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의 시작 -
그렇다. 난 기러기 아빠다. 아이 엄마와 두 딸아이는 호주에 거주하고 있고 난 한국에서 분양 받은 아파트를 세입자에게 임차해주고 홀로 작은 오피스텔에 기거하고 한달은 한국, 다른 한달은 호주에서 가족과 지낸다. 이 생활은 금년 1월에 시작하였고 처자식을 데리고 처제 식구가 살고 있는 호주 대도시에 도착한 후 내가 호주에 머물기로 한 3주 동안 모든 정착 준비를 끝내고 한국에 혼자 돌아오기 위해 호주에 도착한 첫날 몇시간 처제 집에서 눈 부치는 것 빼고는 렌트 아파트 인스펙션을 시작으로 운전 면허 재발급, 차량 구매, 살림 구매, 호주 메디케어 재발급 등등 너무 많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부리나케 돌아다녔던 과정을 마치고 처음 처 자식을 두고 집문을 나설 때 집사람을 안고서 서로 참지 못해 나오는 눈물을 감추며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 문을 열던게 아련히 생각난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 난 호주 집에 와있고 내일 아침 또 한국행 비행기를 몸을 실어야 한다.
사실 우리는 호주에 금년에 처음 온 가족이 아니다. 10년 전에 호주 이민을 처음 왔었고 하고 있던 비즈니스의 이유로 한국에서 최근 4년을 살았고 다시 호주에 돌아오게 되었으나 우리가 오랬동안 살았던 골드 코스트 대신 호주 대도시로 오게 되었는데 이유는 내가 기러기 아빠이고 이 대도시에는 처제 부부와 처제의 아기가 살고 있으니 집사람과 내 아이들이 내가 없는 동안 처제 부부가 지척에 살면 많은 도움과 위안을 받게 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처자식과 10일 이상 떨어지게 살게 된 올해, 난 올해 2월과 4월을 잊을 수 없다. 2월은 한달 정말 한달 내내 처자식 없이 혼자 있다는게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슬프로 우울한가를 몸소 느꼈다. 그때 나를 보는 누구라도 슬퍼 보인다, 얼굴이 안되 보인다, 안좋은 일이 있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자주 만나던 총각 후배는 유난히 나를 찾아와 위로랍시고 자주 술을 권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 후배에게 짜증도 많이 냈고 그렇게 식구들 생각나면 다시 한국으로 부르라는 권유도 많이 들었다. 이 후배와 단둘이 동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술한잔을 곁들였을 때가 생각난다. 앉았던 테이블이 카운터 옆이었고 식사를 마친 가족들이 식당을 나가기 위해 문앞에 가장의 계산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 집 꼬맹일 세 딸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다른 테이블 손님들은 막내로 보이는 아기들에게 말을 걸었고 큰 언니로 보이는 유치원생 같은 아기를 보고 나는 “아가 몇살이야?”라고 물어보았고 아이가 “아홉 살이에요”라고 대답할 때 그 예쁜 아기가 내 둘째 딸하고 동갑이라는 사실에 순간 웃음을 멈추고 갑자기 슬퍼지는 나를 느끼게 되었다. 내 둘째 아이도 아홉살인데.. 나도 이 동네 여기 저기 식당에서 이렇게 어린 아이들과 외식을 다니곤 하였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무튼 여기 저기 아이들만 보이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중년의 기러기 아빠.. 이건 그 나름대로 더 외롭고 힘든 부분이 많다. 내가 나이가 젊으면 부모도 그 만큼 덜 연로하므로 아이들 보고 싶은 마음만 간직하고 열심히 한국에서 운동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고 일도 하겠지만 갑자기 찾아온 팔순 홀어머니의 편찮음은 나로 하여금 한국에서도 호주에서도 항상 걱정과 근심을 떠나지 않게 하였다.
애초의 나의 기러기 아빠 생활 계획은 2달 한국 거주 1달 호주 거주 였으나 이를 지키지 못했다. 1달 호주, 그 다음 한달은 한국, 그 다음 한달은 호주.. 격월로 호주를 다녀오고 있다. 다행히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덕에 몇번은 보너스 마일리지로 호주를 다녀오고 저렴하게 나오는 티켓을 구매하므로 항공권 비용 부담은 크지 않다. 오히려 한국에 있으면 술 마시는 일이 많이 생겨 발생하는 비용이 항공권 구매 비용을 상회하기도 하므로 항공권은 나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호주로 다시 오기전 몇년 동안은 아이들 얼굴을 무심히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제 큰애는 고학년이 되니 호주 갈때는 덜 귀엽고 덜 안아주고 싶겠지, 막내는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여전히 귀여울테니 막내에 대한 애뜻함만 찾으면 잘 될거야.. 너무 귀여워하고 사랑했던 아이들을 몇달간 못고 살거라는 경험해 보지 않았던 고통에 대해 나름 많은 연습과 준비를 해왔으나 연습을 덜 했는지 아이들은 지금도 너무 귀엽고 예쁘고 항상 안아주고 싶고 아빠를 사랑한다는 말들에 목말라 하고 있다.
3월에 호주를 1달 체류 계획으로 온적이 있다. 마일리지 보너스 항공권이 비즈니스 클래스만 있다는 항공사 말에 처음으로 장거리를 비즈니스 왕복으로 끊어 호기있게 호주를 왔고 오랜만에 본 아빠와 남편이어서 가족들의 큰 환대에 기분 좋게 몇일을 보내던 중 미국 업체에 수출한 물건에 문제가 있다는 바이어의 이메일과 급히 미국 업체로 와주기 바란다는 고지를 받게 되어 급작스레 호주 집에 온지 6일만에 호주를, 내 가족을 떠나게 된 날이 마음 속 가장 슬픈 날이었다. 5주를 내내 기다리던 처자식을 1주만에 떠나게 된 날, 그 편한 비즈니스 좌석도 그저 불편한 캡슐 호텔 같았다.
미국 출장을 다녀오고 나서 그 오피스텔 생활은 다시 시작되었다. 한달 뒤 돌아올 오피스텔을 몇일만에 다시 와 앉아있을 때의 그 어색함음 기러기 아빠가 아니고선 알지 못할 것이다. 나름 많은 위안을 스스로 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다른 기러기 아빠들은 1년에 고작 1, 2회만 처자식을 보러가고 처자식을 보러 와도 길면 1주, 짧으면 사흘 뒤 돌아가는 것을 예전 다른 도시 호주에 살때 많이 보았다. 그 중에는 아이들이 5살, 9살인데도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난 그래도 9살, 12살 조금 더 컸을 때 보냈고 1년에 반 가까이 식구들을 본다는 생각에 위안을 하곤 한다. 하지만 1달은 절대 짧지도 길지도 않다. 한국에 혼자 있을때 1달은 정말 길다. 호주에 있을 때도 길다.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 생각에 호주에 있는것도 편하지가 않다.
다음 월드컵이 열릴 때면 이제 거진 나도 50세이다. 중년의 기러기 아빠.. 아니 사실 독수리 아빠이라 불릴만도 하지만 이제 다시 늘어가는 흰머리를 오피스텔 거울에서 혼자 바라볼 생각을 하는 지금 한참 겨울인 호주 7월만큼 쓸쓸하고 슬프다. 어머니가 더 편찮아 지지만 않길 바란다. 독수리 아빠에서 기러기 아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