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 낙타, 그리고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
길었던 하루 끝, 자이살메르의 사막에도 드디어 밤이 찾아왔다.
사막의 밤은 뜨거운 낮과는 대조되게 엄청 춥다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느새 모두가 모닥불을 중심으로 한 자리씩 차지하여 언제 또 올지 모를 사막에서의 노숙을 준비했다.
까만 밤하늘과 수많은 별들을 지붕 삼아
고운 모래는 이불 삼아,
간간히 들리우는 낙타 울음소리는
고요한 자장가가 되었다.
by 나타샤 킴
흥분되었던 마음은 찬 물을 끼얹은 듯 차분히 가라앉았다.
조용한 모래바람 가운데 둘러앉은 모닥불만이 간신히 타닥이며 생명을 다해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느새 시간은 밤 11시 반, 사람이 센치해지기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나는 평생토록 꿈꿔왔던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감격스러워 오히려 눈이 똘망똘망해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물론, 사막 모래 위 대충 깐 이부자리의 불편함도 한몫했지만, 자꾸만 얼굴에 들이닥치는 모래바람이 매우 신경 쓰였다.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감상하고 있는데, 자꾸만 눈과 코 그리고 입. 얼굴의 구멍이랑 구멍으로는 전부 들이닥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주머니를 뒤적여 조금이라도 모래를 막아보고자 마스크를 착용했다. 나만 이 불편함을 느낀 게 아닌지 친구 재선이도 마스크를 꺼내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동지 의식을 느낀 우리는 배시시 미소 지었다.
"사막 모래가 여간 못 살게 괴롭히지?" 내가 물었다.
"어, 장난 아니다. 이래서 제대로 잘 수나 있으려나 모르겠어."
재선이는 작은 불평을 토하고는 다시 몸을 웅크렸다.
다른 친구들은 어쩜 그렇게 잠을 잘 자는지, 모래바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깊은 잠들에 빠진 듯했다.
아마 투어가이드인 원빈같이 사막에서 지낸 경험이 오래된 친구들은 익숙하리라.
나는 다시 칠흑 같은 밤하늘에 집중하기로 했다.
원래라면 밤하늘에 빼곡히 꽉 차 있어야 할 하얀빛들이 듬성듬성 빈 공간을 보이는 걸 보니, 보름달의 환함에 상대적으로 별들이 제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하는 듯했다. 밤하늘 가득 빛나는 별들을 기대했던 나는 못내 아쉬움을 느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별들을 눈에 담아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행복해졌다.
밤이 깊어가며 모닥불이 꺼지자, 별들이 더욱 또렷해졌다.
이 평화로운 풍경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감사하게도 기술 좋은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나는 휴대폰의 야간모드를 이용해 별들을 촬영할 수 있었다.
전문가용 고급 카메라가 아니라 별들의 형체가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폰으로 밤하늘의 별을 촬영해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이점이었다.
나름대로 별들과 놀아보고자 손짓 발짓 제스처를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하지만 상당히 어두워서 모닥불에 반사된 손의 일부 형태만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정도면 그래도 혼자 놀기 장인인 듯하여 - 별것 아닌 것에, 내심 혼자 뿌듯해졌다. 그렇게 잠시 가만히 누워있으면 수많은 별들이 나에게 쏟아질 듯해 보였다.
'이렇게 야외에 누워 하늘의 별을 헤아린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을 보니, 헤아리기도 힘든 옛날인 듯했다.
모두가 잠든 그 순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사막의 밤이 추웠는지,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는지 갑작스레 사막의 들개가 찾아와 내 옆에 찰싹 붙어 똬리를 틀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덜컥 겁이 나 옆에서 자고 있는 원빈을 깨웠다.
"원빈, 웬 개가 내 옆에 왔어."
"응? 저리 가! 훠이" 원빈은 능숙하게 개를 쫓아냈다. 그러고도 개는 미련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내 옆으로 찾아왔다. 이번에 원빈은 자꾸만 찾아오는 개에게 짜증이 났는지 작은 돌멩이를 던졌다.
"깨갱!"
개는 부리나케 도망쳐 사라졌다.
'돌까지 던질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도망친 개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빈은 다시는 개가 옆에 오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자라며 나를 안심시키듯 말하고는 다시 단잠에 빠졌다.
깊은 새벽이 되자 기온이 더욱 떨어졌다. 몸이 으슬으슬하여 눈을 떠보니 아니 글쎄 원빈이 내 이불까지 몽땅 가져가서 덮고 있는 게 아닌가? 어쩐지 몸이 춥더라!
콧방귀를 뀌며 원빈이 가져간 내 몫의 이불을 되찾아왔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슬금슬금 이불이 다시 원빈에게로 옮겨가고 있었다.
"원빈! 내 이불 가져가지 마, 나 춥단 말이야."
"아 내가 그랬어? 미안해요." 원빈은 비몽사몽 한 상태로 대답 후 이불을 돌려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난 후, 아니나 다를까 다시 한번 잠든 이불 도둑이 찾아왔다. 나는 더 이상 원빈을 깨우고 싶지 않아 낑낑대며 조심스레 이불을 반틈 정도 되찾아왔다. 그렇게 다시 잠을 청하려니 이미 잠이 다 달아난 후였다. 다시 잠에 들기는 글러 보였다.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샌가 내 곁을 도망쳤던 들개는 재선이 옆에 둥지를 틀고 자고 있었다.
그런데 모닥불을 중심으로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친구 제이가 사라졌다.
"제이! 어디 갔어?"
꼭두새벽에 갑자기 자취를 감춘 제이를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불러보었다. 여러 차례 불러보았으나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었다. 화장실을 갔나 싶어 기다려도 봤지만, 한참 시간이 지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직접 찾으러 나서기로 했다. 야영장 주변을 돌고 주변의 작은 사구에 앉아 쉼을 취하는데 2km는 떨어져 보이는 높은 사구 꼭대기에서 하얗고 검은 것이 보였다. 그것은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 가만히 있는 듯해 보였다. 하얀 두건을 두르고 있던 제이였기에, 긴가 민가 했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다.
아마 저것이 제이라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었기에.
나는 낙타들이 꾸벅꾸벅 머리를 조아리며 자고 있는 사구로 향했다. 한 치 앞이 불투명한 어둠 속에서 나는 작은 손전등에 의지하며 낙타 똥들을 피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낙타들의 푸르륵 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제법 익숙해지고, 나는 고운 모래를 헤집어 푹신한 자리를 만들어 앉았다.
어느새, 빛나는 별들을 뒤로하고
새 날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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