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어블릭 Aug 26. 2019

비가 오기 전의 불안함과 내린 후의 상쾌함

아이들의 선택 후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선택을 해야만 했다.

아이들은 길바닥에 드러누워 울고 마느냐 아니면 이쁜 짓을 해서 원하는 것을 얻느냐, 

햄버거를 먹느냐, 아니면 샐러드를 먹느냐 (앙... 난 샐러드는 너무 싫은데 안 먹으면 살찔 거 같아..)? 치마를 입느냐 바지를 입느냐? 생머리를 유지하느냐 파마머리를 하느냐? 등의 간단한 선택부터, 대학교를 가느냐, 간다면 어떤 학과에 가느냐, 유학을 가느냐, 결혼을 하느냐, 아이를 낳느냐까지 우리는 쉴 새 없이 결정을 해야만 한다. 

이 결정을 하기까지 주어지는 시간은 단 몇 초가 될 수도 있고, 며칠이 걸릴 수도 있고,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아주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할 때는 우리는 불안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래도 불안하고, 왠지 그들은 내 입장을 100퍼센트 이해를 못할 것 같다. (당연하지. 어떻게 이해한데?)

또 어떤 이들은 내 결정에 정말 발 벗고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나서며 우리의 구원자를 자처한다.  

우리는 결정을 해야만 한다. 수백 번의 결정을 할 때 그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을 또다시 수십 번씩 생각을 바꿔가며, 이게 옳을까? 저게 옳은 걸까? 이러면 후회를 하겠지? 저러면 후회를 하겠지?라고 갈등을 한다.  


우리 아이는 결정장애, 햄릿 증후군? 

햄릿 증후군이란 말이 무엇일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것은 정말 문제다. 그러나 아주 간단한 결정을 하는데도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해야 한다면 정말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절대적으로 부모들의 선택을 따랐고, 후에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들이 선택해 주는 삶을 살려고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TV에 나와서 자랑하시는 어머니들이 너무 많으시다. 


성인 (成人) 이란 말이 무엇일까?

성인이란 말은 나이 만 18세를 넘은 이들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즉 물리적, 심리적으로 독립된 존재를 말한다. 

상상을 해보자. 우리 아이들이 이미 성인이 되었다. 

수시 때때로 전화를 하여 질문을 한다. 

"엄마, 내 여자 친구랑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 

".."

"어떻게 하지?"

"너네들이 갈려고 하면 가는 거지"

"경비는 어떻게 하지?" (앙, 엄마 입으로 내가 대줄게 라고 해주었으면 좋겠어..) 


자, 이런 질문들은 한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라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독일에서는 이런 질문 자체가 성인이 된 나이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고로 이미 스스로 질문을 하고, 계획을 짜고, 경비를 구한다. 이것이 성인이다. 


자녀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개인의 가정을 꾸려서도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가? 절대 아니다. 독립되고 자존적인 아이로 키워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정말 어려움이나 위기에 빠졌을 때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몫이지 사사껀껀 우리가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해주고 선택해주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선택의 지속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고, 어른들은 운동 수업이나 다른 취미활동을 시작한다. 본인들의 선택에 따라 말이다. 나름 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것이 괜히 "작심삼일"일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것도 일주일 만에 한 달 만에 좋은 결과,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힘들다. 


독일의 저명한 교육학자  Manfred Spitzer는 수학과 음악수업의 반복은 필수라고 한다.  (저서 : Lernen 배움, Page 253) 어떤 이들은 수학적 사고력은 타고난 것이라고 믿는다. 이 학자는 TIMSS (Third International Mathematics and Science Survey)를 인용하여 싱가포르와 이란의 학생들의 수학능력을 비교하였다. 수학 역시 피아노 연습, 축구 연습, 체스와 같이 연습을 통해서 그 실력이 상승된다고 그는 저술하였다.  


어느 날 아이가 축구를 배우고 싶다고 한다. 

"엄마, 축구 배우고 싶어요."

"그래 그럼 축구교실에 방문해볼까?"


며칠 뒤 아이는 자신이 다른 아이들보다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생각을 하는지 흥미가 떨어졌는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한다. 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축구교실은 아이가 원하여, 아이가 선택한 수업이다. 고로 최소 6개월간은 수업에 참관시키자. 본인이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본인의 성장과정을 체험할 수 있게 하자. 




큰 것과 작은 것의 선택

중요하지 않은 것은 백가지 선택보다 중요한 것의 하나의 선택이 아이들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도와줘야 하는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이다. 

수시 때때로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 우리는 선택한다 '아, 찡찡대는 거 듣기 싫으니 사줘야지'또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어느 것이 장기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두려움에 대한 선택, 기회를 위한 선택


아이들이 선택을 할 때, 우리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과제를 할 때도 

"너 이것 끝 안내면,.... 할 거야!" 라던가

"제대로 행동 안 하면, 1주일 동안 군것질 금지야!"라던가 말이다. 

아이는 본인의 선택의 기회가 있지만 나의 협박 아닌 협박에 선택을 강요받는다. 

성적도 마찬가지고, 친구를 사귐에 있어도 마찬가지 말이다. 

그리고 미래의 직장생활, 결혼의 결정까지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두려움에 대한 결정이다. 

독일에서는 아이들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예를 들어 과제를 하지 않았다면 혼나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다. 준비물을 챙기지 않아서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면 그 역시 아이들의 몫이다.

당연히 우리는 옆에서 매의 눈을 가지고 아이들이 잘하고 있나 없나 은근슬쩍, 수시 때때로 질문도 해야 한다. 

내가 요점을 두어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이 당장 놀고 싶어 과제를 하지 않고 그 순간 노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 그 결정의 몫은 아이의 책임이라는 것을 명심시키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건 우리는 불안하다. 

그리고 아이가 그 중심에 선다면 더더욱 말이다. 

비가 내리기 전에 하늘은 불안해 보이지만 비가 내리고 나서 맑게 겐 하늘은 상쾌하다. 

아이들이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가 당연히 생기게 될 것이다. 어떤 아이는 성적이 되는데도 인문계가 아닌 다른 고교로 가기를 원할 것이고, 어떤 아이는 수능성적도 월등한데 예체능계 대학을 가겠다고 우길 것이다. 


한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변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나는 그 선택으로 인생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로 가는 경로가 바뀐다고 생각한다. 

가기 쉬운 길이 있을 것이고, 어려운 길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본인들의 선택으로 자신들이 정하는 꿈이 있다면 당연히 그 길을 찾아 낼 것이다.  


나는 대학교를 그렇게 우겨서 내가 원하는 학과로 진학을 했다. 부모님은 내가 교육대에 진학하기를 원하셨다. 그때 당시 나는 어떻게 그렇게 심심한 직업을 내가 가지기를 원하냐고 핏대를 올려 부모님과 말다툼을 하고 그렇게 내가 원하는 학과에 진학을 했다.  그때 당시 부모님은 내가 미래에 안정된 직장을 가지기를 원하셨던 것이고 나는 내 꿈이 있어서 그렇게 결정을 했던 것이다. 당연히 나는 가끔 후회를 한다. (흑..ㅜㅜ) 그리고 뒤늦게 아이들을 통해서 심리학과 교육학에 관심을 가져 이렇게 틈틈히 서적을 뒤져 공부를 하고 사이버대학을 방분하고 있다. 나는 이 길을 돌아서 왔다. 


그러나 나는 안다.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선택이 옳았는지 나빴는지도 알 수 없었을뿐더러 다른 이들만을 탓했을 것이다. 이 후회의 선택도 내 몫이 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학이 두려운 부모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