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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헤라디야 Oct 20. 2023

간질간질한 마음

우울증과 무쾌감증 이겨내기

며칠 전부터 정신과 약을 증량했다. 정확히는 아침에 먹는 약을 한 알 더, 두 배로 늘렸다. 주된 이유는 생산성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청소나 요리 등 집안일을 하려고 해도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냥 게으른 거 아냐? 또 외출할 땐 나가서 잘 돌아다니잖아.' 그렇지만 억지로 몸을 움직여 청소를 시도하자 20년 동안 처박아 놨던 녹슨 자전거를 타고 꾸역꾸역 달리는 기분이었다. 간단히 바닥을 쓸고 닦는 것뿐인데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한때는 날마다 요리를 하던 내가 라면 하나조차 끓일 수 없는 상태가 오랫동안 계속됐다.


"선생님, 지금 처방으로 약 먹은 지 1년 가까운데 아직도 청소랑 요리 같은 걸 할 기운이 없어요. 억지로 하려고 하면 몸이 너무 힘들어요. 처방을 좀 바꿀 수 있을까요?" 여기서 내가 말한 '처방을 바꾼다'는 뜻은 복용하는 약의 종류를 바꿔 보자는 얘기였는데, 담당 선생님은 그걸 '약을 늘려 달라'는 뜻으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럼 아침 약을 두 배로 늘려 보죠. 만약 이걸로도 효과가 없으면 그때는 비약물적 치료를 고려해야 할 것 같아요. 혹시 복용하시면서 불편하신 점 있으시면 병원으로 연락 주시고요." 4주치 처방약을 받아 가방에 넣고 병원을 나와 한참 걸어서 집에 오는 버스에 오른 후에야 문득 떠올랐다. '단순히 용량을 늘려 달라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 약이 부작용이 별로 없으니까 다른 약으로 바꾸기를 꺼리시는 건가? 조금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효과가 더 좋은 배합을 찾고 싶은데.'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아침 약을 늘린 걸로 기대하는 효과가 나올지도 모르잖아. 일단 내일부터 복용하면서 1-2주 기다려 보자.'


고양이들은 언제나 곁에 있어 준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순간조차도.


청소와 요리 등의 기초적인 집안일을 할 수 없다는 것 말고도 처방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또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바로 무쾌감증이다. 쉽게 말하자면 '만사에 즐거운 게 없다' 정도가 되겠다. 한때 들을 때마다 마음을 울리던 음악이 단순한 '소리'로 전락하는 것. 보드라운 고양이의 배에 얼굴을 파묻어도 행복해지거나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것. (여기서 '고양이가 배에 얼굴을 파묻어도 가만히 있나요?!'라고 질문하실 분들께, 네, 우리 고양이들은 묘하게 순하고 멍해서 그게 되더라고요.) 절친과 만나서 수다를 떨어도 그리 속이 시원하거나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것.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추울 때 전기요 위에 덮어둔 이불 속으로 들어갈 때였다. 그 때만큼은 어느 정도 기분이 좋게 느껴졌다. (고양이들, 의문의 1패...)




현재 아침 약을 증량한 지 나흘이 되었다. 사실 애초에 아침 약을 추가했을 때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서 이번에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확실히 몸을 움직이는 게 좀 쉬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물 덜 먹은 솜'이 된 기분이랄까. 최근 들어 다시 조금씩 심해지던 브레인 포그도 나아진 것 같다. 다른 것보다 기본적으로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기분이 나아졌다고 느꼈다는 건 이전까지는 기분이 별로였는데 미처 스스로 깨닫지 못했었다는 뜻도 된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해도 되는 걸까? 아니면 이건 내 마음의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할까?


조금만 손을 뻗으면 더 나은 삶이, 과거 나의 삶이 잡힐 것 같은데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의 고통은 크다. '노오력'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어쩌면 이런 상태는 생각보다 더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울증에 걸리기 전에 한번은 이런 생각을 했다. '난 뛸 듯이 행복하거나 기쁜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좋은 일이 생겼을 때 - 우리 팀이 모 클럽의 밴드 경연대회에서 1등을 했다던가 - 펄쩍펄쩍 뛰어 본 적은 있었지만 그건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야 하고 기쁘면 사람들은 펄쩍펄쩍 뛰어'라는 사전지식 때문이었을 뿐 정말로 기쁨에 자신을 주체할 수 없어서 그렇게 행동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마음이 간질간질한 순간들은 있었다. 예를 들면 친구네 집 고양이가 내게 다가올 때. (냥 집사가 되기 한참 전의 일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한적한 오후에 좋아하는 카페에서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할 때. 가을 바람이 얼굴에 느껴질 때. 심금을 울리는 음악을 들을 때. 나는 행복을 그런 순간들로 정의했던 것 같다. 마음을 간지럽히는 작은 즐거움. 그것이 내가 인식하는 행복이었다.


약 9년 전, 병원에는 가지 않았지만 우울증이라고 처음 인지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일단 매사에 즐거운 게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반 년 후의 일이었다. 그 시간 동안 서서히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이 사라져 가고 있었던 것일까. 평소에 잘 통하던 기분전환 방법들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시간이 흐르자 이번에는 생산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맡은 일을 제때 시작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와도 일을 시작하기 힘든 지경까지 들어섰다.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새로운 처방이 효과가 있을지는 아마 좀 더 기다려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효과가 있더라도 부작용이 함께 따라온다면 다시 예전의 처방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 처방전이 효과를 보여서 일상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기쁘다'는 감정, 혹은 그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고양이의 보드라운 배에 얼굴을 파묻어 본다. 뭔가 마음이 살짝 간질간질한 것도 같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날이 올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기분이 좋아질 만한 일'들을 하려 노력할 것이다. 카페에서 책 읽기, 좋아하는 음악 듣기, 산들바람을 얼굴로 느껴 보기, 밖에 나가서 눈부신 햇볕을 흡수하기. 언젠가 간질간질한 마음을 되찾게 될 그 날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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