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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어블릭 Aug 11. 2019

네, 외국인이란 이런 것입니다.

한국을 떠나기를 꿈꾸는 이에게.. 그리고 다시 귀향하고 싶은 이에게..

와, 이민 가는 거야?

와, 유학 가는 거야?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90년에는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으로 이민을 가는 사람들은 "성공"이란 단어와 연결되어 있었다. 아니,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 했다.

첫 번째는 그때 당시 영어교육이란 게 맨투맨이라는 영어바이블 외에, 오성식 님과 이보영 님 외에 영어를 잘 가르치시는 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시기였다. 그곳으로 가면 영어도 "쏼라쏼라" 네이티브처럼 된다고 생각했고, 그 영어만 잘하면 다 잘 먹고 잘 산다고 생각했나 보다. (많은 이 시기 유학생들은 좋은 직장을 구했었다. 왜냐?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귀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외국에만 가면 성공한다는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리고 유학이란 단어는 "부모들의 부"와 연관이 되어있었고, 유학을 다녀온 학생들은 공기업, 대기업의 취업이 잘 된다고 굳게 믿었다. 왜냐? 흔하지 않았으니까..


90년대 말에는 자아를 찾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차츰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고, 한비야 선생님의 책을 발간으로 2000년대 초에는 배낭여행이 붐이 일기도 하였다.



아, 나 한국에선 똑똑한 사람인데...


요즈음은 흔한데 흔한 게 해외여행이고, 해외유학, 워홀, 그리고 이민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는 충분히 정보를 얻고, 저가 비행의 장점으로 몇 번의 사전 방문을 한 뒤, 그리고 어학을 준비한 뒤 한국을 떠난다. (안녕~)


외국의 생활은 우리의 환상과 딱 맞게 떨어질 수도 있고, 아예 정반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한국에서 똑똑하다 싶은 사람들, 또는 한국과는 다른 삶을 꿈꿨던 이들은 외국으로 떠났다 생각과는 다른 현실에 절망을 한다. (예를 들어 나? 나는 절망은 하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은 했다.)


나는 초반에 그렇게 열심히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반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나에 너무 자괴감을 느껴 대학 화장실에서 그렇게 엉엉 울었다. 시험에 떨어져서 울고, 독일어 제대로 하란 소리에 울고 말이다. (내 눈물이 흘러 흘러 강을 이뤘다는 소리가;)

주위의 한국의 스카이 출신분들 중에서, 한국에서 멀쩡하게 대기업 직장을 다니다가 오신 분들이 언어에 문화에 벽에 절망하고 돌아가신 분들도 대학생활 가끔 경험할 수 있었다.

어쩌면 몇 년을 질질 끄는 거보다 빠른 포기가 그들을 위해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본인의 꿈의 길이 너무 길어지다보면 슬슬 정신줄은 놓게 되는 불상사도 생기게 된다 (?정말 이상해 지시는 분들이 생긴다.. )


이제 네이티브겠네?

 언어란, 우리가 아주 어릴 때 배우지 않는 이상 원어민처럼 한다는 것은 환상은 진작에 깨어야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와, 넌 이제 14년 정도 살았으면 독일어를 원어민처럼 하겠네?"

라고 말이다.

나도 "당연하지" 라고 말하고 싶다

허나...

"훗, 아닌데~"라고 난 대답한다.

난 스스로 독일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원어민처럼 말을 하지 못한다. 악센트에 관사도 가끔씩 틀려준다. 말하고 나서, 아니면 말하는 중간에도 '잇...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잖아!!'라고 스스로 깜짝 깜짝 놀란다.(바보...)


1년이 지나면 술술 말하고, 5년이 지나면 악센트가 없어지고, 10년이 지나면 네이티브가 된다고 믿었나 보다. 믿음과 현실이 틀려지고, 한국어는 어눌해지고, 영어는 독일식이 되고....

그래. 스스로 욕해봤자 누가 '아이고 불쌍해라. 안늘어서 어짜누...' 라고 안해준다.

이것을 이제는 받아들이게 되었다.

열심히 하되, 자괴하진 말자.


 

바닥부터, 부끄러워하지 말자.

한국에서 정상에 있던 사람들도 외국에서는 말 못 하는 바보고, 돈이 아주 많지 않은 이상 그 나라 내국인이 기피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곳에서 수많은 외국인을 봐왔다. 스페인에서 변호사 하던 친구는 남편 따라 독일로 와서 스페인어 선생님을 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국정 변호사로 일하던 친구 역시 남편 때문에 이곳에 이주를 하고 지금은 체조교실을 하고 있다.

상상이 되는가? 중산층, 정상 직장 생활을 하던 사람들도 식당을 하거나 청소를 하면서 초반에는 그렇게 시작을 한다.


왜냐, 외국에서는 우리는 외국인 이기 때문이다. 영어나 해당 국어를 아주 잘하고, 특별한 전문직 종사자인 경우는 당연히 예외다. 그들은 취업이 되어서 오거나, 비자 자체가 틀리게 나오기 때문이다. 페이도 틀릴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직장을 다녀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은 잘해도 튀고, 못해도 튄다.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이다.

다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나와 남편은 언젠가 스위스의 취리히로 이직을 할 기회가 있었다.

모두가 꿈꾸는 취리히!! 살기 좋은 나라 취리히.

그러나 나는 나의 남편에게 이 말을 했다.

"난 가기 싫어.... 이제 독일에 정착했는데..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둘 다 외국인이잖아....나 또 다시 시작해야하고.. 당신도 외국인이 되는 거잖아."라고.....


이 말을 남편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난 내 남편이 내가 힘들어했던 첫 5년을 경험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은 가 느낌도 말이다.

내 독일인 남편은 프랑스 툴루즈에서 1년간 산 경험이 있었고, 바르셀로나에서 산 경험이 있었다. 단기간으로.. 남들 하는 어학연수 말이다. 남편은 그 시간을 젊은 시절 제일 재밌었던 기억으로 꼽는다.


어학은 재미있다. 모든 이민자들이 말한다. "어학 때가 제일 재밌어~"라고...


어학 때는 환상 속에 사는 시기다. 친구들도 다 말 못 하는 외국인 친구들이고, 계획은 원대하고, 프로그램도 다 짜있고 말이다.

어학이 끝나면 현실로 돌아온다. 내가 혼자 헤쳐나가야 할 일들 말이다.

 아니면 외로움에 한국인만 찾아다니며, 한국문화만 고집하고, 그 거주하는 나라를 미워하게 되는 안타까운 경우도 생기게 된다.


웰컴 투 코리아 어게인

외국인으로 사는 것은 언제나 편견과의 싸움이다.

친구를 사귀어도 내가 적극적이 되어야 하고, 취업도 내가 정말 뛰어나야 하고, 나라 분위기가 외국인을 주제로 뒤숭숭하면 우리는 눈치를 봐야 한다.


한국이나 독일이나 미국이나 외국인은 항상 편견을  달고 산다. 다행스럽게도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은 그나마 아랍계 친구들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우리는 편 견기 중에 우리에게 나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이렇게 말해 주면 된다

"아, 네, 그렇게 쭈 우우우우 생각하세요, 그건 네 생각이세요."

난 이런 편견, 차별등의 도를 이제는 해탈했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처럼 전 세계적으로 "외국인" 에 적의적인 분위기속에선 다시 조국으러 발길을 돌리는 갓도 이해는 된다.

나는 독일인과 결혼했기때문에 어느정도 플러스포인트는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정말 초반에 힘들것이다.


돌아가는 이들이여...

우리는 유학도 이민도 마을버스 타고 이웃동네 놀러 가듯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떠날 때도,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 이든 다시 돌아오게 되는 상황이 될 때도 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의 환상이 깨져서든 금전적인 이유에서건, 가족과 친구가 그리워서 건 말이다. 나라를 떠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떠난 나라로 귀향하는 것일 것이다. 금의 환향이 아니라면 더더욱 말이다...



만약 우리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돌아온다면 한마디 해주자.


"수고했어. 잘 돌아왔어."라고.. 그들은 먼길을 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이들이다. 수많은 질문보다 집으로 되돌아옴에 기뻐하자. 맘도 몸도 지쳐있을 그들이다. 수고했다 말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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