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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토일 Mar 20. 2024

서른 즈음에

  공오년, 2005년을 우리는 그렇게 부르기로 했던 것 같다. 나는 이 '뭐뭐 할 것 같다'는 애매한 말을 쓸 때마다 H교수가 떠오르곤 한다. 소설창작이론 수업의 어떤 질문에 교수에게 갑작스레 지명당해 당황한 나머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고 교수는 모르겠습니다 앞에 부사어 '잘'을 붙이면 왜 안되는지에 대해서 10여 분간 연설을 늘어놓았던 기억이 있다. 후에도 뭐뭐 할 것 같다는 저런 애매한 말을 소설 나부랭이에 쓰고 나서 B학점을 맞았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2000년을 우리는 분명히 이 천년이라고 불렀던 같은데, 2002년 월드컵도 공이 년 월드컵이 아닌 이천이 년 월드컵이라고 불렀던 같은데(같은데 같은데), 어째서 어느 순간 공오년이 된 건지 세상모르겠다. 

  05년 입시의 내 수능성적에 대해서는 엄마도 아빠도 담탱이도 심지어 나조차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때 무슨생각에서 어플라이 사이트에 광고를 해대던 호조과를 1지망으로 쓰고, 마지 못해 그때도 (유일하게 비실비실한 끈기로 이어온 글쓰기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어) 문예창작과를 검색해 내가 사는 소도시 근교 아무 대학이나 들어가 버렸다. 사실 예대지원을 위해 재수를 할 생각이었는데 얻어걸린 전액장학금 때문에 그냥 졸업까지 해버렸다. (그 돈으론 교정치료에 써버렸으므로 토해낼 수 없었기에) 내 스무 살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 여파로 얻어걸린 인생을 살고 있는 샘이다. 그렇다 보니 글쓰기를 제외하곤 (가끔 글쓰기도) 의욕적 일리 만무했고 한량처럼 술이나 먹고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서 오바이트를 하고 오전시간을 보낸 후 학식이나 학교 앞 중화반점에서 후추짬뽕으로 해장을 한 후 오후쯤 술이 깨면 다시 통학버스를 타고 나와 술을 마시러 갔다. 

  그날은 오후 수업을 대신해 전 학생이 시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동원되었는데, 도나 시 차원의 문화예술 관련행사에 학과생들이 대동되는 날이 많았다. CGV 청주서문을 쥬네쓰라고도 불렀는데 쥬네쓰가 들어왔을 때 그 앞에는 많은 행사를 했었다. 지금은 철이 지난 옷이나 덤핑 양말을 세일하는 가판이 즐비하지만.  금요일은 오후에 시작하는 4시간짜리 극작수업을 일찍 마치고 나서 청주로 들어오는 통학버스를 타고 행사에 불려갔다.  영문도 모르는 애송이들이 소공연장 무대 객석에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앉아있었다. 그때 나는 그 노래를 들었다.  점점 더 멀어져간다로 시작하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그 이전에도 이 노래를 들었냐고 물으면 어디선가 들었던 적은 분명히 있는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희열). 

  그런데 왜 이 노래를 들으면 그 순간으로 타임슬립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노래를 들었던 여느 다른 곳, 다른 시간이 아니라 나는 그 순간으로 간다. 

  나는 심드렁히 앉아서 무엇인가 관조하고 있었고 천변에서 불어오는 5월의 공기라든지 어느 커피집의 원두향이나 달콤한 디저트 냄새 같은것 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오후 햇살이 주는 따사로운 지겨움 같은것. 나는 늙어버렸고 때때로 그곳으로 돌아가서 풍경 뒤에서 서성거리다가 애송이들의 얼굴을 힐끗 거리고 멀어지는 하루, 아니 하루에서 멀어지는 내 얼굴을 한참 보다가 노랫소리를 뒤로 하고 인파속으로 사라진다. 공연장과 천변풍경을 등지고 걸으며 스무살은 그토록 음울한 기억밖에는 없는지 생각하다가 무슨생각에서 천변쪽으로 되돌아 걷는다. 어쩌면 나는 석양에 반사된 물빛처럼 찬란했던 기억으로 그때의 음울을 위로하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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