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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Dec 19. 2020

누구도 코로나의 예외가 될 수 없다

<두 달만에 만나 딸과 손도 못 잡고 밥도 같이 못 먹은 사연>

세상이 혼란스럽고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어느새 우리의 소원은 '제발 이제 더 이상 확진자가 늘어나기 않기를'이 되어 버렸다. 사람은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가장 불안해한다. 나 역시 사람이기에 불안한 감정은 있지만 코로나에 대한 걱정을 잊고 일상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불안해하면 할수록 자꾸 움츠러들고 마음이 우울해져 마음의 병이 생긴다. 오죽하면 '코로나 블루' 혹은 '코로나 레드'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을까? 경제가 무너지고 살기 힘들어져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점심을 먹고 걷기 위해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울리는 집 전화 벨소리가 달갑지 않았다. 집 전화로 오는 건 대부분 여론조사나 사기 전화니까.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여기는 충남 산업인력공단입니다."

 '아! 이제 충남이야? 이건 또 무슨 사기 전화?' 


그런데 전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딸의 이름.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없는데 왜 그러시는 거죠?"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난 O일 OOO시험을 본 시험장인데 오늘 확진자가 나와서 학생과 통화해야 해서요."
 "네? 확진자요? 어... 잠깐만..."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여러 가지 딸의 말들. 그날 분명히 시험 보고 나왔다고 했으니 사기는 아닌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본인과 통화해야 한다고 말해서 일단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 주었다. 혹시 전화받고 놀랄 딸을 생각해서 카톡을 남겨 놓았다.

'시험장에서 확진자 나왔다는 전화받았지? 너무 놀라지 말고 전화 끊으면 엄마한테 바로 전화해. 알았지?'

3분쯤 후 걸려 온 전화에서 딸은 울고 싶다고 했다.

"자, 마음 가라앉히고, 거기서 뭐라고 해?"
 "밀접 접촉자는 보건소에서 연락이 가는데 혹시 전화받았냐고. 안 받았다고 하니까 보건소에 전화해서 확인해보고 검사해야 한다고 하면 하라고."
 "그럼, 일단 보건소에 전화를 해보고 나서 통화 다시 하자."

딸의 전화를 기다리며 초조함을 숨길 수 없었다. 핸드폰이 언제 울리나 싶어 째려보고 있을 때 벨이 울렸다.

"밀접 접촉자는 보건소에서 연락이 갔다고. 연락이 안 간 사람은 해당이 안 되는데 혹시 하고 싶으면 개인 부담으로 16만 원 주고 하래. 근데 너무 비싼 거 아냐?"


코로나는 누구나 예외일 수 없다

'코로나가 현실이구나. 내 가족에게도 이런 일이.'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럽고 멀리 떨어져 사는 어린 딸이 걱정되었다. 보건소에서는 밀접 접촉자의 기준이 있는데 멀리 떨어져 앉아서 검사 대상자가 아니라고 하고 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불안하면 검사받아 볼래?"
 "16만 원 주고? 너무 비싸."

딸은 스스로 자가 격리해야겠다고 말했다. 아무 데도 못 가고 2주 동안 집에 있을 딸이 걱정됐다. 그 답답함을 혼자서 견뎌야 하는 딸이 걱정되어, 나는 딸이 사는 지역의 보건소로 다시 전화해서 문의를 했다. 같은 답을 들었다. 순간 지금은 군산의 상황이 더 심각하니, 이곳에서 검사를 받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군산시 보건소로 전화해서 상황을 말하니, 직원은 아주 쿨하게 답했다. 그 목소리가 무척 반가웠다. 

"그럼, 오세요. 군산은 한시적으로 증상이 없어도 다 해 드리고 있어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나는 딸에게 내일 아빠랑 같이 데리러 간다고 카톡을 남겼다. 다음날 우리 부부는 예정대로 딸아이를 데리러 천안에 갔다. 딸은 집에서 밥을 먹고 가겠다고 했다. 차에서도 마스크 잘 쓰고 가자고 당부했다. 그렇게 말하는 딸이 나보다 더 어른스러웠다.

"그래, 그럼 밥 잘 챙겨서 먹고 준비하고 기다려. 그리고 아무 일 없을 테니 너무 걱정 말고. 알았지?"
 "그럼! 걱정 안 해. 그냥 뭔가 찝찝하니 검사를 받아야 일상생활을 할 거 같아서 그래. 그렇다고 무작정 집에 박혀 있기도 답답하고. 그래도 군산에서 그냥 해준다니 다행이다. 16만 원이 누구 애 이름이야?"

이렇게 말하며 웃는 딸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깟 16만 원이 뭐가 아까워? 당장 검사받아!' 


사실 이 말이 목구멍까지 나올뻔했다. 전화받고 혼자서 고민했을 딸이 안쓰럽고 이렇게 어른이 되어 갈 딸을 생각하니 그저 먹먹해졌다. 어른이 되면 더 힘든 일도 많고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질 텐데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고 성장할지 마음이 아려왔다. 이게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나를 이런 마음으로 지켜보며 키우셨겠구나.' 


딸을 데리고 내려오는 동안 불안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애써 밝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했다. 군산에 오자마자 검사를 했고 딸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비어있는 친정집에서 자가격리를 했다. 거의 두 달 만에 만난 딸을 혼자 있으라고 빈집에 놔두고 나오는데 눈물이 나왔다.

'당연히 음성으로 나오겠지.'

하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다행히 다음날 예상 시간보다 결과가 빨리 나왔다. 보건소에서 음성이라는 문자를 받고 바로 부모에게 카톡으로 보내 준 딸.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혼자 마음고생했을 딸을 위해 냉장고에 있는 모든 재료를 꺼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딸은 늦은 아침을 먹으며 밥이 부족하다며 더 달라고 했다. 딸이 두 공기를 먹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긴장이 풀리며 허기가 밀려온 걸까? 잘 먹는 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흐뭇함과 애틋함이 뒤섞인 묘한 감정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힘들고 혼란스러운 2020년, 코로나가 빨리 끝나기를

 올 초 갑자기 번지기 시작한 '코로나 19'라는 낯선 전염병은 우리를 불안감에 떨게 만들었다. 사람을 경계하고 회피하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가족끼리 마음껏 안아주지 못하고 밥도 같이 먹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뉴스를 볼 때마다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화면을 통해 보이는 어떤 소식들은 때로는 애틋했고, 때로는 한없이 감사했고, 때로는 가슴 벅차게 감동스러웠다. 딸의 일을 겪으며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한번 더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서로가 지치지 않게 응원해 주고, 다독여줘야 한다. 우리에겐 더 큰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래에는 2020년을 생각하며 지금의 아이들이 이렇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시절 우리는 정말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던 소중한 경험이었어. 일상의 소중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아주 간절히 느끼며 살았거든. 결국 그 전염병은 인간이 만든 재앙이었어. 그 시절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변하지 않았을 거야. '코로나 19'는 인간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던 의미 있는 사건이었어."

이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대가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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