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를 여쭈신다면 - 3
운이 좋아서 적당한 거리를 걸으면 지하철을 탈 수 있는 반면, 또 적당하게 운이 나빠서 한번은 환승해야 회사 근처로 갈 수 있다. 그리고 그 환승하는 과정에 매번 비슷한 생각을 한다. 바로 '비집는 이'에 대한 것이다.
출퇴근시간에 2호선으로 갈아타는 환승역은 사람으로 꽉 차있는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효율의 민족인지라, 환승루트가 가장 짧은 쪽의 열차 칸은 더욱 인구밀도가 높다. 입술을 꾹 닫은채로 휴대폰을 쳐다보고있는 사람, 30초에 한번씩 천장을 올려다 보며 속으로 한숨을 삼키는 사람, 대놓고 눈꼬리를 치켜세웠지만 눈은 꾹 감은채로 다가올 환승역만 기다리는 사람까지. 그 모든 결연함으로 꽉 찬 8호선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서 있는 것은 퍽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인내의 시간에도 끝이 있는 법. 오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흘러 잠실역이 다가오면 열차안은 저마다 내릴 준비로 분주해진다. 바로 그 때, 그간 앉아서 편하게 오던 이가 벌떡 일어나서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먼저 내릴 준비를 하는 광경을, 그 참혹한 현장을 거의 매일 마주한다. 그때마다 아주 은은하게 '미운 마음'이 피어오른다.
예전에 한번 지하철에서 무언의 눈빛과 함께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하였을 때 그 자리를 냉큼 차지하고 앉아서 그대로 눈을감고는 바로 깊은 잠에 든척 하던 사람이나, 열차 탑승구 앞쪽에 서 있는 내 뒤로도 길게 줄이 늘어서 있음에도 지하철이 다가옴과 동시에 슬쩍 옆으로 와 서더니 그대로 비집고 들어가서 빈 자리에 앉아버리는 사람 같은 이들을 볼 때 느꼈던, 그 불편한 감정을 자주 마주하는 것이다.
잠깐이지만 편하게 왔으면, 마찬가지로 잠깐이지만 그것이 훨씬 길고 불편했을 이들에게 먼저 탈출의 기회를 양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출입구에 가까이 앉았다는 이유로 내리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억지로 비집고 몇 초 더 빨리내려서 인생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시려고 저러나? 저 뿌듯한 표정은 스스로를 알뜰하다 여기고 있는 것이려나? 억척스러움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닐텐데. 비집고 들어간다는 건 누군가 그 자리에서 살짝 비켜 서 주는 배려를 해준다는 것을, 저들은 과연 알까?
까지 열내서 생각하고 있으면 한때 유행했던 말이 떠오른다. '임영웅씨, TV 나올때마다 지하철은 내리고 타는 거라고 말씀 좀 해주세요' 아 그래 이거다.
국민가수님, 자주 부탁 받으셨을 공중예절 스크립트에 제가 감히 몇마디 좀 덧붙이고 싶습니다.
'꽉 찬 지하철에선 서있던 분들부터 내리고 일어나세요. 지하철 안에서는 큰 소리로 통화하지 마세요. 아니, 그냥 통화 하지마세요. 다리는 좀 오므리세요. 인간은 어깨와 팔을 앞쪽으로 접을 수 있습니다. 어깨 당당히 펴고 앉아서 옆자리 침범하지 마세요.'
엇, 분명 한마디만 더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흔치 않은 기회라 그런가 나도 모르게 몇마디가 더 추가 해버렸습니다. 어쨌든 언젠가,, 혹시 읽으시면요, 예예, 잘 좀 부탁드립니다.
이런 내면의 불편함은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 위함은 아니며, 스스로의 높은 도덕적 잣대를 과시하고자 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냥 가끔 아니꼽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 몇 초 빨리 내려 달라질 것 없듯이, 서 있던 우리가 몇 초 늦게 내리는 것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긴 지면을 할애해서 열심히 열을 낸 것은, 어떤 거창한 의미나 목적을 갖는다기 보다는, 그냥 그게 나는 싫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만약 많이들 싫어하면 좀 안그랬으면들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