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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Oct 28. 2020

오! 괜찮은데?

엄마 이야기 1

나는 5년 전 그림책 놀이를 배우면서 다양한 그림책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성인도서보다 그림책을 더 자주 본다. 그림책으로 아이들과 수업만 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엄마들을 위한 힐링 그림책 놀이터' 수업을 하게 되었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들에게 읽어주고 함께 느끼며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엄마 이야기를 주제로 한 책을 모아 어린이 수업도 하고 성인 수업도 해 보았다. 아이들은 엄마 이야기가 나오면 두 종류로 나뉜다. 엄마는 못하는 것이 없고 너무 착한 사람이라며 '만능 엄마'를 칭찬하는 아이들이 있고, 엄마가 했던 싫었던 행동을 고자질하며 '잔소리 엄마'를 흉내 내는 아이들이 있다. 나는 늘 아이들의 편에 서서 공감을 해주고 속상했겠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꼭 이 말을 빼놓지 않고 한다. 


"엄마는 너희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야. 엄마도 사람인데 화도 나고 속상할 때가 왜 없겠어? 그리고 잔소리하는 것은 다 너희들 잘 되라고 바른 길을 가르쳐주느라 그러시는 거야. 세상 모든 엄마는 자식을 사랑한단다."


성인 수업을 할 때 친정엄마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릴 때는 몰랐던 엄마의 마음을 자식을 키우며 깨닫게 된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보다 더 철이 빨리 들고 성숙해지는 것이다. 책을 보며 엄마를 떠올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자주 수업을 하는 김경희 작가의 유쾌한 그림책 <괜찮아, 아저씨>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표지에 있는 아저씨의 표정만 봐도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림책이다. 머리카락이 열 가닥뿐인 괜찮아 아저씨. 머리카락이 빠져도 슬퍼하거나 화를 내는 법이 없다. 남은 머리카락으로 늘 새로운 머리 스타일을 연출하는 아저씨. 거울을 보며 늘 이렇게 말한다.


오! 괜찮은데?




초긍정 마인드 괜찮아 아저씨는 마지막 머리카락이 빠졌을 때도 활짝 웃었다. 남은 머리카락으로 새로운 머리 스타일을 만들어 거울을 보며 늘 "오, 괜찮은데?"를 외치며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웃고 있다. 나는 이 그림책을 보며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10년 전 난소암 수술을 했다. 그 후 항암치료를 하며 부작용으로 머리도 빠지고 구토도 하고 열도 나고 쓰러진 적도 많다. 그 힘든 고비를 넘기고 이제 좀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3년 전 다리에 힘이 풀려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부러졌다. 고관절 수술이 엄마에게는 위험한 수술이라 그냥 움직이지 않고 부러진 뼈가 붙기만을 기다렸다. 한 달 정도 있으니 다행히 붙기는 했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진 엄마는 걸을 수 없었다. 그 전에도 다리에 힘이 없었는데 이제는 휠체어 없이는 집안에서도 움직이기 힘들다. 화장실에 갈 때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시련은 엄마에게만 다가오는 것처럼 작년 봄에는 설암 진단을 받았고 그 후로 또 재발되어 방사선 치료를 서른 번이나 했다. 그 힘든 과정을 엄마를 이 악물고 참아냈다. 눈물 나도록 안쓰럽고 가여운 엄마.


나는 집에만 있는 엄마에게 자주 책을 빌려다 준다. 엄마는 무거운 책은 누워서 보기 힘들다며 시집을 한 권 사다 달라고 했다. 나는 한길문고로 달려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김소월 시집을 사서 침대 옆에 놓아줬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도 보여주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빌린 <괜찮아, 아저씨>를 엄마에게 보여줬다. 엄마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웃었다. 


이 책 보니까 나 머리 다 빠졌을 때가 생각나네.


 나는 긍정적이고 귀여운 아저씨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데 엄마가 마음이 안 좋은 건 아닌지 신경이 쓰여 미안해졌다. 나는 엄마 손을 살포시 잡았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머리카락이 빠진 엄마는 밖에 나가는 것을 꺼려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엄마는 밖에서 학부형들과 마 주치는 걸 특히 힘들어했다. 내가 엄마 입장이었어도 밖에 나가기 싫었을 텐데 그때는 집에만 있으려는 엄마가 답답해 보여서 예쁜 모자 쓰고 밖에 나가자고 졸랐다. 아빠는 엄마에게 비싸고 예쁜 가발을 사다 주었다. 처음에는 잘 쓰고 다녔는데 갈수록 엄마의 몸이 힘들어지니 가발을 쓰고 꾸미는 일이 버거워졌던 것이다. 엄마는 이제 가발을 쓰고 단장할 힘도 여유도 없다. 이제 가발은 마네킹이 쓰고 있고 보자기로 덮여 화장대 위에서 쓸쓸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갈 때라도 나들이한다 생각하고 화사한 옷을 입혀주고 싶었는데 엄마는 할머니들이 입는 편한 몸배바지가 제일 편하다고 가장 편한 옷만 찾았다. 한때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선생님이었는데 이제는 예쁜 옷을 입지 못하는 엄마에게 옷 대신 모자를 자주 선물해드렸다. 며칠 전, 아산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들린 휴게소에서도 모자만 눈에 들어왔다. 


“엄마, 모자 한 번 써 볼까?” 


챙이 넓고 뒤에 커다란 리본이 달린 연갈색 모자를 엄마 머리 위에 씌워주고 거울을 보여줬다. 두상이 작은 엄마는 언제나 모자가 참 잘 어울렸다.

“챙도 넓고 시원하고 가벼워서 좋네.” 

“그래? 색도 너무 예뻐. 그럼 이걸로 낙찰!” 


계산하고 뒤돌아봤을 때 엄마는 계속 거울을 보고 있었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희미하게 웃는 엄마. 

마음에 드는지 연신 미소를 짓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도 좋았다. 아저씨가 화관을 머리에 썼을 때의 표정이 엄마의 표정과 오버랩되어 기분이 묘해졌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도 멋진 머리 스타일을 연출하며 “오! 괜찮은데?”라고 외치는 초긍정 마인드 괜찮아 아저씨와 닮은 우리 엄마. 나는 모자를 쓴 엄마를 보고 말했다. 


“엄마, 오! 괜찮은데?” 


엄마가 오랜만에 깔깔깔 웃었다. 



이 그림책은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웃을 수 있게 만든다. 안 좋은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슬퍼하기보다는 아저씨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삶의 희망을 찾아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독자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멋진 그림책이다. 


나는 엄마에게 좋은 선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김경희 작가님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서 메일을 보냈다. 일단 내 쓴 글 일부분을 보내며 읽어보고 혹시라도 책으로 낼 때 그대로 실어도 좋을지 여쭈어봤다. 작가님은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표지 그림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며 출판사 담당자의 이메일 주소까지 친절하게 적어 답장을 보내셨다. 그것만으로도 기뻤는데 작가님이 <괜찮아, 아저씨> 그림책에 사인과 함께 메시지를 적어 선물로 보내 주셨다. 다양한 머리 모양과 엄지와 검지를 쫙 펴서 턱 밑에 갖다 대며 흡족한 표정으로 '오! 괜찮은데?'를 외치는 긍정적이고 귀여운 캐릭터를 만든 작가님답게 역시 마음이 따뜻한 분이었다. 엄마가 이 특별한 선물을 받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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