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 Mar 19. 2022

졸업 후 첫 사회생활,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지만

남의 돈 버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대학교 학위증을 받았다. 학기가 끝나자마자 고향으로 돌아왔고, 바로 일자리를 구하게 된 데다가 코로나도 가시지를 않아 졸업식은 가지 않았다. 학과 사무실에 부탁해 우편으로 받은 학위증은 시험용 봉투에 두 번이나 봉해져 무사히 내 손에 들어왔다. 문학사만 두 개가 적힌 학위증, 그걸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란 ‘이 종이 한 장 받으려고 대체 얼마를 쓴 거지’ 였기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으니 월세, 생활비, 등록금과 자잘한 비용을 합쳐 족히 1억이 내 8년간의 대학 생활을 스쳐 지나간 셈이었다. 물론 전부 부모님과 나랏돈이었다.


그렇게 서울 소재의 학위증을 가지고 지방의 본가로 돌아온 내가 구한 첫 일자리는 ‘학원 강사’였다. 대학원 학비와 생활비도 모으고, 이왕이면 내가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어서 어학원 계약직 자리만 골라 이력서를 넣었다. 어학 분야에서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대학 졸업장은 적어도 지방 어학원에서는 프리패스 합격증처럼 작용했다. 본가로 돌아오고 일주일 만에 영어학원 강사 자리를 구했고, 이제 일한 지 한 달 반 정도가 지났다. 시간이 참 빠르다.


나는 사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친구들이 학원과 과외 뺑뺑이를 돌 때 나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교실, 혹은 EBS를 들으며 공부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도 했다. 세 자매 모두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 학원이라 봤자 동생이 가고 싶대서 보내신 미술학원이 전부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사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늘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내가 가장 먼저 지원한 분야가 학원이라니 아이러니했지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순 없다는 걸, 학교를 졸업하고도 여전히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 있지만 경제적인 독립은 시작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기에 ‘그나마 내가 좋아하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영어학원 강사 자리에 지원했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보다 안 다니는 아이가 더 드문 이 시기에, 그 소수에 속했음은 물론이고 사교육에 대해 부정적이기까지 했던 내가 이 업계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데서부터 어쩌면 고난은 예견되어있었을지도 모른다.


고작 한 달 반이지만 학원을 보내는 이유에 공부는 물론이고 ‘보육’의 의미도 매우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쁜 한국 부모님들은 아이를 맡길 곳이 필요하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부르는 것보다는 학원을 보내는 게 저렴하다. 학원에 간 아이는 영어 공부도 하고,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놀며 사회성도 기른다. 학원 공부는 재미없지만 친구와 노는 건 재미있다. 그래서 학원에 온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보다 최소 1년은 앞선 영어 과정을 공부하고, 영어 뒤에 또 다른 학원에 가야 한다며 숙제를 줄여달라고 투덜거린다. 마치기 몇 분 전부터 수업이 끝날 시간을 카운트하며 잘 가라고 인사하자마자 친구들과 떠들며 달려 나간다.


출근 초기에 낯선 선생님을 파악하느라 조금 얌전하던 아이들은 한 달이 다 되어가자 수업을 시작하고도 떠들고 돌아다니고 장난을 치고 가끔은 생각 없는 말을 뱉어 선생님인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사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누구를 가르쳐본 적도 없었던, 초기에는 ‘이렇게 좋은 일자리가 있다니’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장 토요일인 오늘부터 다음 월요일이 두렵다. 오늘은 어떤 아이가 난데없이 울음을 터뜨릴까, 어떤 아이가 ‘선생님은 책만 읽어주면서 월급만 왕창 받아 가잖아요’에 버금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말을 던질까, 하는 불안에 잠을 설친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친구가 ‘애들이 말을 안 듣는 건 절대 네 탓이 아니다’라고 위로해줘도,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 게 내 탓인 것만 같다. 착하고 만만해 보이는 사람은 어떻게든 등쳐먹으려는 사회의 논리가 고작 초등학생 대여섯 명이 전부인 교실에서도 적용된다는 데 울분이 차오른다.

하지만 숙제를 잘 안 해오는 아이와 보충 수업을 한 뒤 ‘다음부터는 숙제 꼭 다 해오자’하고 손가락을 내미는 내게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해주는 아이를 보면, 난데없이 소리를 치며 울던 아이와 눈을 맞추며 ‘그런 이유 때문에 속상했구나, 울지 마’라며 눈물을 닦아주다 보면, 재미있는 선생님이 못 되는데도 ‘이제 집에 갈 시간이에요’하면 집에 안 가고 학원에 더 있고 싶다는 아이들을 보면. 반년 짜리 계약서에 묶여 스쳐 지나갈 곳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내가 이 아이들을 만나게 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사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내가 여기서 일하게 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세상은 갈수록 험해지고 유튜브가 아이들을 망쳐놓으며, 노키즈존이 성행하고 초등학생을 부르는 멸칭 따위가 유행하는 시대지만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일 뿐이다. 엄마아빠가 좋고,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게 좋으며, 아직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잘 모르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잘 웃고 잘 울기도 하는 그런 존재들.


그래서 나는 주말의 하루는 다음 주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다 보내고, 여전히 모든 아이에게 골고루 신경 써주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자책하며, 사실은 나도 아직 모르는 게 많은데도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가끔 운다. 마냥 열심히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사람을 대하는 모든 직업의 근본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믿어보려고 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남의 돈을 버는 일은 특히 더 어렵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남의 돈을 벌어서 먹고 살아가야 하니까, 다 같은 처지인 마당에 본인이 힘들다고 남의 일을 비하하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를 밟고 올라서고, 이겨 먹는 게 행복이 아니며 다 같이 도우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라는 걸 사교육 현장의 어린이들을 보며 깨닫는다. 미울 때는 정말 밉고 예쁠 때는 정말 예쁜 아이들을 보며 결국 내 생각이 흘러가는 곳은, 우리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라 이 모든 아이를 위해서라는 결론이다. 이렇게 나는 이번에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의미를 찾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물일곱에 대학을 졸업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