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뿔에 들었던 지난 3일간 이야기
"이젠 좀 살 것 같다." 라는 말이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나는 3일째 혹독한 감기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코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내 코는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콧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그 난리가 난 통에 수많은 휴지조각들이 내 코를 스쳐 지나갔고 그들이 들어찬 자리는 수북이 하얀세상이 됐다. 내 코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눈(코) 물 마를 날 없이 지내다 결국 너절하게 헐어버렸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코가 막히고 콧속 감각이 예민해진 탓에 느닷없이 데시벨 높은 재채기가 줄줄이 비엔나 딸려 나오듯 튀어나올 때면 배에 복근이 생길 정도였다. 거기에 갈라진 목소리는 덤이다.
"아 진짜 힘들어 죽겠네.." 나는 이승이 좋은데 죽겠다는 말이 여과 없이 흘러나왔다.
"이러다 더 심해지겠는데... 안되겠다. 약이라도 먹자..."
코로나로 한창 떠들썩할 때 약국 사장의 겁주기 영업에 홀라당 넘어가 한 보따리 쟁여둔 상비약들이 떠올랐다. '코막힘 콧물 재채기' 약이 다른 약들 사이에서 흙 속의 진주처럼 반갑게 눈에 들어왔다. "그때 괜스레 불필요하게 많이 샀다고 자책 했는데 당근에 안 내놓길 잘했네." 효과 빠른 액상 타입 두 알을 물과 함께 꼴딱 삼켰다.
효과가 바로 왔다. 수도꼭지를 돌려 잠근 것처럼 내 코가 너무 멀쩡하다. '왜 나는 아침부터 약을 먹지 않고 버텼을까?' 역시 코감기 약은 자기 계발서로군!.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은 두 종류야. 약 안 먹고 버티며 아프다 하는 사람과 책 안 읽고 사는 게 힘들다 하는 사람.' 나는 그동안 미련하게 뭘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홀리듯 잠에 취했다.
일어나 보니 어둑어둑하다. 수도꼭지를 누가 또다시 돌려놓았나~ 다시 도돌이표다. 자기 계발서 한번 읽었다고 자기 계발 효과가 나지 않는 것처럼, 양약 효과 또한 오래가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엔 머리도 아프다. 배는 고프고 밥은 먹어야는 데 이런 날은 도저히 저녁밥을 차릴 힘이 없다. 평소에도 그 힘은 나의 것이 아니었는데 투병 중엔 말해 뭐 할까. "오빠 오늘 짬뽕 어때? 뜨끈한 국물이 당기네..." 그래 맨은 오늘도 "그래"라고 답한다.
짬뽕이 도착하였다. 칼칼한 그 맛을 생각하니 군침이 돌았다. 젓가락 한 그득 떠올려 나의 입속 공간을 넘지 않을 양까지 입장시킨 후, 나머지는 끊어 내었다. 그런데 짬뽕 너 오늘따라 평소의 너 답지 않네. 왜 이렇게 맵니? 이상하다. 먹어도 먹어도 맵다.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사자성어 하나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순망치한'이니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 그제야 내 코가 막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냄새를 못 맡으니 자연스레 미각은 둔해졌고 그런 연유로 미각이 아닌 매운맛의 통증만 혀가 더 강하게 느껴졌으리라. 그렇게 쿨피스가 간절히 생각나는 매운짬뽕의 저녁은 마무리 되었다.
3일간 감기로 인해 이런저런 상황들이 있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내 코는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고, 오늘은 어제에 비하면 살만하다. 세상 모든 일들도 이런저런 이유로의 투닥거림 들 이 있지만 결국은 제자리를 찾아간다. 죽을 것 같았던 날들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살만해져 가듯이... 내일은 오늘 보다 더 건강 해 질 것이라 믿고 잠을 청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