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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헤라디야 Oct 27. 2023

알렉상드르 타로 - 마법 같던 독주회

깃털과 망치 사이를 오가는 그의 놀라운 터치에 반하다

드디어 피아니스트 타로의 연주를 직접 보았다. 첫 음부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유려한 터치'라는 다소 식상한 표현이 처음 0.2초 만에 떠올랐다. 그렇게 두 시간, 1부와 2부, 세 곡의 앙코르곡까지 그는 청중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며 말 그대로 '미친' 연주를 선보였다. 나는 정말 피곤하다는 이유로 이 공연에 안 올 생각을 했던가? 그렇다. 하지만 나 자신을 억지로 질질 끌고 집 밖에 나온 보람이 5,000% 느껴졌다.




몇 년 전인가 우연히 샹송 가수 바르바라의 헌정 앨범을 접하게 되었다. 그 과정이나 계기는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솔직히 바르바라가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어쨌든 씨디를 사 버렸다. 들어 보니 이건 몹시 좋지 않은가. (참고로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그런 앨범이다. 짝이 있는 사람도 왠지 외롭다고 느낄 법한 늦가을에 샹송을 들으며 분위기 잡고 싶으신 분들께 대추천!) 앨범은 여러 명의 가수가 곡마다 돌아가며 노래를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내로라하는 샹송계의 거물들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앨범 표지에 '알렉상드르 타로'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하! 이 사람이 기획한 앨범이구나. 그런데 이 사람은 가수가 아니고 피아니스트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담.


'바르바라' 헌정 앨범 표지 (이미지 출처: 알라딘)


그렇게 해서 타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씨디도 몇 장 샀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구사하는 연주자로군. 클래식이 아닌 장르도 오묘하게 잘 소화하고. 연주가 참 듣기 편하면서도 유리성처럼 아름답네. 2000년에는 내한 공연이 예정되어 티켓도 샀다. 큰 공연장 대신 작은 공연장의 앞자리에서 보려고 서울도 아닌 대전 공연을 예매했는데, 당연히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연주회는 취소됐고 내 꿈은 날아갔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이나 겨울쯤 금호문화재단의 2023년 공연 라인업을 보게 됐는데, 여기 낯익은 이름이 있지 않은가. '알렉상드르 타로'. 이 공연은 꼭 가야 해. 그래야 옳지.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번엔 꼭 당신의 연주를 직접 보고 말 거예요, 타로 선생님.




마지막으로 피아노 독주회에 간 것은 지난 11월이었다. 러시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독일로 이주한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 처음부터 끝까지 베토벤 소나타로 구성된 이 공연에서 레비트는 베토벤이라도 환호했을 법한 연주를 선보였고, 깜찍하게도 '엘리제를 위하여'를 앙코르곡으로 연주했다. 반면 타로의 이번 독주회 프로그램은 100% 프랑스 레퍼토리로 구성됐다. 오랜만에 피아노 독주회를 보면서 또 지난번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겠군. 솔직히 프랑스 곡들은 내 취향엔 너무 난해하긴 한데... 그래도 타로잖아. 꼭 봐야지.


어쩌다 보니 타로의 공연을 보기 바로 전날에 친구와 함께 바로크 음악 콘서트에 가게 되었다. 나는 집에서 일찍 나가서 카페에 자리 잡아 거대한 아이스커피를 벗 삼아 글을 썼다. 아이패드와 맥북이 난무하는 공간에서 조촐하게 샤오미 미패드4와 휴대용 블루투스 키보드로 글을 쓴 후에 기분 좋게 공연을 본 것까지는 좋았는데... 늦은 시각에 카페인을 과량 섭취해서인지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예전에는 밤늦게 들어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만들어서 원샷하고 자러 가는 게 일이었는데. 역시 세월은 속일 수 없구나.


당연히 다음날인 타로의 공연 당일은 온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다른 것보다 이 상태로 공연에 가면 즐겁게 감상할 수가 없어서 귀한 경험을 날리는 것밖에 되지 않을 듯했다. '오늘 공연 그냥 친구한테 대신 가겠느냐고 물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한 시간만 낮잠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 보자.' 나는 한 시간 타이머를 맞추고 스르륵 잠들었다. 그리고 54분 만에 깨어났다. 거짓말처럼 컨디션이 좋아진 게 느껴졌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외출할 채비를 해서 집을 나왔다. 공연장으로 출발!




타로의 독주회는 연세대 교정에 위치한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개최됐다. 금호문화재단에서 기획한 공연이니 당연했다. 이 공연장은 다소 접근성이 좋지 않은 대신에 음향이 참 아름답다. 피아노 독주회를 보기에 정말 좋은 곳이다. 과거에 이곳에서 재즈 피아니스트 프레드 허시의 공연을 보고 반한 기억이 있다. 최근에는 친구와 함께 멋진 독일 가수의 독창회를 보기도 했다. 접근성만 조금 더 좋았더라면... 어두운 연세대 교정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걷고 있었다. 대부분은 교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녁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 학생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걷자 왼쪽으로 금호아트홀 연세 공연장이 위치한 백양누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올 때마다 헷갈린다니까 정말.


타로의 공연은 '아름다운 목요일' 시리즈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정말로 아름다운 목요일이었다.


공연은 매진이었다. 당연히 로비에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시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라 건물 안의 편의점에서 커피를 득템해서 절반 정도를 순식간에 들이킨 후 입장권을 수령했다. 잠시 앉아 있다가 공연장에 들어갔다. 개표를 마친 안내원은 친절하게 '사진 촬영은 커튼콜 때만 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내 자리는 복도에 위치한 좌석이었다. 중앙 블록은 아니었지만 시야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피아노 독주회를 예매할 때 손의 움직임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중앙이나 그 약간 왼쪽 좌석을 선호한다. 특히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이나 피아노 연주자라면 어떻게든 손이 잘 보이는 자리를 예매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연주자의 얼굴 표정과 몸짓을 지켜보는 걸 선호해서 오른쪽의 좌석을 예매했다.


안내 방송이 나오고 객석이 어두워지며 무대의 조명이 밝아졌다. 무대 왼쪽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가 걸어 나왔다. 알렉상드르 타로. 사진으로 봐서 익숙한 호리호리하고 말쑥한 인상의 피아니스트. 언뜻 봐도 기분이 좋고 흥분한 표정이었다. 타로는 인사를 마치고 피아노에 앉아 그 위에 놓여 있던 안경을 썼다. 그리고 잠시 후에 연주를 시작했다.




첫 음부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몇 음이 더 지나자 '역시나!!!'라는 생각이 밀려왔고, 동시에 '오늘 공연에 오길 참 잘했다'라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원래 하프시코드를 위해 쓰인 프랑스 작곡가 라모의 곡들은 애초에 피아노를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아름답고 생기 있게 울려 퍼졌다. 청중의 몰입도는 장난이 아니었다. 바꿔 말하면 타로의 흡입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말로 표현하려니까 정말 힘들지만, 청중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보이지 않는 막이 씐 것처럼 연주자와 한 공간에서 연결된 듯한 느낌이랄까.


첫 곡이 끝나자 우렁찬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거의 공연이 끝났을 때나 들을 법한 열렬한 박수였다. 그 정도로 청중은 타로의 연주에 반해 있었다. 1부의 두 번째 부분은 드뷔시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유리성처럼 유려한 연주를 보여주던 타로의 두 손이 갑자기 망치손으로 변한 것은. 전주곡 중 한 곡에서 타로는 피아노를 부술 듯한 기세의 타건을 보여주었다. '반전 매력'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때까지의 다정하고 매끄럽고 사뿐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연주와는 전혀 다른 그의 면모를 보았다. 마지막 전주곡의 마지막 음이 멎은 후에도 청중은 침묵을 지켰다. 타로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던 그 순간까지. (여담이지만 타로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는 것으로 연주가 끝났음을 표시했다.)


15분의 휴식이 끝나고 2부가 시작되려는데 내 오른쪽에 앉아 있던 두 여성이 돌아오지 않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내일 출근이다'라는 말을 언뜻 들은 것 같다. 이렇게 좋은 공연을 절반만 보고 떠나야 했던 그분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2부가 시작됐고 타로가 다시 무대로 걸어 나왔다. 청중의 반응은 여전히, 아니면 오히려 더 뜨거웠다. 사티와 라벨의 곡들로 구성된 2부는 잘 알려진 곡인 '짐노페디 1번'으로 시작되었다. 이렇게나 다정한 짐노페디가 있었던가. 그 후에는 다소 짧고 가볍고 발랄한 곡들이 이어졌다. 사티의 곡들이 끝나고 청중의 뜨거운 박수도 끝났을 무렵, 타로가 라벨의 첫 곡을 연주하려 할 때 갑자기 어디선가 휴대폰 소리가 울려 퍼지고 모두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타로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아주 가볍게 싱긋 웃더니 연주를 시작했다. 즉시 유쾌한 선율이 공연장을 채웠다. 다들 방금 전의 전화벨 사태는 이미 잊은 듯했다.


마지막 곡은 라벨의 '라 발스'였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무용시인 이 곡을 타로는 직접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풀 수 없는 연주였다. 타로의 두 손은 깃털과 망치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수많은 음을 만들어냈다. 음악의 흐름을 자유롭게 풀었다 조였다 하는 그는 마법사 같았다. 마지막 음이 연주되자 청중은 공연장이 터져 나갈 듯한 박수와 환호를 타로에게 보냈다. 청중의 계속되는 박수에 타로는 몇 번이나 나와서 인사를 했고, 무려 세 곡이나 되는 앙코르곡을 선사했다. 다양한 영화 음악을 담은 자신의 신보 '시네마'에 속한 곡들과 샹송 같았다. 그저 아름답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같은 앨범에 들어 있는 '스타워즈' 포스 테마를 연주해 주기를 바랐던 내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뜨거운 관객의 박수와 환호 앞에서 인사를 마친 타로.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돌아와 연주를 들려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사인회가 열렸지만 나는 열심히 줄을 서는 사람들 사이에 끼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부디 다들 미소와 웃음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 가지셨기를. 내게는 공연장에서 함께한 그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음악을 듣지 않았다. 공연의 여운을 그대로 즐기고 싶었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아티스트의 공연을 실제로 보고 실망하는 경우도 간혹 가다 있다. 특히 해당 아티스트가 리즈 시절을 한참 넘긴 고령의 연주자라면 그럴 가능성은 조금 더 높아진다. 그런 면에서 타로의 이번 독주회는 남달랐다. 그동안 음반으로 접한 것보다 더 인상적이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연주였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전성기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건 분명히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꼭 전성기가 아니라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연주를 실황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그리고 나는 알렉상드르 타로의 연주를 직접 볼 수 있어서 행복했고, 또한 축복받은 심정이다. 부디 한국에서 또 만날 수 있기를. 꼭 다시 찾아 주세요, 타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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