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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an 01. 2022

사랑하는 너에게.

편지를 참 오랜만에 써. 옛날에는 편지쓰기를 참 좋아해서 서너쪽짜리 편지로 받은 사람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편지를 쓰는 동안에는 온전히 편지를 받을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고, 생각해야 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타인에게 내 시간을 쓰는 게 아깝다고 느꼈던 것 같아. 너를 향해 쓰는 편지는 결국 나를 향한 말로 가득 차게 되고, 어쩌면 그래서 편지 쓰는 걸 무척 좋아했는데도 그랬어.


편지란 건 참 신기하지. 분명 너에게 보내려고 쓰는 건데 마침표를 찍고 나면 결국 너에 대한 내 생각, 우리가 공유한 시간에 대한 내 감상만이 가득하다는 걸 깨닫게 돼. 그러면 그건 결국 너와 나 모두에게 쓰는 편지가 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간 편지를 쓰지 않았던 나는 너는 물론이고 나 자신과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는 의미가 되는구나. 대화할 힘이나 시간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올해를 30분 남겨두고 이렇게 펜을 들었어. 너한테 한 해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 말이야.


돌이켜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던 한해였어. 그리고 너는 이 말을 매해 마지막 날마다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한 해의 성취를 열거하며 거창한 신년 목표를 세우던 때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무엇을 이루었고 이루지 못했는지를 굳이 정리해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물론 신년 목표는 이미 써뒀겠지만 말이야. 1년 중 이렇게나 의욕이 충만한 시간도 없으니 계획을 간단히 세워보는 건 나쁘지 않지. 이번에도 역시 건강, 공부, 인간관계 같은 똑같은 종류구나.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니까 좋은 목표라고 생각해.


있잖아. 나는 올해의 네가 참 좋았어. 남과 비교하며 기뻐하던 너도, 우울해하던 너도 다 좋았다. 그리고 결국은 사람의 가치에는 높낮이가 없고 그냥 네게 있는 게 다른 사람에게는 없고,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게 네게는 없는 것뿐이니 귀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는 착한 합리화를 하는 너도 좋았어. 쓸모없을지도 모르는 고민을 하고 쓸모없을지도 모르는 글을 쓰는 네가 좋았어. 현재의 네가 이룬 것이 없다며 네가 지금껏 걸어온 길과 해온 선택, 너의 과거, 그렇게 결국 네 자신을 부정하고 비난하는 대신 헛된 시간은 없다며 너를 위로하기로 선택한 네가 대견했어. 어쩌면 스스로를 비난하는 게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도 몰라. 비난은 그 사람을 잘 모르고도 할 수 있지만, 사랑은 그 사람을 잘 모르고는 할 수 없거든. 그래서 네가 너를 사랑해 준 시간이 어쩌면 그렇게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어.


올해 너는 스스로를 위해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지. 네가 정말로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가슴이 뛰고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는지 알았지. 완벽히 확신하지는 못했다는 거 알아. 하지만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원하는 게 있어도 늘 불안한 존재라는 걸 너는 또 하나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전에 깨달았어.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거라는 뻔뻔한 말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올해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러니 후회보다는 감사를 하고, 다짐보다는 인사를 하자. 올해의 네게 작별인사를 하고 새해의 너를 맞이하는 거야. 별로 다를 게 없더라도 괜찮아.


올해도 고생 많았어. 내년에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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