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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Oct 29. 2020

이모의 짝사랑

엄마 이야기 5

                                                                   

2019년 3월, 다시 엄마에게 암 판정이 내려졌다. 10년 전, 엄마는 난소암이었다. 이번엔 설암이라고 했다. 흔하지도 않은 암이고 전이된 것도 아니라니 더욱 황당했다. 그래도 다행히 검사 결과가 초기로 나와 간단한 수술이 될 거 같다고 했다. 엄마의 수술은 잘 되었고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11살 나이 차이 나는 82세의 아빠는 기력이 없어 늘 주무시기만 했는데, 엄마가 오니 다시 엄마의 전문 비서가 되어 엄마 곁을 지켰다. 그런 아빠가 안쓰럽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기에 가끔은 일부러 그 자리를 내어 준다.      


엄마의 안부가 궁금한 큰 이모는 오늘도 역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이모는 집에 먹을 것이 많다며 갖다 주고 싶은데 이모가 허리가 아프다며 집으로 와서 같이 밥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의 이야기를 나를 통해 듣고 싶어 하는 이모의 마음을 알기에 망설임 없이 바로 갔다. 마침 남편이 쉬는 날이라 이모는 함께 오라고 했다. 갖가지 봄나물이며 각종 전과 알록달록 먹음직스러운 잡채가 한 상 가득 차려진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찰밥까지 있으니 배가 고팠던 내 뱃속은 기쁨의 탄성을 지르는 듯 꼬르륵 소리가 요란해졌다. 일주일 동안 병원에서 사 먹는 밥, 집에서 배달시켜 먹는 음식에 질렸는데 내게는 진수성찬이었다. 입에 들어 간 음식들의 맛은 사르르 녹는 꿀과도 같았다. 밥을 다 먹고 차를 마실 때 이모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와서 들어보라며 읽기 시작했다.     



 

2016년 7월 20일 아침 5시


사랑하는 막내야! 

충청도에서 5월 25일 군산 참사랑병원으로 왔을 때 참 기가 막혔다. 험난한 세상 헤쳐나가며 참 고생 많이 했지? 남들은 몰라도 이 언니는 잘 안다. 


형제가 그렇게 많아도 이 언니는 우리 착한 막내를 유난히 예뻐하고 사랑했단다. 어릴 적,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 세상 잘 살 줄 알았는데 암이라는 선고를 받고 이 언니는 억장이 무너졌단다. 천사 같은 우리 막내는 머리도 똑똑하고 겸손하고 남들한테 참 잘했는데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하나님, 성모님, 우리 막내 다시 건강을 되찾게 도와주세요. 누군가를 미워했던 마음이 죄가 된다면 제가 다 지우고 비우겠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제발...... 

한국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너에게 갔다. 아파서 잘 먹지도 못하고 기운이 없어 혼자는 걷지도 못하는 너를 조금이나마 보살펴주고 싶었다.  너는 내 동생이지만 내 딸 같다. 내가 너를 업어 키웠잖아. 금련이는 내 친딸들보다 더 이쁘고 정이 간다. 엄마한테 하는 걸 보고 너무 감동했다. 내 딸들은 그렇게 못 할 거야. 금련이와 윤서방이 너무 고맙다. 우리 막내가 살면서 인복이 많더니 자식 복도 있구나. 남수 엄마 같은 친구를 곁에 둔 걸 보면 우리 막내는 인생을 헛되지 않게 살았구나. 세상에 그런 친구가 어디에 있을까?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끔찍하더라. 이 언니는 감히 따라갈 수도 없을 정도로 지극 정성이더라. 참 고마운 사람이다. 은혜를 갚을 길이 있다면 좋겠다.      

이제 건강만 되찾기를 이 언니는 기도한다. 이 언니가 늙고 기운이 빠져서 많이 못 도와주니 금련이에게 미안하고 너에게 미안하다. 우리 막내는 내 딸 같으니 혹시 너에게 줄 수 있는 게 있었으면 다 주고 싶구나. 그게 내 심장이라도... 이 언니의 마음이 그렇다.


-막내 생각하며 마음이 너무 아픈 날 아침에 큰 언니가-    



이모는 가난한 시절, 외할아버지한테 구박받으며 일만 하고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다. 이모는 많이 배운 엄마를 시기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엄마가 이 악물고 공부했던 노력을 알아주었고 머리가 좋아서 그런 것이라고 인정해 주었다. 이모와 엄마의 나이는 10살 터울이다. 어릴 적에 강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엄마를 수영을 잘하던 이모가 구해줘서 살았다고 했다. 또, 내가 5살 때 연탄가스로 우리 식구 모두 죽기 일보 직전에 외갓집 식구들이 달려왔는데 엄마를 살린 사람이 이모였다고 한다. 이모는 엄마의 생명의 은인이지만 두 사람은 성격이 180도 다르다. 엄마는 온순하고 말이 적고 차분하고 책 보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정적인 사람이다. 반면 이모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야기하고 음식을 해서 나누어 먹으며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동적인 사람이다. 이모가 엄마를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이 큰 반면에 엄마는 이모가 언니라서 늘 챙기기는 하지만, 이모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신과 너무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이모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 눈치다.     


<친정집에서 내가 찍어 준 큰 이모 사진>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잖아. 엄마는 이모에게 
딸 같은 동생이니 이모는 엄마에게 무조건적일 수 있는 거야.   

어린 시절 수다스럽고 극성스러운 이모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팔십 넘은 이모가 내 하소연을 들어주는 제일 좋은 친구다. 누구보다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친구이자 조언자이다. 


'배움이 짧으면 어떠랴. 우리 이모는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인 것을......'


 이모의 여동생 중 막내인 엄마. 

막내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유독 깊다. 엄마는 이제 늙고 아파서 아이 같다. 이모랑 있으면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 보인다. 나랑 있을 때 없던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딸은 딸이고 언니는 언니인가 보다. 이모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짝사랑이면 어떠랴. 그래서 더 애 닮고 아름다운 이모의 짝사랑.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 편지를 쓰듯 글을 쓰는 이모가 대단하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한 이모의 노트. 이모한테 나중에 이 노트는 꼭 나를 주라고 부탁했다. 그때 또 쓸 이야기들이 가득할 것을 알기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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