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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Oct 28. 2020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엄마 이야기 3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진이 너무 많아 폴더를 만들어 이름을 적고 오늘 하루 이것만 정리하다가 시간이 다 가버릴 것 같아서 끔찍했다. 대학생이 된 딸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노래 부르며 춤추던 동영상도 있었고 친구들과 찜질방에 가서 찍은 사진들도 있고 추억이 새록새록 돋았다. 


이건 무슨 사진이지?


수많은 사진 파일 앞에는 운보미술관 1,2,3..... '운보 미술관? 이게 어디지?' 사진 파일을 더블 클릭했다. 딸아이 일곱 살 때 사진이 나왔다. 어렴풋이 기억났다.  친정이 충북 증평에 살 때 그 근처에 있던 '운보 미술관'이었다. 그때 친정 부모님과 나들이 갔던 기억이 났다. 여기 어디쯤 엄마 젊었을 때, 그러니까 아프기 전 사진이 있겠구나 싶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음 사진 파일을 더블 클릭!




화사하게 웃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 옆에 딸아이가 있었고 그 옆에 내가 서 있었다. 3대에 걸친 닮은꼴이 햇살을 받으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련해졌다.

그립고 그리운 건강했던 시절의 엄마
나의 엄마!
인정 많은 김인순 선생님
보고 싶어요.




       < 달리기 시합하는 친정엄마와 딸>

<2006년 운보미술관에서 친정엄마와 딸과 함께>


다음 사진에서는 엄마와 딸이 달리기 시합을 하는 듯 열심히 달리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엄마가 달리고 있다니 이럴 때가 분명 있었는데 언제인지 너무 먼 옛날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휠체어를 타지 않고는 거동을 할 수가 없다.양쪽에서 누군가 부축을 해줘야 차에 겨우 탈 수 있을 정도로 쇠약하다.  화장실에 갈 때도 다리가 후들거려 항상 옆에서 누군가 잡아주거나 지켜보아야 한다. 


병원에 가서 화장실을 자주 찾는 엄마가 어느 땐 귀찮을 때도 있다. 어린아이와 같다. 자주 화장실을 가겠다고 보채는 아이에게 힘든 엄마는 짜증이 날 수 있다. 엄마가 때론 나에게 그랬다. 몸이 지치고 힘들 땐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자꾸 뭔가를 요구하고 해줘야 하니 지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꾹 참고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주려 애쓰고 있다. 사진 속에서 너무 신나게 달리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은 낯설었고 한없는 그리움이었다. 이어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아픈 엄마를 귀찮아하던 내 모습이 생각나 미안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가 너무 가엽다. 엄마도 얼마나 걷고 싶을까? 얼마나 하고 싶은 것이 많을까?

    


암 판정받고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하고 임상 실험대상자로 항암약을 복용하며 부작용도 있었다. 다 이겨냈는데 또 다른 암이 찾아와서 엄마를 괴롭혔다. 엄마는 힘든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재발을 막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서른 번이나 했다. 엄마는 몸서리를 치며 다시는 못하겠다고 했다. 서른 번의 방사선 치료를 마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엄마에게 용기 내서 해보자고 힘내라고 말하면서도 너무 잔인한 건 아닌지 자꾸 의문이 들었다. 너무나 아파하는 엄마 옆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늘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다. 오롯이 고통은 엄마의 몫이었다.


재가복지센터에서 복지사가 와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더니 진심이 담긴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진짜 대단하세요. 어떻게 서른 번을 참으셨는지 정말 존경스러워요. 
포기하고 싶으셨을 텐데 어머님은 정말 인간 승리세요. 정말 고생 많으셨지요?

엄마는 누군가 당신의 심정을 알아주고 위로해주니 좋았는지 얼굴이 이뻐졌다고 복지사를 기분 좋게 칭찬해 주었다. 복지사도 환하게 웃으며 '우리 어머님이 더 곱다'며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치료 받을 때 죽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며 응석을 부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복지사는 온화하고도 안쓰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여 주며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집안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오늘 같은 날은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날이다. 


오늘 갑자기 발견한 엄마의 사진을 보며 추억 속에 한없이 젖어본다. 그리운 엄마를 오늘 밤 꿈에서 만날 것만 같다. 힘들 때면 가끔씩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추억에 잠기는 것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그리움을 참지 말고 더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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