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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Oct 28. 2020

엄마의 초상화

엄마 이야기 2

유지연 작가의 그림책 '엄마의 초상화'를 보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어쩜 우리 엄마의 모습과 이리도 닮았을까? 새하얀 피부에 모자를 쓴 단아한 모습. 현실 속 미영 씨의 지치고 초라한 모습은 투병하느라 지쳐서 침대에만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 같았고 상상 속의 미영 씨는 건강을 되찾았을 때 해맑게 웃는 엄마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억척스럽게 공부만 하다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엄마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착하게 살았다. 주위에서 순하고 인성이 좋다고 칭찬이 자자했으나 엄마는 언제나 겸손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교장실, 교무실 책상을 깨끗하게 닦아놓는 우렁각시는 바로 엄마였다. 왜 엄마만 하느냐고 어린 나는 불만스럽게 말했던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하는 말은 언제나 같았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나는 그런 엄마가 답답했다.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나? 엄마는 어디를 가도 늘 소리 없이 일했다. 삼촌과 아빠의 잘못으로 빚더미에 쫄딱 망한 우리 집은 시골 할머니네로 들어가 살았던 적이 있다. 5년을 그렇게 살았다. 엄마는 옛날식 부엌에서 소리 없이 밥하고 설거지하고 쉬지 않고 일했다. 엄마의 잘못도 아닌데 제일 고생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철이 없던 나는 그런 엄마를 안쓰러워하며 도와주지는 못하고 늘 불만이 많았다. 대학에 다니던 나는 자취를 했는데 주말에 집에 그립고 엄마가 보고 싶어 갔지만 집안 풍경은 늘 지루했고 답답했다. 숨이 막혀버릴 것 같았다. 내방도 없이 할머니와 방을 함께 썼다. 할머니의 혼잣말이 나는 듣기 싫었다. 아빠 흉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늘 들릴 듯 말 듯 구시렁대는 소리가 지겨워서 나는 그때 다짐했다.


이 지겨운 집을 빨리 떠나 독립해야지!


삼촌이 사업한다고 엄마 돈을 썼고 결국 엄마의 월급까지 차압당하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까지 갔던 우리 집. 내 인생의 가장 어둡고 암울했던 시기이다.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어떻게 참았을까? 나라면 억울해서 못 살았을 텐데 엄마는 묵묵히 참고 살며 이겨냈다. 아마도 자식들 생각에 더 참고 참았을 것이다. 그런 엄마가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때의 심정은 또 오죽했을깨? 나는 엄마가 정년퇴직하고 시간이 많이 생기니 엄마와 여행 다니며 그동안 못했던 일들도 해보고 추억을 많이 만들어봐야겠다고 꿈꾸고 있었다. 



그런 엄마가 지금은 휠체어를 타고 있으며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엄마의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한없이 측은하다. 그러다가 어떤 날은 노력하지 않고 누워만 있는 엄마가 답답해서 미워질 때가 있다. 엄마와 옆에 사는 자식은 나니깐 언제나 엄마를 보살피는 일은 나의 몫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친정이 내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아빠의 상태까지 안 좋아졌다. 


아빠는 초기라지만 치매로 판정을 받았다. 어느 땐 너무 멀쩡한 모습이고 어느 땐 너무 엉뚱한 행동을 한다. 부모님이 다 아프시니 내가 버거울 때가 많다. 너무 힘들 때면 나는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이 길고 긴 여정이 언제 끝날까요? 앞이 보이지 않아서 답답해요.


그런 생각이 드는 날에는 언제나 그만큼의 죄책감이 든다. 엄마는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며 참았는데 늙고 아프고 내가 힘들다고 외면하고 싶어 하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어디 있나. 나쁜 생각이 들었던 나 자신이 미워지고 형편없다는 생각마저 들고 힘들다. 엄마는 늘 딱딱한 말투에 전형적인 교사 스타일이었다. 학창 시절 집으로 전화를 건 친구들은 내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다 겁을 먹었다. 부모님이 화나셨냐고 묻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런 부모님과 너무 조용한 집안이 재미없었고 싫었다. 아이러니하게 친구들은 부모님이 모두 교사니 좋겠다며 나를 부러워했다.


그림책 속 미영 씨처럼 엄마 안에도 상상치도 못한 또 다른 인순 씨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상이 늘 똑같고 지루해 보여도 어쩌면 엄마도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보이는 모습은 다 다르니 말이다. 엄마와 단 한 번이라도 손잡고 걷고 싶다. 단 한 번이라도 예쁜 카페에 가서 차도 마시고 사진도 찍고 싶다. 단 한 번이라도 여행 가서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싶고 아주 재미있게 놀다 오고 싶다.


내가 엄마의 초상화를 그린다면 상상 속의 멋진 인순 씨를 만들어 줄 것이다. 엄마가 보고 만족해하며 웃을 수 있는 엄마의 초상화를 꼭 한번 그려서 엄마에게 선물해 주고 싶다. 엄마와 이별하기 전에 꼭 선물하고 싶은 세 가지 중 하나다. 나머지 두 가지는 엄마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와 그림책이다. 


엄마! 그때까지 꼭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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