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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May 19. 2021

(Taiwan)
돌아간다.

타이완 일지






2020.07.28


노랗게 쨍쨍거리며 세상 제일 잘난 듯 뿜어대는 빛의 시간이 싫다.

두더지, 곰팡이 같은 마음으로, 되도록 그 빛의 시간들을 피해 긴 일정을 짜서 도망 다녔다.

그럼에도 뜻하지 않게 땀의 나라, 지진의 나라,  UV의 나라에서 거의 반년의 시간을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처럼,

현지인이 아닌 이방인처럼,

여행자도 아니고, 현지인도 아닌 애매모호한 이방인으로,

호기심이 사라진 권태한 타인으로

반년의 여름을 지내고 있다.


한국에 돌아갈 집이 없어 돌아가지 못함인데

마치 도피인 양 누적된 타지에서의 삶.

누군가 말했듯 코로나 난민으로의 삶.


이토록 어느 상황에도 돌아갈 수 있는  내 소유의 방 한 칸,

이토록 한국으로의 회귀를 희망한 때가 있었던가.

어느 땅덩어리에서 살던 상관없고, 연어 같은 똑똑한 회귀 본능이 없지만

자의로서가 아닌,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타의에 의해  무방비 상태로 둥둥 떠다니는 건 

없던 본능을 깨웠다.

전에 없던 포기, 무기력, 그리고 그에 반해  '집'에 대한 소유욕이 싹튼 시간이다.


많은 질문과 답변, 오랜 기다림,  또 변하게 될지 모르지만

8월 18일 한국행 항공권을 예매했다.


5월 중순에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일상을 맞겠다는 계획은 2월 대만으로 올 때부터 찢어져

전례 없던, 무비자 90일에, 30일 연장, 30 연장, 30일 연장. 을 채우고.

다시 또 연장되어 더 오래 머물 수 있지만

나는 된장, 청양고추, 깻잎, 쑥갓이 꿈에 나올 듯 고프고, 

흰머리가 더 많아지고, 까맣게 익고,  무릎이 더 시려진 우리는,  돈이 없다.

하하하.

한국으로 돌아가 단칸방 단기로 잠시 머물려던 돈마저 

이곳의 사악한 물가에 쏟아버렸으니.


돈은 돌아가면 어찌 되겠지.

둘이 쭈그려 먹고, 잘 방은 어찌 구할 수 있겠지.


몇 달째 되는, 오늘도 발효 중인 폭염경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맞은편 회색 빌딩에 매일 널려있는 남의 빨래.

오늘도 집 안에서 몇 걸음 걷게 될 퉁퉁 부은 다리.


매일 오락가락하는 불안정한 마음과 생각 속에

더한 타의에 의해 고통받은, 너무나도 많은 존재들이 중심을 잡게 한다.

고통받는 존재가 없기를, 모든 존재가 행복하길 바라며

지금이, 이 시간이,  얼마나 여전히 가진 게 많고, 평온한 삶인지 알게 한다.


어느 땅에서 살던 숨은 이어지고,

창가에 비둘기가 찾아올 것이고,

하늘이 보이지 않아도 바람이 놀러 올 것이고,

땀을 주룩주룩 쏟으며 현미밥을 지어먹을 것이고,

요즘 매일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

돌아가 격리할 때 맥주는 어떻게 먹나. 에 대한 생각,

더 바빠진 머릿속의 온갖 생각들과 뒹굴 것이다.


단지 지금의 나는 돈이 없을 뿐

태평한 한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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