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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Oct 18. 2023

잘못, 잘못의 부모, 잘못의 조부모

가정폭력 인정하기 ③

나와 남동생, 나와 부모님은 한 번 통화를 하면 삼십 분 넘게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로 사이가 좋다.

동생과 부모님은 나의 목을 조르거나 발로 걷어차거나, 손에 잡히는 것을 가지고 닥치는 대로 때린 적이 있다.

이 두 문장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정폭력의 가장 고통스러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가족들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저들이 나에게 이렇게 모질게 대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무언가 정말 잘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다 큰 성인이 된 남동생의 폭력은 엄마에게 걷잡을 수 없는 공포를 안겼다.

하필 아빠가 없는 날, 꼭지가 돌아버렸던 동생이 나의 목을 조르고 때렸다는 사실 자체를 엄마는 잊었다.

그 당시에도 엄마는 문고리를 꼭 붙잡은 채 서서 그냥 그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고, 내게 이것은 오래도록 상처로 남았다. 이유도 모른 채. 


몇 년 뒤 대안학교에서 봉사활동과 인턴쉽을 하다가 그 이유를 알았다.

체구가 거의 성인 남성만 한 남학생이 분노조절을 하지 못하고 의자를 던졌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던져 여학생의 앞을 막아섰다. 배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지만 당연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구나, 나는 나를 엄마가 보호해 주기를 원했던 거였구나.

아무리 무서워도, 아이를 위해서 초인적인 힘을 냈다는 수많은 모성 신화처럼, 그렇게.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그 상황에서 무서워하고, 움츠러들고, 심지어는 기억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엄마의 잘못일까?



폭력은 누구에게나 무섭다.

맞는 당사자에게도 고통스럽고 공포를 안겨주지만,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에게도 어마어마한 트라우마를 안겨주기도 한다.


우리 집에서 맞는 것은 주로 나였음에도 동생은 늘 겁에 질린 채로 살아야 했다고 고통을 토로하곤 한다.

(누나를 포함한) 어른들이 맨날 싸워대서 나는 너무 무서웠다고. 누나도 자기에겐 가해자 중에 한 명이라고.

동생은 나를 아주 어른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동생이 그렇게 겁에 질려 있던 그때 나는 그 아이보다 딱 14개월 더 어른이었다. 그리고 똑같이 겁에 질린 작은 아이이기도 했다.

동생이 나를 원망하는 말에 한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떻게 네가. 나를 그렇게 죽어라 때렸던 네가. 1살 차이기 때문에 누나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고 평생 너라고 나를 불러온 네가. 부모가 아닌 같은 아이였던 나를 원망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동생의 기조는 언제나 같았다.

아주 어렸을 때도 부모님과 내가 싸우고 나면 온 가족의 비난의 화살은 나를 향했다.

동생은 두드려 맞고 방에서 울고 있는 내 방을 열고 저주의 말을 읊조렸다.

쇼하고 있네. 너 때문에 엄마아빠 수명이 10년은 줄어들겠다. 네가 집에서 뭘 하냐? 이 식충아. 


누군가의 보호가 절실한 어린 존재들은 자신들을 가해하는 대상에게도 애착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을 격리조치하려 할 때, 자신의 공격자들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내 동생의 생존전략은 나보다는 부모를 택하는 것이었으리라. 

나는 나에게 상처를 입힌 동생의 말들을 나 혼자 조용히 녹여내기로 결정했다.

그 애의 잘못은 아니었을 테니까.



폭력이 당연한 환경에 놓은 이들은 자신보다 약자를 대상으로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아빠와 엄마가 나와 동생에게 그랬듯, 동생은 그 대상으로 나를, 자신의 후배들을 집어넣었을 뿐이다.


뉴스를 보며, 내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한때의 피해자였던 가해자들에 대해 늘 갖고 있던 의문이 있다.

빈곤, 폭력, 폭력적 문화와 같은 모든 대물림에서, 책임은 도대체 누가 어디까지 져야 할까? 

대물림받은 당사자의 잘못일까? 

한 살이라도 더 많은 주변인, 혹은 그보다 부모세대, 혹은 조부모 세대가 져야 할까

책임 소재가 이렇게 거슬러 올라간다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며, 

책임을 다 함께 나눠진다면 책임 비율은 어떻게 될까?


나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에 연루된 사람들이 폭력의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직면시키는 것도, 함께 받아들이는 것도 서로 아픈 과정이 수반됨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게 내 사랑이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설명할 것이다.

우리 안의 폭력을 똑바로 마주하고, 뉘우치고,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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