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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고히 Jun 11. 2024

신혼집

전셋집을 구했다. 지난 토요일 약 2시간에 걸쳐 6개의 집을 본 뒤 그 중 한군데를 한 번 더 보고 가계약을 걸었다. 예산은 한정되어있고, 정보는 불투명했으므로 무엇도 확신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최선을 찾아 선택을 해야했다. 그런 면에서는 인생의 다른 어떤 선택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큰 고비를 넘어 후련하기만 할거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늘 인생은 계속된다. 이제 진짜 대출엔 문제가 없을지, 집 상태에 따라 임대인과 조율해야할 것은 어떤것인지 확인해야하는 절차가 남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끝없는 확인절차들에 시간을 쓰며 바쁜척  해야한다는 걸 뜻한다. 

 이사를 많이 다니는 가정에서 자랐다. 비슷한 형태였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비밀번호, 식탁의 위치, 놀이터의 형태 같은 것들에 설레어 했었다. 같은 단지에서 옮긴적도 있지만 시와 도가 달라지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들이 전부 바뀌어야 했던 적은 많지 않았다. 먼저 태어난 이유로 많은 배려를 받았음을 또 한번 깨닫는다. 



 내 부모의 처음은 조부가 전기공사 대금 대신 받은 수원의 작은 빌라였다. 겨울이면 우풍이 들이치고 여름은 찜통이었다. 부친은 학업을 사유로 혼인 이후 뒤늦게 병역에 소집되었다. 방위라 불리었고 국가 묘역이 근무지였다. 그가 격일로 밤샘 경계근무에 동원된 탓에, 모친은 어린 아이였던 나를 데리고 홀로 밤을 지새야 했다. 아비가 현충원을 지키는 동안 어미는 아이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이었다. 어머니가 그 시절의 고생에 대해 말을 꺼낼라치면 아버지는 손사래를 치며 막아선다.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해 무엇하느냐. 그만. 잘난 시절의 이야기보다는 힘들었던 시절, 고통의 시절에 대한 기억에 더 끌리는 나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아버지는 직감하셨을지도 모른다. 아들이 가족의 상처를 더듬어 알게될수록 현실 사회와는 동떨어진 길을 택하겠노라 깝쳤을 것이라는 것을. 보잘 것 없는 작문 실력으로 작가가 되겠노라며 그간의 모든 투자를 무용지물로 만들었을것이라는 것을.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자라며 슬픔은 나의 몫이 아니었다. 가족의 힘든일은 내겐 '나중에' 알려야할 일이 되었다. 어머이가 받은 부당한 대우도, 그 순간에 느낀 슬픔도 내것이 아니었다. 나를 걸러야 했던 어떤것은 동생에게 흘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어느 순간 부터는 동생을 마주할때마다 늘 미안함이 앞선다. 또래에 비해 성숙해보였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을까 자책한다. 여생을 두고 갚아도 저울추가 온전할까 싶지만 이미 늦은 탓에 꾸준히 노력할 뿐이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 한다. 미래에 있을지 모를 자식들은 나의 시작을 후술하며 구리시 인창동을 언급할것이다. 나라에서 싸게 빌린 대출금때문에 이곳을 고른것도, 그걸 빌리려면 연봉이 보잘것 없어야 했던것도 같이 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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