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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Sep 12. 2020

아빠의 시

어릴 때는 아빠가 시인인 줄 알았다. 늘 냉기가 들던 작은 방, 어린 내게 살갑기보다는 엄한 느낌이었던 아빠는 TV를 보거나 하지 않을 땐 늘 그 방에 계셨다. 종종 슬그머니 문을 열고 방 안을 들여다보면 아빠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를 펼쳐 놓고 뭔가를 쓰고 계셨다. 아빠 한 명이 들어가면 가득 차는, 복도로 난 창문을 면한 작은 방에는 꽤 큰 책장도 두 개 있었다. 그 책장은 엄마가 혼수로 가져온 문학 전집과 아빠가 젊은 시절 읽던 철학책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호기심에 거기 꽂힌 책을 꺼내 들었다가 한 페이지를 빽빽이 채운 깨알 같은 글씨에 몇 장 넘겨보지도 않고 덮었던 기억이 있다. 서재라고 부르기에는 그 방에 여러 잡동사니도 함께 모아두었기 때문에, 어린 내게는 참 묘한 공간이었다. 모두가 ‘아빠 방’이라고 불렀지만 거기서 잠을 자지는 않아 늘 춥고, 동화책만 있던 큰방(나와 동생이 쓰던 방)과는 달리 두껍고 어려워 보이는 책이 그때의 나로서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이 있고, 별로 말이 없는 아빠가 늘 그 책들을 읽고 검은 노트에 뭔가를 끼적이던 곳. 아빠가 없을 때 몰래 펼쳐 본 검은 노트에는 휘갈긴 듯 멋진 글씨로 글이 쓰여 있었다. 개중에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시간’을 주제로 한 듯한 글이었다. 짤막한 문장과 문투로 보아 시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우리 아빠의 직업이 ‘시인’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 같다. 골방에 틀어박혀 묵묵히 책을 읽으며 짤막하고 멋진 글을 쓰는 사람. 당시의 내 머리로는 그런 사람을 ‘시인’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었다.


좀 더 머리가 크고 나서는 아빠의 직업이 예술가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실망감 같은 건 없었다. 늘 뭔가를 읽고 쓰던 아빠는 주말마다 온 가족을 도서관에 데려갔다. 낡고 작은 도서관은 1층 복도를 기준으로 어린이도서관과 일반도서관으로 나뉘어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린이도서관에서 아빠가 골라준 책은 위인전이었다. 그 외에는 나와 동생이 자유롭게 책을 고르도록 놔두셨다. 그러면 우리는 제목이나 표지가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한두 권 골라 아빠가 꺼내준 위인전과 함께 빌렸고, 아빠와 엄마도 일반도서관에서 책을 몇 권 빌리셨다. 책만 빌려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종종 도서관 앞 등나무 의자에 앉아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빨리 집에 돌아가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는 아빠가 골라 준 위인전도, 내가 골라 온 책도 좋아했다.

유년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기억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말에 온 가족이 차를 타고 도서관에 가던 이때를 말할 것이다. 계곡이나 놀이공원에 나들이 가는 것보다, 시트가 까칠까칠하던 아빠의 하얀 프라이드에 타고 도서관에 가던 그날들이 더 좋았다. 그렇게 빌려 온 책을 읽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말마다 도서관에 갔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두 번 집을 옮겼다. 집은 더 넓어졌지만 ‘아빠 방’은 없어졌고, 첫 집에 있던 책도 많이 버렸다. 하지만 아빠는 변함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아빠의 작은 책상에는 여전히 검은 노트와 내가 선물한 만년필이 놓여있다. 그런 아빠를 보고 자라, 친구와 노는 것보다 책을 읽는 걸 더 좋아했던 나는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도, 세상도,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아빠를 보며 깨닫는다. 아빠에게도 역시 달라진 점들이 있지만 나는 이제 갤럭시탭으로 TED 강연을 보고, 문학과 철학책보다는 성경을 읽는 아빠의 안에 내 어린 시절 보았던 시인이 살아있음을 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 역시 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지 않았을테니까.


연애하던 때 엄마에게 시를 외워주기도 했다던 아빠는, 타지의 대학에서 도스토옙스키를 배우고 감탄하던 내게 고골은 읽어보았냐 질문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윤동주 시인에 관한 소설을 읽은 엄마가 산책 중에 그의 시를 좀 외워보라고 말하면, 참 쉽게도 서시를 읊었다. 내가 유치환의 ‘생명의 서’가 좋다고 하면 아빠는 이육사의 ‘광야’를 외웠다. 그날 산책하던 길에 아빠는 내게 좋은 시를 한두 개 외워두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줄 거라고 했다. 과연 그랬다. 끝까지 외우는 시는 없었지만, 나는 종종 국적을 불문하고 시로 도망치고는 했다. 그 시는 윤동주일 때도 있고 로버트 프로스트, 실비아 플라스, 혹은 푸시킨이 되기도 했다. 그때서야 내가 아빠를 참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빠가 책을 통해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 책은 부수적인 수단에 불과할 뿐, 나는 아빠의 모습과 삶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음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아빠가 출근하는데도 인사를 하지 않던 어린 딸을 웃어넘기며 아빠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었을까. 아빠는 자식의 미래를 손수 그리고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자식이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가 채 끝마치지 못한 무수한 시 중 하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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