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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샤 킴 Jun 18. 2022

너 사기꾼 아니세요?

오만과 편견

 나름 델리 근교, 아그라에 위치한 타지마할은 당연히 인도에 와서 필수적으로 가야하는 관광지 제 1순위 였다. 어릴적 부터 익히 들어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란 명성에 기대감도 한껏 부풀어 있었다. 크기가 어마어마하다는데 과연 얼마나 클지, 정말로 완벽한 좌우 대칭 구조를 이루는지 등 내 머릿속은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그라에 위치한 타지마할의 전경


우리는 타지마할 근처 호텔에서 밤을 보낸 후, 아침 일찍 여행 길을 나섰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본토박이 아그라 출신인 친구, '아유시'와 함께였다.


아유시는 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히 마른 작은 체구를 가졌다. 짙은 그녀의 피부가 그녀를 더 말라보이게 했다. 웃을 때는 온 세상을 다 가진듯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웃는 것이 그녀의 멋진 매력이다.

아유시는 본인이 한껏 아그라의 모든 것을 가이드 해주겠다며 큰 소리를 땅땅 쳤다.


이렇게 작은 참새같은 친구가 듬직한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대견스럽고 든든했다. 또 정말 고마웠다. 현지 여행에 있어 그 현지를 잘 아는 친구가 함께 동행해주는 것은 든든한 힘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현지의 언어 장벽과 혹시 모를 사기에 대한 두려움마저 없애주는 지원군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텔을 출발해 타지마할에 입장하는데에서부터 생각지 못한 상황에 우리의 여행은 삐그덕거렸다. 타지마할에 입장 전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이 있는데 그 길을 잠식하고 있는 수 많은 삐끼들이 아유시를 붙잡고 티켓을 본인들에게서 사가야한다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목에 건 카드 목걸이를 내밀며 본인이 공공기관 소속의 여행가이드들이라고 주장해왔다.


'아이고, 두야!’


나는 머리가 아파왔다. 알아듣지 못하는 힌디어 투성이에, 토박이 친구마저 쩔쩔매고 있으니 속이 답답했다. 어찌저찌 그들을 뒤로하고 타지마할 범주 안으로 이동식 카트를 타고 들어섰다고 생각했는데, 아유시가 아까 있던 삐끼와 함께 있는것이 아닌가?


답답한 마음에 아유시에게 '우리 그냥 티켓 창구에 가서 사면 된다, 저 사람 사기꾼 같다.'를 강하게 어필했다. 그러나 아유시는 잠시만 기다려보라며 삐끼와 시간을 끌었다. 그러더니 현재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창구 문이 닫혔다며 이 사람에게서 인터넷으로 표를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500루피를  얹혀서!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이로 인해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을 뿐더러, 다른 뾰족한 방법도 없어보여 울며 겨자먹기로 그 사람에게 웃돈 500루피를 더 주고 입장권을 구매해야 했다.



차후 아유시에게 물었다.


"너 왜 그 사람을 데리고 카트에 탄거야? 딱 봐도 사기치는 사람 같던데…”


"아니야, 그게 아니라 지금 오프라인 티켓 창구가 진짜로 닫혀있어. 그래서 저 사람은 아까부터 우리에게 온라인으로 티켓을 구매해야한다고 말한거구. 만약 우리가 카트를 타기 전 입구에서 그냥 저 사람에게 샀더라면 500루피를 추가로 받지는 않았을거야, 그런데 우리가 그 말을 안 믿고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안에 들어온 거고. 그래서 저 사람이 안까지 우리를 따라 들어왔다가 나갔다하게 된 추가비용을 따로 요구한거지. 그래서 티켓을 사면서 500루피를 그 사람에게 따로 준거야.”


사실 우리는 오프라인 티켓창구를 직접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정말 그 사람은 사기꾼이 아닌 공공기관의 투어가이드였단 말인가? 그런데 온라인이면 우리가 직접 예약을 했어도 될 듯 한데 왜 굳이 그 사람을 통해서 해야했나? 애초에 함께 안에까지 따라 들어온 이유가 뭐였지? 본인이 공공기관 여행도우미라고 하면서, 도와줘놓고 돈을 받아가는 것도 못내 우스웠다. 등등 의문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구태여 아유시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끝난 일, 구태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기분 좋은 여행을 망치고 싶지도 않았고, 결과가 어찌 되었든 우리 모두를 위해 끝까지 본인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해 준 아유시에게도 형언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그를 의심한것은,
나의 오만과 편견이었을까?

아무래도 사기가 판을 치는 여행지들을 많이 다니다 보니, 걸핏하면 '이거 사기 아니야?' 의심부터 하게 되는 게 일수가 되어버린 듯 했다. 얼굴만 봐도 누가 사기꾼인지는 이제 분간이 갈 정도이니 말이다. 이젠 여행지 어디를 가도 무언가를 현장에서 사거나 서비스를 구매하려면 최소한 3군데는 돌면서 비교해보는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끝없는 흥정과 말싸움에 지쳐버린 나 자신이 보였다. 아까 그냥 그렇게 웃돈을 주고 티켓을 사는것에 응한것도, 우리가 직접 예약해야 할 수고와 시간을 번 값이라 생각하자 그저 덤덤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전 20대 초반이었을 때의 나였으면 아마 끝까지 따지고 들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지나가는 시간의 가치를 더 크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니,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방원의 시조 일부 구절이 머리를 스쳤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萬壽山) 드렁츩이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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