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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Nov 08. 2020

엄마의 선택

엄마 이야기 8

7월의 뜨겁던 여름날, 병원 정기검진차 방문했을 때 엄마의 암이 재발된 걸 알게 되었다. 의사는 빨리 수술할수록 좋다며 이틀 후 수술 날짜를 잡아 주었다. 입원해서 수술을 준비하며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엄마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4시간이 걸린다던 수술은 6시간이 되고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나와 남편은 불안했다. 긴 수술이 끝나고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다는 말을 듣자 긴장이 풀렸다. 엄마는 회복되는 동안 무척 힘들어했다. 그래도 수술이 잘 되었으니 힘든 과정이 다 끝난 줄 알았다. 퇴원하기 전 의사는 보호자를 불렀다. 제일 재발하기 쉬운 암이 구강암이라고 방사선 치료를 해서 재발하지 못하게 예방을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세상의 근심 걱정을 모두 짊어진 표정으로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의사는 치료했을 때 좋은 점도 이야기했지만,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상세 히 해줬다. 엄마는 잔뜩 겁을 먹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하면 안 되나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의사는 방법이 있는데 왜 포기하느냐 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부작용도 있겠지만 모두가 일반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고비만 넘기면 아주 잘했다는 생각 이 들 거라며 방사선 치료를 적극적으로 권했다. 엄마와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적극적으로 엄마에게 방사선 치료하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 10년 전 난소암 수술, 5년간의 항암치료, 그리고 임상실험으로 항암약 복용을 또 5년.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이제 괜찮아졌나 했는데 혀에 생긴 설암에 이어 다시 재발한 같은 종류의 구강암이라니. 10년 동안의 투병 생활로 너무 지치고 힘든 엄마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는 그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 힘들면 안 받아도 돼.’ 이 말을 너무나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을 나중에 후회할까 봐 꾹꾹 눌러 참고 참았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언젠가는 죽을 건데 내가 그 고생을 또 해?"
"다시 재발하면 그땐 엄마가 정말 힘들어져. 수술하기 힘들 수도 있고."
"그냥 죽어야지 뭐."
"엄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나도 힘들고 너도 고생스럽고. 왜 병원만 오면 다시 살려내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모습을 뒤로한 채 병실을 나와 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엄마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엄마가 그런 나를 보면 더 약해질 것만 같아서. 엄마의 선택은 퇴원 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방사선 치료 예 약은 이미 잡혀있고 우리는 빨리 결정을 해야만 했다. 엄마의 정기검진 때문에 서울 아산병원에 간 날, 오빠를 만났다. 오빠는 나와 남편에게 커피 마시고 오라며 잠깐 자리를 비워 달라 했다. 20분 후 엄마와 오빠가 있는 곳으로 갔다. 

어떻게 얘기 좀 했어? 결론은 났어?

엄마의 표정은 조금 가벼워 보였고 헛웃음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고생 한 번 더 하지 뭐. 나 죽었다 생각하고 치 료 받아볼게.


뜻밖의 말이었다. 오빠가 어떤 말로 엄마의 마음을 돌렸는지 궁금해졌다. 다음 날 나는 엄마와 단둘이 있을 때 궁금했던 것을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 오빠가 뭐라고 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어?” 
“옛날에 엄마 항암치료받을 때 오빠가 서울에서 증평까지 왔다 갔다 하며 고생했을 때 이야기했어.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낫지 않냐고. 엄마가 몇 번이나 쓰러지고 입원하고 울면서 치료받았지. 그 기억도 이제는 가물가물한데 오빠가 다시 생각나게 하더라. 그땐 오빠도 고생 많았거든.” 


‘오빠도 그때 나처럼 힘들고 피곤했겠구나.’ 


평소에 말을 아끼는 오빠인지라 내색을 안 하니 내가 몰랐던 일들도 많았다. 자식이 부모가 아플 때 보살피는 건 당연한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식이 아프면 가슴 아파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 부모가 아프면 짐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마음이 먹먹 해지는 현실이지만 때로는 나도 지치고 내 몸이 아파서 조금이라도 친정과 떨어져 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내 옆으로 오라고 부모님을 설득할 때는 언제고 말이다. 


오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갔던 한길문고. 문태준 시인과의 만남은 더없이 따뜻했다. 그의 시는 쓸쓸한 내 마음에 위안을 주었다. 엊그제 샀던  산문집에 사인을 받았다. 출판사에서 나오신 분이 선물로 주신 멋진 메모장에 사인을 하나 더 받으며 ‘엄마 힘내세요’라고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 가을이에요. 기운 내시고 회복되세요


 나는 단지 ‘힘내세요!’ 한 문장만 부탁했을 뿐인데 마치 상황을 다 알고 있듯이 적어 준 글을 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문태준 시인이 전하는 메시지가 현실이 되어 엄마가 꼭 회복될 것만 같다. 아픈 엄마라도 내 옆에 있는 것이 행복하다. 만약에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없다면 서럽고 힘들 때 기댈 곳도 하소연할 곳도 없으니 얼마나 허전하고 슬플까?


엄마, 이제 가을이야. 더운 여름날 수술까지 하고 고생 많았어.
함께 고생했던 자식이 부탁하니 힘들어도 한 번 더 힘을 내보자고 결심한
엄마가 참 고맙고 대단해 보여. 함께 도전해 보는 거야. 힘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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