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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며들다 Feb 10. 2023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저녁을 먹고 난 시간, 생후 4개월 된 막내를 안아 거실에서 여유로이 수유를 하고 있었다.


드르르르르릉......

굉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거실 한편에 놓인 책장들이 그 속에 들어찬 책들을 마구 토해내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찰라, 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단 하나.


지.진.이다!!


그 순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 후 잠시 소리와 진동은 멈췄다. 그러나 내 심장 속 진동은 쉴 새 없이 빨라졌다.


"엄마~~~"

엄마를 다급하게 부르며 방에서 뛰쳐나오는 두 아들들의 목소리도 떨렸다.


그리고 우리는 옷이 우리를 입는지 우리가 옷을 입는지 모를 만큼 떨리는 손으로 착의를 하고 신발을 발에 붙인듯 밖으로 나갔다

그 시간 주민들은 지옥철이 승객들을 한꺼번에 뱉어내듯 우르르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쿠르르르르르릉


조금 전 보다 더 큰 굉음이 울렸다. 아파트가 사방으로 흔들리는 형상이 눈에 들어오자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내 달렸다. 어린 아들 둘의 양손을 잡고 막내는 업은 채 마구 뛰었다.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내가 들어간 것 같았다.


그날, 우리는 모두 떨어야 했다.


2016년 9월 12일 경주 5.8 지진.

내 생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크나큰 공포의 날이었다.


그날 이후로 내 감각은 예민해졌다.

여진은 잦았고 일상 소음인 세탁기 소리, 윗집 사람들의 걸음 소리, 베란다 문 여닫는 소리에도 내 심장은 그날을 기억하는지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진이 언제 또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도 쉬이 들지 못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평소처럼 편하게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책을 읽고 싶었다. 이번엔 재테크 한번 제대로 해 보겠다고 크게 다짐 했는데, 나는 앞으로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게 뭔 하늘의 장난인가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나다 보니 이것도 무감각 해져간다.

그로부터 6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지금도 제대로 된 재테크는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도 할 것이 많고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날의 기억은 희미해져 가지만 그 날 이후 그것 하나만은 크게 배웠다.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인간이라도 대자연 앞에서는 한낱 먼지에 불과한 존재라는걸..


3일 전 발생한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뒤흔든 대지진으로 현재, 사망자만 1만 7천여 명이 넘는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아직 구조 되지 못한 소중한 생명들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라며, 희생자와 소중한 이들을 잃은 모두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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