공허하다고, 너도 어쩔 수 없을 거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나는 꼭 끊어내고 말 것이다.

모든 종류의 폭력에 반대하며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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