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끌렸던 건, 대체로 무용한 것들이 많았다. 들판의 민들레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양새, 누구도 와서 부딫칠 것 같지 않은 모서리에 떡하니 붙어있는 스펀지, 길에서 시작해 벽으로 이어지는 횡단보도 같은 그런 것들.
무슨 목적을 위해 하루를 살아내었는지 명확하지 않았던 날, 걷다가 우연히 쓸모나 목적이 마땅치 않은 것들을 발견하면 담담한 위로가 되곤 했다.
두 번의 이사를 더 겪기 전, 당시 살던 집 근처에 특이한 횡단보도가 있었다. 분명 길을 건널수는 있지만 그 끝이 발디딜 틈조차 없는 건물의 외벽으로 이어진, 기능은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무용한 녀석이었다.
하루는 그 끝에서서 '너는 사람이 건너라고 만들어진 거 아니니, 여기서 건너서 벽으로 이어지면 어쩌자는 것이니' 하며 대단한 무용함을 발견한 마냥 혼자 신나 마음으로 말을 건 적이 있었다. 어떤 대답도 들을수는 없었지만, 다시 길을 나설 때는 분명 그 이전보다 조금 더 행복했었다.
얼핏 보았을 때 무용한 것은 자세히 보았을 때 다정한 것일 때가 많았다. 군 복무시절 훈련기관의 복도 높은 곳에 붙어 있던 스펀지가 그랬다. 까치발 세워 팔을 높이 들어도 겨우 닿을락 말락한 높이의 스펀지는, 평균신장을 고려하였을 때 참으로 무용해 보였다. 한 번 어떤 의문이 들면 그 장소에서 매번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단순한 타입이라(마치 매번 약냉방칸에서 스스로의 선택에 의문을 품듯이) 그 복도를 지날때마다 스펀지를 보며 저건 왜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뜀걸음을 위해 건물을 나가는 대열속에서 무용함의 실체를 깨달았다.
군에서 뜀걸음을 할때는 제일 앞에 선 기수가 부대기를 높이 들고 뛴다. 보통 체력이 좋고 키가 큰 친구가 선정되므로, 자연스레 깃발의 높이도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럼 자연스레 복도의 천장에 부딫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확히 그곳에 위치한 스펀지는 깃발을 챙겨 지나다니는 이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용한 것에 대한 나의 기호는 결국 그 이면의 다정함이나 그 자체에 대한 긍정으로 귀결된다. 일상을 돌이켜 보면 그렇게 살면 안되고, 그렇게 일하면 안된다는, 쓸모 없는 순간에 대한 타박에 지칠 때가 있다. 그런 순간들에 무용한 것들은 나를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쓸데없어 보였던 지난 시간들도 무용하였음 그 자체로 가치가 있었을 지 모르니까. 길을 걷다 만난 횡단보도에 말을 걸었던 것처럼, 언젠가 올지모를 미래에 시절을 추억하며 스스로에게 넌지시 말을 걸테다. 그럼 그것으로 더는 무용하지 않게 될지도, 나는 지금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