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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Oct 28. 2020

아프면 예민해지는 것은 당연한데...

엄마 이야기 4

화장실 자주 갈 텐데 걱정이네.


병원에 가려고 준비하던 엄마는 또 근심이 가득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수술과 항암치료로 모든 순환이 안되서인지 아니면 심리적인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화장실에 자주 가고 싶다고 한다. 휠체어로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엄마는 부탁하는 사람에게 미안해한다. 그래도 제일 편한 사람이 딸이니 내가 병원에 따라갈 때면 안심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병원에 함께 갈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 수업 시간을 변경할 수 없어 남편 혼자 엄마를 모시고 원광대학병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내가 간호사한테 부탁하라고 했어.
걱정 마, 엄마.

다행히 불편하지 않게 일처리를 빠르고 깔끔하게 하는 남편 덕에 엄마는 편안히 치료를 받고 집에 귀가했다.

남편 혼자 병원에 다녀온 날은 엄마 입에서 남편 칭찬이 줄줄이 나온다. 남편이니 내가 기가 살지 만약에 친오빠가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가고 엄마가 줄줄이 칭찬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몹시 서운하고 귀가 따갑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심리인지 모르겠다. 힘든 만큼 엄마가 내 공을 더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일까? 

엄마가 내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 와서 이웃이 된 순간부터 남편이 대신 아들 역할을 해주고 있다. 고맙고 참 다행이다.




몸이 아프다 보니 엄마는 예민하다. 엄마가 약에 너무 집착하는 모습을 보았다. 밥을 먹기도 전부터 약을 꺼내 개수를 세고 있다. 


항암약, 부정맥 약, 내과 약, 이건 유산균이랬지?
이건 비타민D, 또 이건...... 뭐더라?

밥도 먹지 않고 약부터 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다. 


'밥이나 먹고 하지. 아직 약 먹으려면 멀었는데. 나한테 그냥 챙겨달라고 하고 밥부터 먹지 왜 저럴까?' 


답답함에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약에 집착하는 모습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답답함이 느껴져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한숨 소리가 들려서인지 엄마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은 약을 다시 향하며 '하나, 둘, 셋......'


엄마, 내가 챙겨줄 테니까 빨리 밥부터 드셔.
이렇게 약부터 신경 쓰고 하니깐 입맛이 더 없는 거야.


엄마는 순한 사람이다. 하지만 병마와 싸우는 세월이 이제 10년이 넘다 보니 없던 짜증도 내고 아프다며 입을 다물고 말도 안 할 때가 종종 있다. 내 몸이 지치고 힘든 날은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안 그래도 힘든데 엄마가 말도 안 하고 이불을 목까지 덮고 얼굴만 내밀고 힘없이 누워있을 때면 우울해진다. 엄마를 걱정하며 이마라도 짚어주며 말을 거는 날은 내가 컨디션이 좋고 마음 상태가 맑은 날이다. 힘든 날도 그렇게 할 때가 있지만 백 프로 진심은 아니다. 형식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지나치기엔 엄마가 서운해 할 수 있겠다 싶어서 겨우 흉내만 낸다. 나도 사람인지라 늘 좋게 대할 수만은 없다. 엄마에게 미안하다. 내가 지쳐서 많이 웃어주지 못하니 미안하다. 용기를 북돋아주고 많이 안아주고 많이 웃게 해 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벌써 4년이 넘었구나.
엄마가 군산으로 이사온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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