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를 여쭈신다면 - 1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때가 되면 꼭 묻게되는 뻔한 질문인데, 내게는 유독 버거이 느껴지는 질문이 있다.
'혹시 못 드시는 음식 있으세요?'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을 때도, 소개팅을 위해 약속을 잡을때도, 대학에서 처음으로 선배와의 식사약속을 잡았을때도, 밥 때가 되면 매번 다른 얼굴들에게서 비슷한 질문을 받았었고, 늘 대답을 주저했었다. 몇 초 뒤면 익숙한 표정을 마주할것이 분명했기에.
그래도 결국엔 멋쩍게 뒷통수를 긁으며 '아 저는.. 해산물.. 해산물을 못먹..습니다.' 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대답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나의 대답 뒤는 매번 거의 비슷한 레파토리로 흘러갔다.
우선, 나의 민망한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공기가 살짝 얼어 붙는다.
이어서 누군가 '아' 하며 작은 탄성을 내뱉는다.
개중에 가장 안타까운 얼굴을 한 사람이 조심스레 다음 질문을 잇는다. '혹여 알레르기가 있는것인지, 회도 못 먹는지?'
그럼 이제 나는 살짝 더 난처해진 얼굴로 대답한다. '아 알레르기가 있는건 아니구요, 그냥,,, 그냥 안먹어요. 아 회도 못먹습니다..' 말이 끝마치기가 무섭게 어깨로 쏟아지는 한층 더 본격적인 탄식과 안타까움의 시선들.
'그럼 초밥은?' 미련이 절절 묻어나오는 질문이 다급하게 이어진다.
'아 그것도..못먹.. 아! 근데 저 캔으로 된 참치는 먹어요! 심지어 좋아하거든요..?'
탄식과 안타까움이 짙게 감돌며 끝.
어릴 땐 정체를 숨긴채 잘 어울려야 하는 미션을 받은 외계인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모두의 사이로 자연스레 섞이기 위해 노력했었다. '저도 여러분과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쳐다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라며 열심히 돌아오지 않을 공허한 메아리를 쏘아내곤 했었다. 까짓 그거 좀 못 먹어도 횟집가서 잘 앉아있는다며, 여러분이 모임을 고려함에 '나'를 거추장스러이 여기지 말아달라며 애원한적도 많았다. '그거 콘치즈 있죠? 저 그거 진짜 잘먹거든요?' 혹은 '저 다이어트중이라 안주 진짜 뭐든 상관없어요. 편하게 고르세요' 라는 두 문장을 매번 중얼거리곤 했으니까.
언젠가부터 그런 노력들을 애써 하지는 않게 되었다. 나의 '기호'에 대해 사람들은 잠시 안타까워 할뿐, 그를 대체할 방법을 빨리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도 무리속에 있을때 타인의 '기호'가 그렇게까지 거슬리지는 않는다는 것도 자주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서로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확실한 불호에 이유를 떠올릴 때 가끔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당신께서 배에 날 품으신 열 달동안 내내 생선을 드셨다고 했다. 평생 먹을 생선을 그때 다 먹어서 냄새를 맡는걸로도 하악질을 하는 사람으로 자라난 게 아니냐는 농담으로 답했었다. 답으로 등짝을 시원히 한대 맞아야 했다. 물론, 나의 편식은 온전한 스스로의 성향이며 그것에 어머니가 일말이라도 죄책감을 가지셔서는 안된다는, 추가적인 당부도 더했다.
그럼에도 난처한 순간들은 지금도 분명 존재한다. 이를테면 여자친구 부모님께 처음으로 인사드리러 간 자리 같은 경우가 있었다. 이미 딸의 입을 통해 들으셨음에도, 예의상 한번은 여쭈시는 질문에 대고 스스로의 편식취향을 자백해야 하는 것은 사무치게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반려를 결심한 사람이 해산물을 좋아하는 '바다 킬러'인 것도 분명히 넘어야할 산이 되었다. 아, 그러고보니 그 당시 여자친구의 부모님께서는 당신들의 딸이 그리 해산물을 좋아하는데 내 곁에 있으면 잘 먹지 못할것을 걱정하여 알면서도 짐짓 한번 더 여쭈신 것이었나보다.
그 모든 떨리는 눈빛, 등짝 스매싱의 손길, 우려가 담긴 질문에 담긴 마음들을 언제까지고 모르는 척 외면할 수는 없을테다. 멀리 떼어 놓은 해산물에 점점 다가갈 날이 오길 수련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이번 주말 데이트 때 연어초밥을 먹자고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